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을 가다(1)] 프롤로그

오늘부터 ‘세계자연유산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북미주에 있는 몇몇 자연유산(캐나디언 록키, 옐로우스톤, 요세미티, 그랜드개년, 하와이화산국립공원 등)이 그 대상으로, 작년 1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며 탐방할 기회를 가졌던 미국과 캐나다의 세계자연유산 지역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송고했던 앞선 연재(“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가 미국의 국립공원과 자연유산에 대한 총론적 얘기라면, 이 글은 ‘각론’적 성격에 해당하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글이 좀 딱딱한 주제별 글인 반면, 이번 연재는 각각의 자연유산(국립공원)별로 탐방기 형식을 가미하여 그들의 관리정책을 소개해볼 생각이다.  

귀국한 지 한 달도 더 지나는 시점에서 이 연재를 다시 시작하려 하니 걱정이 앞선다. 벌써 아련한 기억으로만 떠오르는 곳도 있고 마치 꿈결에서 다녀온 곳 같은 느낌도 드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개학 날짜가 다가오면서 부리나케 한달치 일기를 쓰느라 쩔쩔매던 유년시절의 방학 숙제 기억이 떠오른다.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더 늦기 전에 밀린 숙제를 하는 느낌으로 글머리를 연다.

본격적인 탐방기를 쓰기 전에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공부를 조금이라도 먼저 하는 게 좋을 듯하다. 건조한 글은 피하고자 했지만 자연유산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래의 글은 주로 ‘위키백과(Wikipedia)’, 세계자연유산제주(jejuwnh.jeju.go.kr) 웹사이트를 참조했다).

세계유산이란?

세계유산(World Heritage)은 1972년 유네스코(UNESCO)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지정된 유산을 말한다.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된 유적과 자연 경관 등은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가진 유산임을 의미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으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자연유산은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로 이루어진 자연의 형태이거나 그러한 생성물의 일군으로 이루어진 미적 또는 과학적 관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 것 ▲과학적 보존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질학적, 지문학(地文學) 생성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서식지 ▲과학, 보존 또는 자연미의 관점에서 탁월한 세계적 가치를 지닌 지점이나 구체적으로 지어진 자연지역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일부 단어가 전문적 용어로 기술돼 있어 약간 어려운 개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 세 가지를 쉽게 풀어 얘기하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지형’과 ‘생물’, ‘경관’을 지닌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유산으로 제주도가 지정됐다는 것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뿌듯함은 바로 경제적인 효과로도 이어지니 더 즐거워진다.

세계유산의 경제효과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후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지역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관광객이 급증한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취락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시라카와고(白川郷)나 고카야마(五箇山) 지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관광객수가 급증했다. 시라카와고의 경우, 등록 직전 몇 년 동안에는 매년 60만명대의 관광객들이 방문했었는데, 21세기 초 몇년간은 140~150 만명 대의 증가세를 보여주었다. 이와이긴잔(石見銀山)이라는 지역에는 등록 이전과 대비 30배라는 경이적인 관광객 증가세를 보여주기도 했단다.

▲ 시라카와고의 주택, 출처: Wikipedia
▲ 고카야마 옛마을의 겨울 전경. 출처 : Wikipedia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여 관광객을 유인하려는 움직임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도와 2007년도에 일 문화청이 잠정목록 후보 공모를 내자,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30개 이상 지역이 응모하는 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동전의 양면’이라 했던가. 관광지화(観光地化)됨으로써 유산지역의 보전에 방해가 우려되는 곳도 나오고 있다. 물론 세계유산 지정으로 인해 관광에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도 존재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2001년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을 지키는 지속가능한 관광계획”을 작성하기도 했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별도의 꼭지로 얘기하려 한다).

지정 이후가 더 중요한 세계유산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등록된 유산의 보전과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한번 지정됐다고 영원히 세계유산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등록 후 보존 여부를 6년마다 보고하고 세계유산위원회의 재심사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 유산은 등록할 당시에는 존재했던 이른바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상실됐다고 판단되는 경우, 또는 조건부로 등록했으나 그 후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2008년)만 하더라도 제32차 세계유산위원회의 종료 시점에 세계유산목록에서 말소된 지역이 있었다. 아라비아 사막의 생지리학적 지대로 유명한 ‘아라비아 오릭스(영양) 보호구역(Arabian Oryx Sanctuary;오만)’이 그것이다. 이곳은 원래 보호계획의 불충분을 이유로 IUCN이 ‘등록 연기’를 권고하였으나 이를 무릅쓰고 1994년 등록했던 곳이다. 그러나, 계획이 정비되기는커녕 보호구역의 대폭 축소 등 오히려 치명적인 악화가 확인된다. 오만정부의 개발 우선 자세를 노골화시킨 사례로 받아들여져 말소가 결정된 것이다.

▲ 아라비안 영양(오릭스). 출처 ; Wikipedia

이곳만이 아니다. 독일의 ‘쾰른대성당(Kölner Dom)’도 세계유산 목록에서의 삭제가 계속 논의된 바 있다. 쾰른 성당은 인근의 고층 빌딩 건설에 따른 경관 파괴가 문제가 되어. 제28차 회의에서부터 제30차 까지 3년 동안 커다란 이슈가 된 바 있다. 이곳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지만, 주변 고층 건물 계획에 따른 경관 파괴 위기 때문에 2004년에 ‘위기에 처해 있는 세계유산(위기유산;危機遺産)’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대성당 주변의 고도 규제를 강화하는 등 시당국의 노력에 힘입어 2006년도에 비로소 위기유산에서 해제되게 된다. 쾰른 성당의 사례는, 세계유산은 자연경관과 환경의 보전이 의무적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주변지역 개발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Dresden Elbe Valley)’도 세계유산목록에서 말소 여부가 계속 심의 중에 있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곳을 ‘위기유산’ 목록에 등록하고, 세계 유산 목록 자체에서 삭제도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위기유산으로 등록된 이유는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엘베 계곡을 건너는 다리의 건설이 계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교량이 건설되면, 경관의 확산이 단절되고 제한되고 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또한, 그 때문에 주변 일대의 문화적 경관이 손상되는 경우, 더 이상 세계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인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2006년 6월 20일에는 드레스덴 시의회는 교량 건설을 위한 최초의 입찰을 금지했다. 2007년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 2008년 제32차 위원회에서도 계속 심의한 결과 일단 세계유산목록에서의 삭제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리건설 계획이 완전히 취소된 것은 아니어서, 위기유산으로의 등재는 계속되고 있다.

▲ 독일의 쾰른 대성당 / 출처 : 위키百科事典『Wikipedia』
▲ 드레스덴 엘베 계곡 /출처:위키百科事典『Wikipedia』

이상의 사례는, 세계유산 등재가 등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계유산 지정의 경제효과를 보기 위해서도 그렇다. 조금만 보존 관리에 소홀하면 ‘위기유산’으로 낙인찍히고, 더 나아가 ‘등록말소’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유네스코가 특정 지역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는 이유는, 그곳이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가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따라서 이렇게 중요한 유산을 자연재해나 전쟁,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유산파괴의 위험에서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더 나아가 유산의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력 및 각 나라별 유산 보호활동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립공원’이나 ‘국보’, ‘사적’이 한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대표하는 ‘뛰어난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세계유산’은 한 국가의 영역을 뛰어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유산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 소유권(?)과 관리 또한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화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비록 한라산과 용암동굴이 제주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만큼 이를 이용할 권리와 보호할 책임 또한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계속) <제주의소리>

<이지훈 편집위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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