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빛깔과 쓴맛을 간직한 '자주쓴풀'
고난의 빛깔과 쓴맛을 간직한 '자주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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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4)

▲ 자주쓴풀.ⓒ김민수
제주에는 화산의 폭발로 생긴 오름이 368개나 된다고 합니다. 일년 365일보다 세 개가 많은 오름들 마다 각기 다른 곡선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식생도 다릅니다. 그래서 대략 어느 오름에 언제쯤 올라야 어떤 꽃을 볼 수 있는지를 가늠하면서 오름에 피어있는 꽃들을 찾아 여행을 합니다.

어떤 꽃이 필 무렵이 되면 그 오름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척에 오름이 있더라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에 좇기다 보면 하루 이틀 뒤로 미루다 갈 때도 있고,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미 꽃이 피고 진 후일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피어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때는 피기도 전에 가서 그 꽃이 혹시라도 없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반드시 때가 되면 그 곳에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듯 피어나는 꽃들을 봅니다.

간혹은 인간들의 무자비함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때로는 무참하게 뽑혀지는 꽃들도 있습니다. 소유욕으로 인해 뽑혀지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아예 그 존재자체를 무시당하는 꽃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도로와 휴양시설들의 말끔한 콘크리트 혹은 아스팔트에 묻혀버리는 꽃들도 있습니다.

▲ ⓒ김민수
어느 가을날 오름을 오르다 눈맞춤을 한 자주쓴풀, 맨 처음 눈맞춤을 할 때까지는 그렇게 꼭꼭 숨어 숨바꼭질을 하듯 하더니만 한번 조우를 하고 나니 가을날이면 오름의 풀섶 여기저기에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옹기종기 보랏빛의 별 모양으로 피어 있는 꽃, 꽃잎마다 핏줄같이 선명한 보랏빛의 가느다란 선들을 보면 꽃의 피는 보랏빛인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환경이 좋으면 무성한 꽃을 달지만 어떤 곳에서는 두어 송이를 피울 뿐입니다. 그러나 단 한 송이를 달고 있다고 해서 주눅들거나 다른 꽃들과 비교하면서 피어나지 않고 자기가 달고 있는 꽃 한 송이,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의 마음을 봅니다.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라는 사람, 그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비교우위에 서야 성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비교의 기준의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가진 것 보다 적게 가졌으면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한다면 선의의 경쟁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끊임없는 경쟁구도로 우리들을 끌고 들어가 쉼 없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자연의 속도가 있습니다.
그 자연의 속도는 서두르는 법이 없고, 자기의 때가 되어야 비로소 피어납니다. 필 때를 알고 질 때를 압니다. 다른 것들이 저만치 앞서 있다고 해도 자신의 때가 아니면 기다릴 줄 압니다. 그래서 자연입니다.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 ⓒ김민수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범죄로 인해 자연도 그 짐을 함께 지고 갑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인간들이 타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고 인간이 범죄를 했는데 그로 인해 모든 관계의 단절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아가 분열되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분열이 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도 금이 가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원수관계가 됩니다. 종교적으로는 이런 분열된 관계들을 회복해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자주쓴풀은 용담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입니다. 꽃이 자주색이고 뿌리가 매우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한방에서는 자주쓴풀의 말린 뿌리와 줄기를 당약(當藥)이라 하여, 건위제,지사제, 고미제(苦味劑) 등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고미제는 특별히 우리가 사용하는 부탄가스에 첨가되기도 하는데 부탄가스흡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첨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칵테일을 만들 때에도 첨가하여 색다른 맛을 낸다고 하니 동일한 쓴맛도 어떻게 사용되는 가에 따라서 그 쓰임새가 다릅니다.

▲ ⓒ김민수
자주쓴풀의 모양새와 성격을 알고 나니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꽃으로 인해 보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위나 장이 약해 고생하는 이들의 병을 고쳐주고, 나쁜 것을 몸에 모시지 않도록 방지도 해 주고, 때로는 그 쓴맛을 오묘하게 결합시켜서 즐거움을 주니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유용해야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나름대의 존재의 가치가 있을 테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어쩌면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은 지켜나가고, 위협을 하는 것들과는 투쟁을 해나가야 하겠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들은 파괴하고, 없어져야 할 것 같은 흉물스러운 것들을 추구하는 것만 같은 우리네 현실입니다.

▲ ⓒ김민수
얼마나 쓴가 한번 맛을 보자고 했습니다.
한 뿌리 조심스레 캐서 집으로 가져와 잔뿌리를 하나 잘라 씻어두고 나머지는 화단에 정성껏 심었습니다. 두해살이 풀이지만 꽃이 피고 지면서 씨앗이 떨어지면 뜰에서도 혹시나 자주쓴풀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야에 있는 것을 가져다 심어보았자 그 곳에 피어있는 것보다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흔한 것이라도 캐어다 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주쓴풀을 심고는 잘라놓은 잔뿌리를 살짝 씹어보았습니다.
맨 처음에는 이름과는 달리 쓴맛이 없는 것 같았는데 쓴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써서 미처 혀가 그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쓴맛이 돌기 시작하자 사탕으로는 그 쓴맛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온 종일 입안에서 쓴맛이 맴돌았습니다. 자주쓴풀이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쌤통이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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