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45)

10. 땅채송화-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꽃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것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 꽃이 그 꽃 같은데 다른 꽃이고, 한 종에도 수십 가지 종류의 꽃들이 있는 것도 있으니 '이젠 그냥 꽃이라고만 불러주자'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 꽃이 얼마나 좋아하는데'하는 생각에 기어코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가슴이 확 트이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땅채송화가 그랬습니다.
이파리의 모양이 채송화를 닮아서 얻어진 이름이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채송화는 여러 가지 빛깔로 피어나지만 땅채송화는 노랑 색으로 피어나는 꽃인데 돌나물, 땅의비름, 바위채송화 등과 영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꽃이 흡사했습니다. 구별할 수 있는 열쇠는 이파리에 있는데 땅채송화라고 땅에 피어있는 줄 알았더니 해안가 바위틈이나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잘 자라니 하나하나 구분하여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채송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보석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여왕이 페르시아에 살고 있었단다.
얼마나 보석을 좋아했는지 자나깨나 보석을 손에 넣을 궁리만 했어.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보석은 전부 거둬들였고 세계 각국에서 오는 상인들에게까지 보석으로 세금을 내게 했어.
그런데 결국 욕심을 채울 수 없는 여왕은 백성들에게 가혹한 명령을 내렸단다.
"백성들은 누구든지 죽기 전에 보석 하나씩을 세금으로 바쳐라. 만일 보석을 바치지 않고 죽으면 그 자손들이 그 이상의 보석을 가져와야 할 것이니라."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들은 눈앞이 캄캄했어. 이제 죽는 것까지도 맘대로 죽지 못하니 얼마나 억울했겠어.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보석이 담긴 열두 개의 상자를 싣고 여왕을 찾아왔어. 여왕은 너무나 예쁜 보석들을 보자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어머나, 세상에! 저 보석들, 내가 갖고 있는 것들보다도 훨씬 많네!"
여왕은 보석을 보자 욕심이 불같이 타올랐겠지.
"여보시오, 노인 양반. 그 보석을 나에게 판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겠소."
"여왕님, 소원은 필요 없습니다. 단 조건이 있는데 보석 하나와 백성 한 명의 목숨과 바꾸시겠습니까?"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여왕은 노인의 요구에 응했단다.
보석을 하나씩 가질 때마다 백성이 한 명씩 없어졌어. 드디어 보석을 전부 가졌는데 딱 한 개가 남았지 뭐야. 그런데 그 보석은 어떤 보석보다도 예뻤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보석과 바꿀 백성이 하나도 없었어. 그 이전의 보석들과 다 바꿔버린 것이지.
"노인 양반, 내가 가지고 있는 보석 전부와 바꿉시다."
"안 됩니다. 여왕님, 이 보석은 제가 가져가는 것으로 하지요."
몸이 달은 여왕은 이렇게 말했어.
"그럼, 나와 바꿉시다."
노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여왕에게 보석을 내주었는데 여왕이 보석을 받아 드는 순간 보석 상자가 모두 터져 버렸어. 보석은 사방팔방에 흩어져 자그마한 꽃들로 피어났지. 그 꽃이 바로 '채송화'란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지.

채송화의 다양한 색깔들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해 낸 맨 처음 그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꽃 이야기는 많은 경우에 이렇게 구전에 구전을 거쳐 전해지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나라에 따라서 다르게도 전해집니다. 꽃말이 있고, 꽃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꽃들은 행복한 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가까이서 그들과 동고동락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채송화의 꽃말은 '가련함, 순진'입니다.
'가련함'이란 꽃말은 채송화의 꽃 이야기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보석밖에 모르는 여와의 삶이 가련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땅채송화는 어떨까요?
마치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와 화들짝 핀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하늘의 소망을 담은 별똥별들이 떨어진 자리에서 꽃들이 피어난 듯 합니다. 과학적으로야 별들은 24시간 떠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육안으로 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때는 어둠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꽃들 중에는 밤에 잠을 자는 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괭이밥이나 자귀나무, 자귀풀 같은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꽃들에게도 별을 보여주고 싶어서 땅에 별을 달아주신 것은 아닌지요.

땅채송화가 활짝 필 무렵이면 겨울의 그림자는 완연하게 사라집니다.
겨울이나 어둠이 상징하는 바는 고난, 반역, 죽음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보내고 피어나는 꽃이니 어쩌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보석 같은 꽃이 있다면 땅채송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땅채송화는 작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꽃들 모두가 한결같은 모양입니다. 그 한결같은 모습으로 어우러져서 큰 꽃들이 만들 수 없는 갖가지 형상을 만들며 들판을 수놓아가고, 때로는 화산석 검은 바위들을 노랗게 물들여가기도 합니다. 땅채송화지만 땅에서보다는 척박한 바위에서 제 모습을 온전히 피워내는 꽃입니다만 엄연히 바위채송화라는 꽃이 있으니 바위에 자라도 여전히 땅채송화겠지요.

땅채송화는 타는 목마름을 아는 꽃입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줄기는 빨갛게 변하는데 붉을수록 목이 마르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붉은 것일 수록에 얼마나 단단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피어나는 꽃은 또 얼마나 지한지 모릅니다. 꽃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 내 삶에 찾아온 고난이나 시련들을 넉넉하게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늘의 소망을 담아
땅에서 빛나는 별꽃에
한 소녀의 풋풋한 소망이 담겨있는가
그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하늘의 삶을 마감하고
별똥별이 되어
땅으로 내려올 적에
한 소녀는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하나님,
그 한마디에 다 담겨있는 소망들이
하나 둘 별이 되어 피어났다

- 자작시 '땅채송화'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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