2023년 세계제주인대회 참석차 제주 방문해 채혈, 기적적으로 신원 확인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 이한성의 유해와 고이 간직한 형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제주의소리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 이한성의 유해와 고이 간직한 형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제주의소리

2019년 미국 뉴욕 소재 UN본부에서 ‘4.3인권심포지엄’이 열리자 가족들과 함께 제주4.3의 참혹한 현실을 세계에 알린 이한진(87)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행방불명된 작은 형을 70여년만에 만났다. 

20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진행된 ‘4.3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를 직접 찾은 1937년생 이한진 회장은 작은 형(故 이한성)의 유해를 찾은 기쁨에 “지금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제주도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회장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무역선을 운영할 정도로 부자였고, 옛 화북 ‘벌랑마을’의 이름도 그의 조부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생사를 달리했고, 그의 어머니는 이한진을 포함한 6남매(3남3녀)를 키웠다. 3형제 중 첫째 고 이한빈은 일본에서, 둘째 고 이한성은 만주에서 공부하다 광복을 맞으면서 귀향했다. 

그러던 1947년 3월1일 관덕정에서 진행된 3.1절 기념행사에서 이른바 ‘3.1절 발포 사건’이 발생했다.

이 회장은 “작은 형(이한성)이 3.1절 기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태극기가 그려진 머리띠 등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제주도민의 구호는 딱 3가지였다”고 기억했다. 

그가 떠올린 구호는 ▲친일 민족 반역자 때려 부수자 ▲신탁통치 반대 ▲양과자를 먹으면 그 값은 누가 물것인가 등이다. 

이는 4.3 때 시대상황과 맞물린다. 염원하던 광복이 이뤄졌지만, 척결은커녕 일제 부역자들이 되레 경찰 등 주요 요직에서 행패를 부렸다. 또 독립된 통일국가를 꿈꾸던 국민들이 미국·영국·중국·소련의 신탁통치 결정에 반대했다. 

“기브 미 초콜릿” 반대로 알려진 양과자 반대 운동도 전국에서 벌어졌다. 초콜릿과 사탕 등 기호식품을 수입할 돈으로 흰 쌀을 충분히 수입해 전 국민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양과자를 먹을수록 국가부채가 심해진다는 문제 의식이다.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의 유해를 찾은 소감과 함께 4.3  당시를 떠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의 유해를 찾은 소감과 함께 4.3  당시를 떠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 회장은 “우리 형님(이한성)이 한 것은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한 것 뿐인데, 이후 경찰 등이 벌랑마을 청년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우리 형님도 같이 잡혀갔는데, 모두 해안가에서 총살됐다. 모두 죽었는데, 우리 형님만 살아남았다. 그게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서북청년단이 ‘이한성 어디갔어’라면서 어머니(이순태)와 누님(이연옥)마저 끌고 갔다. 또 형님 2명(이한빈, 이한성)도 잡혀가 행방불명됐다”고 10살을 갓 넘긴 당시 자신의 상황을 힘겹게 떠올렸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이 회장의 어머니(당시 47세)와 누나(당시 17세)는 1948년 12월 토벌대에 의해 희생당했으며, 큰형 이한빈(당시 30세)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작은 형 이한성(당시 26세)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사형 집행 기록이 없어 행방불명으로 남아있다 2009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굴된 유해 중 1구가 이한성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4.3에 휘말려 고아이자 가장이 된 이 회장은 여동생 2명과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 이한성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뉴욕) 회장이 작은 형 이한성 유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연좌제를 우려해 일본회사에 취업했다. 서울지사에서 일을 시작하다 일본을 거쳐 미국 뉴욕지사까지 간 이 회장은 마트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가정을 꾸렸다.

그의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 등은 미국에서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다. 또 그의 사돈은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변호를 맡았던 로날드 그린버그 변호사다. 

재미제주도민회장을 오랜기간 맡아 장학 활동 등을 이어온 이 회장은 2019년 뉴욕 소재 UN 본부에 온 가족과 함께 ‘4.3인권심포지엄’에 참여해 4.3의 참혹한 현실을 알렸다. 

그러던 2023년은 이 회장이 작은 형의 유해를 찾게 된 계기가 됐다. 

세계제주인대회를 위해 뉴욕 교민 20여명과 제주를 찾은 이 회장은 4.3 재심 등 상황을 전해 듣고 채혈에 참여했는데, 기적적으로 작은형 이한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75년만의 작은 형 이한성의 유해를 찾은 이 회장은 “4.3을 바로 잡는데 노력해준 사람들이 있어 작은 형님(이한성)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작은 형님이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편안히 쉬었으면 한다.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령들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50년 이상 해외에서 4.3의 소식을 접해 왔다. 아름다운 제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 제주도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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