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3)

   

꽃들 중에는 이름도 못생긴데다가 작아서 서러운 꽃도 있습니다. 작아서 그 서러움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에 옹기종기 모여보았지만 여전히 작아서 서러운 꽃이 있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 만난 유럽 원산의 2년초 '개자리'라는 꽃이 그랬습니다. '자리'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떤 대상이 차지하거나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식물의 경우에는 '개'자가 본래의 것보다 품질이 떨어지거나 먹을 수 없는 것에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두 말을 합해 보면 '자리는 차지하고 있으되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개자리를 만난 곳은 잔디밭이었습니다.
토끼풀과 비슷한 이파리마다 작은 톱니같이 불규칙한 모양을 달고 있어서 토끼풀의 변종인가 했더니 어느 날 노랑꽃을 피웁니다. 작기도 작아서 한 송이인가 했는데 그 작은 꽃에 또 들어있는 작은 꽃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적게는 다섯 송이 많게는 열 송이 정도가 모여 한 송이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어떤 꽃은 예쁘게 보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매년 피고 지는 그 모습이 한결같습니다. 자기가 타고난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서 피어납니다. 성형미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의 손에 의해 분재되는 것들도 있지만 자연은 스스로 자기가 타고난 모습을 바꾸지 않습니다. 신이 만들어 준 그 모습 그대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잔디밭에 자리한 개자리는 무심결에 아이들 발에 짓밟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핍니다. 이렇게 작은 꽃들이 당당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작은 절망에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자연은 인공의 어떤 옷도 입지 않고, 때로는 벗어버리면서도 넉넉하게 겨울을 납니다. 그 강인함 속에 새 봄이 들어있나 봅니다.

   

작은 꽃들도 모이고 모이니 제 철이 되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개자리를 어떻게 사진에 담을까 한참을 고심을 하다가 그들의 눈높이만큼 낮추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잔디밭에 배를 깔고 엎드립니다. 그렇게 엎드렸는데도 그들의 눈높이보다는 여전히 높습니다. 이젠 얼굴을 땅에 붙입니다. 그래도 그들보다 눈높이가 높습니다. 가까스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 작고 낮은 꽃들도 충분히 하늘을 이고 있고,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다가 오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고,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싹한 경험은 사진을 찍는다고 멋드러지게 배를 땅에 대고 누워 바람이 잔잔해 지길 기다리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뱀이 스르르 눈앞으로 지나갑니다. 기어다니는 것을 싫어하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만 뱀이 지나갈 때까지 그냥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꽃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엎드려야 할 때에는 꼭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황당한 경험은 오름의 자락에서 물매화를 찍는다고 멋드러지게 누웠는데 일어날 때 뭔가 미끄덩한 느낌이 듭니다. 채 굳지 않은 소똥을 깔고 엎드렸던 것이죠.

   

작은 꽃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하, 이렇게 생겼구나!'

꽃들을 색연필세밀화로 그리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아무리 큰 꽃이라도 돋보기를 통해서 작은 핏줄 같은 이파리의 모양새까지도 세심하게 관찰을 한 다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옹기종기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사방에 소리를 치는 것만 같습니다.

"벌들아, 나비야, 나 여기 있다."

   

작은 꽃들은 큰 꽃들보다 더 오래가고 악조건 속에서도 잘 버팁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꽃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지 모르겠지만 꽃의 신이 작아서 서러운 아픔을 강인함으로 덧입혀 준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 곁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것이겠지만 그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아예 없다 생각하고 무시하는 인간의 오만방자함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 마음 아플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제주 동쪽 끝마을 종달리에서 서쪽 끝마을 대정읍 하모리까지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녀오는 길, 이러다간 이 좁은 땅 제주도가 아스팔트로 꽉 차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습니다. 2차선 도로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가는 곳마다 4차선으로 뻥뻥 뚫려있고, 도로를 넓히는 공사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서 이렇게 숨쉬며 살아가야 할 땅을 덮어버리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더군다나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제주에 저 육지의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까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답답했습니다.

개자리는 이름도 못생기고 작아서 서러운 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사람의 편견일 뿐, 개자리는 자기가 피고 질 수 있는 땅, 비록 두 해살이의 삶이지만 그 땅이 있음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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