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형법상 ‘증거재판주의’ 원칙 강조…법원, 1심서 인정한 ‘강압지시’도 기각

김태환 지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광주고법 제주부(재판장 이홍훈·제주지법원장)의 ‘전면무죄’ 판결은 형사소송법상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다시 한 번 일깨운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피의자의 유죄가 정황적으로 의심이 된다하더라도 형법상 유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하며, 증거가 명확치 않을 경우 피고인의 이익이 되도록 판결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형법재판의 원칙을 지킨 재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태환 지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검찰의 구체적인 증거는 김성현 전 제주시상하수도사업소장의 진술뿐이었다. 때문에 검찰의 주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김 전 소장의 진술이 재판부로 하여금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 사실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증거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피고인의 이익에 부합돼야"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대로 재판부는 김성현 전 소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는 반면, 김 전 소장과 진술이 엇갈린 박 모 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일관성이 유지된다며 김 전 소장의 진술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가장 큰 이유로 김 전 소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배척’ 사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김 전 소장이 1·2차 검찰 진술에서는 “김태환 지사(당시 시장)가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관계로 스스로 알아서 현대텔콘 소유주인 장모씨로부터 각서를 받고 사용승인 허가가 가능하도록 하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진술했으나, 3차 진술에서는 김 지사가 ‘원인자 부담금을 받지 않더라도 준공처리를 해 주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으며, 또 4차 진술에서는 ‘조례를 위반해서라도 준공처리 해 주라’며 고압적인 지시를 했다고 진술해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진술의 신뢰성 여부에 대해 “통상적으로 검찰에서의 진술은 첫 진술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김 전 소장의 진술은 횟수를 더할수록 김 지사에게 강도 높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김 전 소장 진술 회를 더할 수록 김 지사에게 불리, 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논란이 됐던 쟁점, 즉 김 전 소장이 김 지사로부터 강압적인 지시를 받았다고 했던 제주종합경기장 내 선수단실 정황에 대한 진술도 김 전 소장의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가름 짓는 중요한 열쇠였다.

김 전 소장은 당초 검찰 진술에서 “선수단실이 워낙 넓어 김 지사가 강압적인 지시를 내리더라도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밝혔다가 1심에서는 “35평 정도 되나 체육회 관계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강압적 지시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해 이 부분 역시 진술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김 전 소장과 김 지사가 만났다고 하는 시간도 김 전 소장의 진술과 박 전 과장의 진술, 그리고 상하수도사업소 직원의 진술이 엇갈려 전반적으로 김 전 소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 김 전 소장 진술 근거로 한 검찰 공소제기 내용 전면 기각

또 하나 통상적으로 부당한 지시를 내릴 경우 은폐된 장소를 택하는 게 상식과도 부합된다는 점도 거론됐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면 밀폐되고 은밀한 장소인 제주시장실로 불러 지시를 내리는 게 상식적이나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공개된 장소에서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점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으며, “김 전 소장이 김 지사로부터 강압적인 지시를 받았다면 그 이후 처리되는 상황을 보고하는 게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 같은 보고가 전혀 없었다는 점 역시 김 지사가 강압적인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김 전 소장의 진술에 대해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문제점을 제기한 재판부는 그러나 박 모 전 제주시주택과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박 전 과장의 진술은 시종일관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으며, 검찰이 박 전 과장이 검찰 출두 이전과 이후에 김 지사와 만나 입을 맞췄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을뿐더러 자리에 함께 있었던 제주시 공무원의 검찰 진술 역시 박 전 과장의 진술과 일치하고 있다”며 박 전 과장의 진술을 채택했다.

재판부는 또 검찰의 제기하는 간접적인 증거 ▲김 지사와 장모씨와의 친분관계 ▲원인자 부담금을 대납한 사실 ▲제주시 상하수도사업소 과장이 검찰에 제출할 일부 서류를 훼손한 사실 ▲박모 과장이 검찰 출두에 앞서 김 지사를 만난 정황으로 미뤄 의문점이 있기는 하나 이를 유죄로 인정할만한 구체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유죄를 인정하기는 힘들다는 점도 판결문에 적시했다.

검찰, 1심서 인정된 ‘강압지시’도 무죄판결…무리한 ‘공소제기’ 지적 잇따를 듯

재판부는 결국 김 전 소장의 진술이 일관성과 사전의 전후 사정을 근거로 “김 지사가 김 전 소장에게 내린 검토지시는 ‘사용승인이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 보라’는 취지로 김 전 소장에게는 참고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전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항소심의 판결은 김태환 지사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환영’할만한 판결이나 검찰 입장에서는 1심보다도 더 당혹스러운 판결일 수밖에 없다.

1심 판결은 김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김 지사가 김 전 소장에게 내린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 검찰에서 항소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해 줬다.

즉 김 지사가 강압적인 지시는 했으나 이는 사용승인 권한자가 아닌 김 전 소장에게 내린 것으로 직무와 연관성이 없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2차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바꿔 박 전 과장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도 추가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박 전 과정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는 물론, 1심에서 인정했던 김 전 소장에 대한 ‘강압적 지시’마저도 없었던 것으로 판결해 검찰의 공소제기를 전면 기각한 것이다.

때문에 김 지사 입장에서는 완전한 무죄를 얻어내 ‘현대텔콘 게이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반면, 검찰입장에서는 ‘무리한 기소’였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결국 당초부터 제기됐던 문제, 즉 김 지사의 범죄사실에 대한 구체적 증거 없이 단지 김 전 소장의 진술, 그것도 1~2차 진술과 3~4차 진술이 엇갈리는 논란의 소지가 많은 진술에만 의존해 김 지사를 기소한 검찰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1심에 이어 이번 항소심에서도 제기되게 돼 이래저래 검찰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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