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북천 수해 개선복구 현장에서…자율적 저항을!

어제 새로 자전거를 산후, 오늘 아침 오랜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기분 좋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내 눈앞에 펼쳐진 아주 익숙한 모습 때문이었다. 이미 파괴된 하천위에 또 다른 파괴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북천 수해복구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오현고 급식소와 체육관 사이의 다리(별도교) 바로 아래에서는 돌을 깨고 있었다. 수만 ~ 수십 만 년에 걸쳐 형성된 하천을 무참히 부수고 있었다. 깨어낸 돌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형 굴삭기 3대와 덤프트럭 2대가 동원된 공사였다. 돌은 계속 깨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흐르던 물길은 깨어난 돌과 파헤쳐진 흙더미를 거치면서 매우 탁해져버렸다.

지난 해 태풍 나리 내습 당시, 돌로 된 하천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수능력이 부족해 물이 넘쳤다는 이유에서 ‘개선복구공사’를 하고 있던 것이다. 이보다 조금 상류에 있는 원명선원 인근은 지난 5월 김수남 도의원이 문제제기를 했던 ‘그린빌라’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그 둘레에 서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이 휑하다. 그 소나무들 또한 조만간 저류지 건설로 인해 옮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당국은 국비 38억 여원을 투입해 그린빌라를 매입해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 철거했다. 그리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하천을 쪼개며 부수고 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저류지와 수로가 만들어 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는 ‘제주도 하천’이라고 부를 만한 경관적 특성은 찾아 볼 수 없다. 하천의 역할을 단순히 ‘물길’로만 보는 사람들의 행동들이다.

   
2007년 9월 17일. 태풍 나리 내습 직후의 화북천  ⓒ김동주 
   
2008년 6월 26일. 수해 개선복구 공사하는 모습.  ⓒ김동주
     

하천은 물길이기도 하지만, 물길만은 아니다. 특히 이곳은 지난 8년 전 내가 고3 이었을 때, 친구와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에 대학생활 등 미래를 계획하며 담소를 나누던 추억의 공간이다. 이미 어린시절 내 기억속의 하천(가시천)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나마 청소년기에 누렸던 하천(화북천)에 대한 기억은 지난해까지 계속 현실로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오늘 아침부터,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자연과 벗 삼은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그 기억 속의 모습은 그 동안 이런 식으로 사라져왔고, 그것은 나에게도 이렇게 재생산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을 겪을 때마다 아파했고, 고민했으며, 결국 저항을 시작했다. 내 어린시절의 추억 뿐 아니라, 모든 이의 추억을 위해서였고, 내 추억이 다음 세대의 추억으로도 간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에게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위에서 시킨 일을 대리하고 있을 뿐, 결정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우리 부모님처럼 그들도 처자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단순 임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윗사람들에게 문제를 지적했다. 이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누구는 승진을 위해서, 또 누구는 당선을 위해서 민원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했다. 특히나 당선을 위해서라면, 환경파괴라는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은 ‘친환경적 하천정비’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제 더는 기존의 환경훼손 모습은 없을 것이라 대대적으로 발표를 하였다. 그들은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신문과 방송에 의해 대리되어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순진했던 나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역시나 그렇지. 그들이 그것을 잘 할리는 만무했다. 이제껏 ‘파괴’라는 개발의 방법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복원’이라는 친환경으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대답을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정도면, 꽤 친환경이 아니냐’ 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둘러보니 역시 그들의 ‘친환경’수준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배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또한 집행자에 불과할 뿐, 그들의 뒤를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척하며 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로 전문가였다. 아니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박사’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전문가인양 행세하면서 자신들이 계획한대로 하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이 올꺼라 경고하였다.

그리고 실제 계획서를 확인하고, 몇몇 의견을 첨부한 후에, 지체없이 ‘통과’ 도장을 쾅쾅 찍었다. 집행자들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주단지 받들 듯이 하며, 그 어떠한 문제제기에도 대부분은 전문적이지 않다는 토를 달았고, ‘불도저’처럼 일을 집행했던 것이다.

문제는 어느 한 곳에 있지 않았다. 곳곳에 널려 있었고, 오늘 아침에 내가 본 모습은 그것의 복합적인 실천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것을 알아오기 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문제는 계속 발생했으며, 그들은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을 오히려 처방전으로 제시했다. 또한 가끔씩 우리의 문제제기를 내화하여, 의견수렴이라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사를 해야만 생존하는 토건자본, 그들의 후원과 지지로 집행부의 자리를 꿰찬 정치꾼, 그리고 여기에 합법적이며 과학적인 지위를 부여해주는 전문가그룹. 이 삼자의 결탁이 개발동맹이고, 그들이 작동한 결과가 개발주의다.

언제까지 이와 같은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그 동안 여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차츰 문제의 본질이 명확해졌다. 

상류에 내린 빗물을 무조건 빠르게 하류로 보내는 것은 홍수위험을 높이고, 어장환경에도 꾸준히 피해를 주고 있으며, 지하수 함양량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하천정비는 제주도의 하천특성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한다.

수해를 예방하고 복구하기 위한 사업은 그동안 2,000억 원이 투입됐고, 지난해 태풍 나리의 피해액은 1,300억원이며, 복구금액은 이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재해가 반복되면, 이 같은 예산집행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사유재산‘만’을 보호하기위해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공공자산을 ‘파괴’하는 것이 옳은지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또한 그 동안의 일정한 홍수빈도에만 맞춰있는 수해예방 사업들이 실제 큰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재해의 규모와 내용이 변한만큼, 이에 대응하는 방법도 변해야 한다. 그것은 그 동안 공고히 구축된 개발동맹의 해체도 수반해야하기 때문에 사회적 대응방법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생활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제기하는 자율적 시민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의 촛불시위처럼.

공사모습 전경. 물길이 흙탕물로 변했다.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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