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마을신앙] ① 제주지역 마을신앙의 전승 현황과 변화 양상

한국의 대표 관광지 제주도, 그러나 앞서 긴 세월 동안 제주는 고유한 마을신앙과 함께 끈끈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섬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23년 연구자 68명과 함께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그리고 제주도의 마을신앙을 조사했다. 일명 ‘한국의 마을신앙―전라·제주권’ 조사 보고서다. [제주의소리]는 ‘한국의 마을신앙―제주도편’을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급변하는 변화 속에 급격히 사라지는 제주의 마을신앙을 통해 제주 공동체 문화의 근원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조사시기

제주도 동제 조사는 2023년 1월 23일부터 3월 11일까지 이루어졌다. 음력으로는 정월 2일부터 2월 20일까지 조사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정월에 벌이는 동제만이 아니라 음력 2월에 벌이는 영등굿과 잠수굿까지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동제를 가능한 대로 두루 조사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벌이는 동제로는 포제酺祭, 당굿, 영등굿 등이 있다.

이번 조사로 제주도 동제의 면모를 그런 대로 파악할 수 있다. 다른 시기에 벌이는 동제도 있지만 정월, 2월의 동제와 별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 동제는 정월과 2월 영등달이 아닌 시기에도 벌인다. 포제는 대체로 정월에 벌이는데, 더러 7월에 벌이는 곳도 있다. 당굿은 정월, 2월만이 아니라 6월이나 7월 혹은 9월이나 10월에도 벌인다. 영등굿은 2월에만 벌인다. 7월에 벌이는 포제는 사실상 정월 포제와 대동소이하다. 정월과 2월이 아닌 시기에 벌이는 당굿도 규모가 작을 뿐 정월과 2월의 당굿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사자

이번 조사에는 많은 조사자가 참여하였다. 동제는 같은 날에 여러 곳에서 벌이는 경우가 많다. 개별적으로 동제를 조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조사자가 함께 달려들어야 조사를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조사자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따른다. 동제 조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동제 조사 경험은 없으나 민속 분야에서 현장 조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극 찾아 조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주로 제주대학교와 제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조사에 참여하였다. 그밖에 경기대학교, 경주대학교를 비롯한 육지부 대학 학자들도 더러 참여하였다. 대부분 제주도 방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제주도 지리에도 밝은 이들이었다.

강정식·강소전·이현정·한진오(제주대학교)
김승연·류진옥·송정희·강경민·양인정(제주학연구소)
김헌선·김호성(경기대학교)
허용호(경주대학교)
김은희(한국예술종합학교)
신소연·박종한(국립민속박물관)

조사자들의 조사 경험에 있어 차이가 많다. 그 탓에 조사 결과가 균일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동안의 조사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어느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조사대상

이번 제주도 동제 조사는 ‘다수, 다양, 집중’을 지향하였다. 첫째, 많은 사례를 두루 대상으로 삼았다. 동제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둘째, 다양한 유형의 의례를 조사하고자 하였다. 특이 사례, 예외적인 사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셋째, 그러면서도 특징적인 양상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공동체와 동제의 관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사례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제주도 동제는 여전히 활발한 전승을 보인다. 크게는 무속 의례와 유식儒式 의례로 나뉜다. 무속 의례로는 당굿과 영등굿이 있고, 유식 의례로는 포제가 있다. 이것이 제주도 동제의 대체적인 양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처럼 쉽사리 구획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양한 형태의 동제가 전승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근 여러 마을 공동체와 동제의 관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례도 있다. 그 양상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 마을의 동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제일祭日 순서로 조사 대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의명, 제장祭場, 제의 형태 등을 함께 볼 수 있게 한다. 제의 명칭은 이해하기 쉽게 손보아 제시한다.

무속 의례, 곧 굿은 모두 35개 사례를 조사하였다. 대부분은 당굿에 해당한다. 

당굿은 21개 사례를 조사하였다. 그 가운데 신과세는 14개 사례, 영등굿은 7개 사례이다. 대제라고 한 것도 이 시기의 당굿은 신과세라고 할 수 있기에 함께 헤아렸다. 

당이 아닌 곳에서 벌인 영등굿의 사례도 8개에 이른다. 당굿으로 벌인 영등굿과 당굿과 별개로 벌인 영등굿을 모두 합하면 15개 사례를 조사한 셈이다. 당굿과 당굿이 아닌 것이 반반이니 전승 양상에 부합하는 결과이다. 명칭을 기준으로 하면 신과세 14개 사례, 영등굿 15개 사례이니 균형을 갖추었다. 당굿과 영등굿을 합하면 29개 사례가 된다. 

이밖에 6개 사례는 마을굿 1개 사례, 잠수굿 2개 사례, 수협 풍어굿 3개 사례였다. 이 가운데 수협 풍어굿은 모두 유식 제법으로 벌이는 풍어제를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건입동 영등손맞이도 실제의 사정을 감안하여 제주시수협 풍어굿으로 다룬다. 

유식 의례는 모두 7개 사례를 조사하였다. 적은 사례지만, 나름대로 지역과 형태를 안배한 결과이다. 

포제는 4개 사례를 조사하였다. 굿에 비하면 조사 사례가 적다. 이는 포제를 조사하 기 어려운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포제는 여성의 참관이 허용되지 않는다. 남성 조사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까닭에 다양한 포제 사례를 조사하기 어려웠다. 어떤 마을의 경우에는 아예 외지인의 참관을 허용하지 않는다. 포제는 특히 제일 이 거의 같은 날에 집중되곤 한다. 포제를 조사하기 어려운 사정이 이처럼 많다.

이밖에 당제 1개 사례, 해신제 1개 사례. 석불제 1개 사례를 조사하였다. 당제는 드물지 않은 사례이다. 특히 애월읍 관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해신제, 석불제는 드문 사례이다. 이 가운데 특히 석불제는 유불무가 망라된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참고로 2023년 마을제 관련 기사에 따르면, 100여개 마을에서 마을제를 벌였다. 이것은 포제, 당제, 해신제, 석불제를 두루 포괄한 것이다. 곧 유식 마을제를 망라한 숫자인 셈이다. 지역별로는 제주시권 70개 마을, 서귀포시권 33개 마을이다. 이번 조사 는 100여 개 사례 가운데 7개를 조사한 셈이니,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성산읍 수산리의 경우 당굿인 신과세, 영등굿을 비롯하여, 포제와 마을굿까지 여러 가지 의례를 집중 조사하였다. 한 마을에서 오랜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 여러 가지 동제를 두루 전승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가 어떠 한 관련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성산읍 신양리의 경우도 당굿인 신과세, 영등굿과 잠수굿까지 조사하였으니 한 마을의 동제를 두루 조사한 사례이다.

당굿 신과세는 정월 2일부터 보름까지 벌였다.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정월 12일부터 보름 사이에 벌였다. 정월 말일에 벌인 사례도 있는데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영등굿은 영등달인 2월에 벌이는 것이니 제일이 2월에 집중된다. 이는 당굿으로 벌이든, 당굿과 별개로 벌이든 마찬가지이다. 과거 건입동 칠머리당에서는 2월 초하루 에 영등맞이, 14일에 영등송별제를 벌였다[현재 건입동 영등맞이는 제주시수협 풍어굿을 겸하고 있다. 영등굿은 본래 정월 그믐이나 2월초부터 열흘이나 보름까지 여러 날에 걸쳐 벌이던 것이라고 하는 전승이 있다. 그렇다면 연말부터 2월 보름까지 굿이 계속되었던 셈이겠다. 그 사이에 포제가 끼어 들면서 동제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수협 풍어굿은 대개 2월중 택일하여 벌인다. 제주시수협 풍어굿만은 건입동 칠머리 당 영등맞이를 겸하기에 2월 초하루를 제일로 정해 두고 벌인다. 나머지 수협 풍어굿은 사정에 따라 제일을 정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월에 벌이기도 한다. 올해 성산 수협 풍어굿이 그러한 사례이다. 수협 풍어굿을 주로 2월에 벌이게 된 것은 영등굿의 전통을 따른 셈이다. 유식 풍어제를 함께 지내지만 제일을 정하는 데는 유교식 기준 은 적용되지 않았다.

잠수굿 사례로는 신흥 잠수굿, 신양 잠수굿을 조사하였다. 조천 신흥리의 경우는 잠수굿, 해녀굿, 풍어제 등 여러 가지로 지칭되지만, 편의상의 명칭들일 뿐 어느 것도 마땅한 명칭은 아니다. 여러 모로 마을굿의 성격이 강하다. 포제와 연계해서 벌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영등달을 제일로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등굿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는 잠수굿으로 분류해 둔다. 신양 잠수굿은 영등달인 음력 2월에 벌이지만, 앞서 영등굿을 벌였기에 영등굿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신양리에서는 2월 보름에 영등굿을 벌인 다음 오래지 않아 이틀간 잠수굿을 벌이곤 해왔다. 전통적으로 잠수굿은 정기 의례로 벌이는 사례로 동김녕리, 종달리를 들 수 있는데 모두 3월에 벌인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영등굿과 명백히 구별된다.

포제 조사는 2월 8일 같은 날에 벌인 셈이다. 이는 대개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삼아 포제 제일을 정하기 때문이다. 2023년 올해 입춘은 2월 4일, 음력으로는 1월 14일이었다. 여러 마을에서 2월 8일, 음력 1월 18일에 일제히 포제를 벌였다. 입춘 뒤에 처음 맞이하는 정일丁日을 택한 결과였다. 입춘이 늦다 보니 이미 당굿 신과세를 벌인 마을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도 동제의 다양성

제주도 동제의 다양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힘썼다. 무속과 유식을 절충한 형태도 있고, 둘을 함께 벌이는 사례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무불유가 섞인 사례도 있다. 당굿이나 영등굿과 별개로 마을굿을 따로 벌이는 경우도 있다.

동제의 제일은 고정된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고 택일하여 정하는 경우가 있다. 의례를 시작하는 시간의 경우도 고정된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당굿은 제일이 고정되어 있다. 영등굿도 당굿으로 벌일 때는 당연히 제일이 고정되어 있다. 당굿과 별개로 벌이는 영등굿은 택일해서 벌이는 경우가 많다. 당굿과 별개의 영등굿임에도 제일이 고정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한수 영등굿, 고성 영등굿이 그러하다. 영등굿을 택일해서 벌일 경우 그 제일은 음력 2월 영등달, 그것도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로 정한다. 수협 풍어굿도 대개 같다. 당굿으로 벌이는 영등굿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2월 10일 전후로 정하는 사례가 많다. 수산리 마을굿은 택일해서 벌인다. 단, 반드시 포제를 지낸 뒤의 날짜로 정한다. 수산리의 경우에는 입춘굿 - 포제 - 마을굿의 순서를 따르는 셈이다.

포제는 어디에서나 택일해서 벌인다. 대개 입춘 뒤 정월 첫 정일丁日 혹은 해일亥日에 벌인다. 흔히 혹정혹해或丁或亥라고 한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대체로 자시子時를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무근성의 경우처럼 저녁에 벌이는 사례도 있다.

당제는 제일이 고정되어 있다. 당제는 당에서 유교식 제법으로 지내는 의례이다. 본래 당굿을 이어받은 것이어서 제일도 당굿의 제일을 그대로 따른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당굿을 하던 시간을 가늠하여 정해 둔다.

당굿의 제장은 대개 본향당이다. 본향당이 아닌 곳에서 당굿을 벌이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행원 남당 신과세, 하도 각시당 영등굿, 시흥 개당 영등굿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토산 웃당은 일뤳당처럼 보이지만 본향당에 해당하니 함께 거론할 수 없다. 영등굿은 당이 아닌 곳에서도 벌이기 때문에 본향당이 아닌 당에서 영등굿을 벌이는 것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영등굿의 제장은 당과 어촌계(혹은 해녀탈의장)가 반반이다. 영등굿은 당굿의 일환으로 벌이기도 하고 당굿과 무관하게 벌이기도 하는 사정이 여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셈이다. 영등굿을 제외하면 행원 남당 신과세의 사례가 특별하다. 특별하지만 예외적인 사례로 보아야 하겠다. 관련하여 잠수굿을 당에서 벌이는 사례인 신양 잠수굿도 주목할 만하다. 본향당이 굿당처럼 쓰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포제의 제장은 포제단 혹은 마을회관이다. 포제는 포제단에서 벌이는 사례가 있고,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벌이는 사례가 있다. 과거 포제단이 따로 없는 마을에서는 사가私家를 골라 제장으로 삼았다. 근래는 사가를 제장으로 삼는 경우가 없다. 포제의 경우 제관의 입재를 위한 공간을 따로 둔다는 점이 당굿이나 영등굿 등과 다르다. 당굿, 영등굿 등과 포제의 의례 형태는 크게 다르다. 전자는 무속식 의례인 굿으로 진행한다. 포제는 유교식 제법에 따라 진행한다. 둘은 사제자, 제물 등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당굿 혹은 영등굿 등의 사제자는 심방이다. 주민들이 전문 사제를 정하여 의례를 맡기는 셈이다. 당굿은 메인심방이 맡아 필요한 대로 소미를 대동하여 진행한다. 메인 심방의 위상은 특별하다. 굿 전반을 책임진다. 굿의 초감제를 맡아 진행하고, 소미들의 역할을 분담하여 맡긴다. 어떤 마을은 남성 심방만 메인심방을 맡을 수 있다. 어떤 마을은 특정 제차를 남성 심방만 맡는 전통이 있다.

포제는 마을 주민들이 제관을 맡아 진행한다. 주민들이 직접 의례를 행하는 셈이다. 제관 가운데는 초헌관·아헌관·종헌관 3헌관의 위상이 특히 높다. 마을 유지나 유력한 집안 중심으로 제관을 선정하는 전통이 있다.

당굿과 포제는 제물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당굿의 경우에는 돼지고기를 철저하게 금기한다.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은 아예 당에 출입하지 못한다. 당과 별개로 벌이는 영등굿은 굳이 육고기를 제물로 삼지는 않지만,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로 삼지는 않는다. 포제는 돼지를 희생으로 쓴다. 돼지가 가장 중요한 제물로 쓰이는 셈이다. 한편, 당제는 닭을 희생으로 삼는다. 돼지고기를 금기하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굿과 포제는 전혀 별개의 의례인 것만은 아니다. 두 가지 상이한 방식의 의례가 일정한 방식으로 연계되는 사례가 많다.


굿과 포제 : 포제를 지낸 다음 날이 밝는 대로 굿을 하는 사례가 있다. 신흥 잠수굿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포제의 제물을 굿청에 보내고, 포제의 제관들이 굿청을 찾아 배례한다. 포제 자체에 바다 생업 관련된 용신제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잠수굿을 따로 벌인다. 포제에 앞서 당에 가서 고하는 사례도 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구좌읍 행원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속 의례와 유식 의례의 연계 양상으로 보면, 수협 풍어굿도 여기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 같은 날, 한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의례를 행한다는 점이 앞서의 경우와 다르다.


당굿과 마을굿 : 성산읍 수산1리에서는 진안할망당에서 비념을 한 뒤에 본향당으로 가서 마을굿을 벌인다. 비념은 비손으로 제의 규모가 굿에 미치지는 못할 뿐 흔히 당굿의 범주에 두어 운위한다. 수산1리 사람들은 자신들만 모시는 진안할망을 특별히 찾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마을굿을 벌이는 셈이다.


당굿과 영등굿 : 수산 울뤠모르 하로산당 영등굿에서 희생을 가져다가 고성 영등굿의 희생으로 쓴다. 당굿과 당굿이 아닌 영등굿이 연계되는 셈이다. 고성 영등굿은 당굿과 별개의 굿이지만 사실상 당굿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례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당이 아닌 곳에서 영등굿 벌일 때 당에 가서 고하는 경우는 많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전통적인 모습일 수 있다. 김순아 심방과 김영철 심방이 맡는 조천읍 일대의 잠수굿과 영등굿은 다 여기에 속한다. 한수 영등굿의 경우도 같다. 초하루에 당에 가서 고하고, 이레에 영등굿을 벌인다. 그러나 당과는 전혀 무관하게 굿을 벌이는 사례도 있다. 북촌 영등굿은 본래 당제의 하나로 벌이지만, 당이 아닌 어촌계에서 벌이면서 당에 가서 고하는 절차를 두고 있지 않다.

제주도 동제의 변화 양상

이번 조사를 통해서 제주도 동제의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공동체의 범위가 달라지기도 하고 공동체의 성격이 바뀌는 사례가 그러났다.

공동체의 변화에 주목할 만한 사례로 성산읍 수산리를 중심으로 한 동제의 양상과 각 지역 수협의 풍어제를 살필 수 있다. 전자로 전통적인 공동체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후자로 새롭게 나타난 공동체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성산읍 수산리는 당굿과 포제는 물론 마을굿을 함께 전승하고 있다. 당굿은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벌인다. 이른바 4대제일을 모두 갖추어 전승하는 드문 사례이다. 이것 말고도 특히 주목되는 바는 당굿, 포제, 마을굿과 관련된 공동체의 범위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당굿은 이웃 마을들과 함께 벌인다. 포제는 수산1리 주민들만 따로 벌인다. 마을굿도 수산1리 주민들만 참여한 가운데 벌인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수산리를 집중적으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수산리 당굿은 오래된 당신앙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여러 마을이 하나의 본향당을 공유하면서 신앙권을 이루어왔다. 다만 신앙권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 수산1리와 2리를 비롯하여, 고성리, 신양리, 오조리 등이 신앙권을 이루고 있었다. 과거에는 울뤠모르 하로산당에 이들 여러 마을 주민들이 두루 참여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신양리와 오조리 주민들이 신앙권에서 벗어났다. 신양리는 아예 본향당과 메인심방을 따로 두고 울뤠모르 하로산당의 전례를 좇아 당굿을 벌였다. 오조리는 일뤳당을 본향당처럼 모셨다. 신양리는 고성리와 한 마을이었고, 여전히 바다밭(해녀 물질 구역)을 공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고성리는 신양리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였다. 신앙권을 벗어나지 않고 울뤠모르 하로산당을 찾는 수고를 지속하고 있다.

고성리 주민의 선택은 특별하다. 울뤠모르 하로산당 영등굿에 참여하면서도 고성리 만의 영등굿을 따로 벌인다. 영등굿을 두 차례 벌이는 셈이다. 당굿 영등굿과 당굿이 아닌 영등굿, 중산촌의 영등굿과 해촌의 영등굿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포제와 당굿은 공동체적 성격을 조금은 달리 한다. 포제의 경우 독립성이 강하다. 당굿의 경우 전통적인 공동체의 면모가 강하게 유지되곤 한다. 포제는 마을마다 따로 벌이고, 마을 안에서도 동네별로 따로 벌이기까지 한다. 당굿은 한 마을에서 동네별로 따로 벌이는 사례가 거의 없고, 신앙권에 따라 여러 마을이 함께 벌이는 사례도 있을 정도이다. 포제의 경우에는 여러 마을이 함께 벌이는 사례는 없다. 이는 분명히 당굿과는 다른 양상이다. 포제가 늦은 시기에 도입되었던 사정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유식이냐 무식이냐의 문제는 아니다. 수산1리의 경우 자신들만의 마을굿을 따로 벌인다. 자신들의 마을 경내에 본향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굿을 따로 벌인다. 그리고 이때 특별히 진안할망당제를 먼저 벌인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수산1리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마을굿만의 사정도 아니다. 당굿도 독립성이 강화되는 방향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수산 울뤠모르 하로산당을 함께 모시던 마을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따로 신앙권을 이룬 것이 그 예이다.

의례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주민들의 참여도 역시 줄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한동안 동제를 벌이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이때 동제를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이 동제의 전승에까지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장애가 사라지자 예전의 면모를 그대로 갖춘 채 동제가 곳곳에서 다시 벌어졌다. 이와 같은 사정은 다음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시지역의 마을별 새해 전승 의례가 입춘이 지난 뒤 잇따를 전망이다. 이 과정에 시대 흐름을 타고 마을포제의 여성 제관 참여 요구 등 변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1일 제주시가 집계한 2023년 마을별 전승 의례 계획을 보면 포제, 본향제, 당제, 해신제 등 20개 읍·면·동 총 113건에 달한다. 이들 중 다수가 입춘 뒷날인 2월 5일 정월대보름부터 10일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122건보다 다소 줄었으나 일정이 확정되지 않거나 마을 내부 사정으로 간소화한 의례를 포함하면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 한라일보 2023.2.15일자 기사

제주도 동제의 규모는 코로나가 닥치기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는 축소된 상태였다. 당굿, 영등굿이나 포제 모두 그러하다.

당굿은 인구 감소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당굿의 경우 심방들이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굿 비용을 따로 정해두고 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전통적으로 단골들이 개별적으로 준비한 인정이 전부이다. 그 금액이 물가의 상승폭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단골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이로 인하여 심방들이 충분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결과 심방들은 소미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근래 자치단체의 지원금이 제공되는 경우가 있어 부담을 조금은 덜고 있다. 당굿과 별개로 벌이는 영등굿은 사정이 다르다. 어촌계에서 비용을 책정해서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영등굿은 대체로 규모가 큰 편이다. 

포제도 인구 감소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지원금과 희사가 따라 경제적인 부담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나 제관과 집사를 맡을 사람이 충분치 않은 사례가 많다. 과거 18인에 이르던 제관과 집사의 수가 10인 내외로 줄고, 그나마 10인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들의 관심도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다.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아진 탓이다.

당굿이나 영등굿에는 비무속인 전문 악사가 등장하고 있다. 제주 무속에는 원칙적으로 전문 악사가 따로 없다. 참여한 모든 심방이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굿을 진행하곤 한다. 물론 이전에도 전문 악사라고 할 만한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굿을 익히지 못해서 북 연주에만 전념하는 사례로 이들 역시 무속인의 범주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속인이 아닌 전문 악사가 등장하고 있다. 고덕유, 김영철 심방 등 젊은 층에서 이러한 전문 악사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의 전문 악사는 다른 일로 생업을 유지하거나 놀이패와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굿판에서는 전문 악사의 북 연주 기능이 필요한 형편이다. 북을 제대로 치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이러한 전문 악사의 등장은 소미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 반영된 탓이다. 동제의 경우 의례가 같은 시기에 몰리는 탓에 소미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곤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제주 무속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 양상이고, 동제의 경우 특히 그 사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굿에 심방이 아닌 보살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보살은 육지식 신내림을 받거나 육지식 무속 의례를 행하는 이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이들이 제주굿 현장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주굿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사례도 있지만, 더러 온전히 익히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것도 제주 무속의 보편적인 변화상 가운데 하나이다. 과거에는 심방들이 철저하게 보살들을 배척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와 같은 단체도 보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심방의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고, 능력 있는 젊은 심방이 드물어진 사정이 이와 같은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제주굿의 전통적인 면모가 희석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근래 한 심방이 여러 마을의 메인심방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굿의 제일이 같은 경우가 많아 여러 마을의 메인심방을 맡기 어렵다. 그래서 과거 심방들은 오로지 한 마을의 메인심방만 맡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근래는 이러한 원칙마저 무너지고 있다. 심방을 구하기 어렵게 된 탓이다. 이제 주도권이 심방에게 주어졌다. 심방은 더 이상 마을에 매인 존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결과 제일이 겹치는 당을 맡고, 제일을 변경하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 메인심방, 단골판, 신앙권 등 제주 무속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의례 공동체에서 전통적인 권력 구조가 바뀌고 있다. 어디에서나 마을 임원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 포제와 같은 경우에는 향회鄕會를 거쳐 제관을 선출하고 동네와 성씨를 안배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장, 노인회장, 개발위원장, 청년회장 등이 우선 고려 대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 이장에게 제관 선정 관련 전권을 위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당굿의 경우에도 상단골이 따로 있어 특별한 권한을 쥐고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장, 노인회장, 개발위원장 혹은 그 부인과 부녀회장 등이 3헌관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금녀禁女의 영역인 유식 제의에 여성의 참여가 허용되는 사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직 여성이 제관이 되는 사례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제장에 여성의 출입이 허용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배례를 허용하는 사례까지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성의 힘이 강한 수협의 경우에는 일찍이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일반 포제에까지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니 변화가 본격화될 조짐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인용한 기사의 “시대 흐름을 타고 마을포제의 여성 제관 참여 요구 등 변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관련해서 칠머리 요왕맞이는 남성 심방의 독차지였으나 여성 심방이 맡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는 사실도 주목해 볼 수 있다. 송당본향당의 경우, 여성 심방은 메인심방을 맡을 수 없고 따라서 당굿의 초감제도 남성 심방만 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근래 여성 심방이 메인심방에 가까운 구실을 하고 있다. 한편 굿은 여성 중심, 포제는 남성 중심이라는 2분법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당굿에서 남성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마을이 있다. 포제의 경우 마을 여성은 물론 외지인은 남성조차 참관을 허용하지 않는 마을도 있다.

편의성을 따르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례 시작 시간이 조정되고, 제장이 실내로 바뀌는가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앞서 언급한 전문 악사나 보살의 증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례를 시작하는 시간이 조정되고 있다. 당굿의 경우 굿 시작 시간이 점점 늦추어지고 있다. 과거 단골들은 남들보다 먼저 당을 찾기 위하여 애썼다. 지금도 일찍 당을 찾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늦어진 상태이다. 포제의 경우에는 제사 시간이 앞당겨지는 경향이 있다. 자시에 지낸다고 하지만 자정이 되기 한참 전에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밤 11시 가까운 시간이 되면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가 하면 아예 늦추어 낮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지내는 경우도 있다.

제장이 실내로 바뀌고 있다. 포제는 실외인 포제단에서 실내인 마을회관으로 바뀌고 있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어서이다. 포제단을 새로 마련하는 경우 건물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들에 포제단이 따로 있는 경우에도 날씨가 궂으면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일부 당굿의 경우에도 나타나고 있다. 건입동 칠머리당 영등송별제도 날씨가 궂을 때는 전수회관으로 옮겨 벌이는 사례가 많다.

당굿이나 영등굿에서는 제물祭物이나 복색服色도 편의를 좇는 경향을 보인다. 당굿이나 영등굿의 제물도 단골들이 정성껏 장만하곤 하였지만 근래는 구입해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제물도 메와 돌레떡(도래떡) 정도나 스스로 장만하고 있다. 당굿이나 영등굿에 참여하는 단골들의 복색도 과거에는 규범화되어 있었다. 대개 한복 차림으로, 검은색 치마에 하얀 스웨터를 입는 것이 보통이었다. 근래는 이러한 차림을 고수하는 마을이 매우 드물다. 비슷한 차림을 고수하는 마을도 치마의 색상이 어두운 색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포제의 경우 한자 대신 한글을 쓰는 방향의 변화를 보인다. 축문祝文의 한자 옆에 한글을 병기하는 일은 이미 보편화 되었고, 홀기笏記를 한글로 풀어쓰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글 세대가 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포제는 문자를 아는 이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는 굳이 문자 속을 아는 이들을 우선하지 않고 있다.

동제 전승과 조사의 문제

동제의 전승에 대한 온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균일한 조사와 통일된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 있는 조사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번 조사의 경우에는 미숙한 조사자가 더러 있었다. 그 결과 조사 성과가 고르지 못한 문제가 있다. 보고서를 순조롭게 읽어내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여러 사례를 두루 함께 살피기를 권한다. 제의 진행 과정에 대한 기술이 제각각일 수 있다. 제의 진행에 대한 기술이 이해를 하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제보자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일반화하는 식의 기술도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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