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의료관광목적지의 성장배경

의학적 치료와 부수적으로 관광활동이 병행되는 의료관광의 형태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소급할 수는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의료관광은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자국 의료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타국의 선진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의 범위는 과거 및 현 시점에서도 경제수준에 의해 제한되며 부차적으로 정치상황에 의해 수요가 억제되었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동서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이후 낙후된 의료수준에 불만족한 저개발국가의 부유한 환자가 미국을 위시한 선진의료국가로의 입국이 자유로워지면서 국가 간 의료서비스(medical service) 영역이 1994년도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해 규정되기에 이른다.
 
저개발국가의 극소수 상류계층이 선진의료국가로 유입되는 현상은 GATT뿐만 아니라 1997년 유엔무역개발협의체(UNCTAD)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의료서비스 이동의 관점에서 규정되었다. 자국의 낙후된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생존율이 현저히 감소하는 중병(重病)을 치료하고자 선진의료기관이 소재한 대도시를 방문한 환자로서는 치료 이외의 변수는 검토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저개발국가(South)로부터 선진국(North)으로의 의료서비스 유입규모는 제한적이며 의학치료에 국한된 반면 정반대로 선진국으로부터 저개발국가로의 의료서비스 유입규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치료뿐만 아니라 관광활동도 사전에 계획한 것이다. 따라서 의료관광이란 선진국의 중산층 환자가 의학적 치료 이후 관광활동이 가능한 저개발국가를 선택한 것에서 보편화된 것이다.
 
의료선진국의 중산층 환자가 저개발국가의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된 계기는 크게 의료정책에 대한 시장실패(market failure)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의 영향이 작용하였다. 시장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에서는 의료비용 지출여력이 충분한 상류층과 무상의료지원을 받는 저소득층과는 달리 민영보험가입이 여의치 않은 상당수 중산층으로서는 막대한 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타국에서 저렴한 의료비용으로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선택하게 되었다. 정부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인 영국을 위시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의료서비스 배제계층이 최소화된 공공의료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시의적절한 의료서비스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중산층 환자의 자구책이 강구되었다. 이처럼 자국의 의료서비스에 불만족한 수요(demand)를 기회로 인식한 저개발국가에서 개발한 의료서비스 상품이 수요에 부응하면서 의료관광시장이 성장하게 되었다.
 
의료관광시장을 개척하고 무한한 성장잠재력이 내재된 대표적인 저개발국가로는 태국과 인도, 말레이시아, 그리고 싱가포르를 열거할 수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의 휴양요양지였던 태국의 의료여건은 고차원의 의료기술이 전제된 성전환수술이 보편화된 수준으로 발전하였지만 일반적인 치료목적의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별다른 노력은 경주하지 않았다. 그런데 태국정부로부터 의료비용을 지원받는 공공기관 종사자를 유치하기 위한 병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이버나이프(cyber knife)를 위시한 최첨단 의료기기 도입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였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존 공무원의 사립병원 이용비용에 대한 정부지원이 중지되면서 사립병원은 심각한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의 대처방안으로 해외환자 유치 움직임이 병원 차원에서 시작된 후 태국정부의 전폭적인 정책지원이 병행되면서 의료관광시장의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세계 최고수준으로 인정받는 미국 의과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부를 창출한 인도출신 의사 중 일부가 인도의 열악한 의료여건에도 불구하고 귀국한 후 설립한 병원으로부터 인도의 의료관광이 시작되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사회의 유수한 의료기관에서 풍부한 임상경험을 쌓은 인도출신 의사를 주축으로 역시 세계적 수준인 인도 의과대학을 졸업한 젊은 의사가 충원된 병원의 주요 고객은 인도 상류층뿐만 아니라 해외거주 동포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특히 보장범위가 제한적인 유학생 의료보험의 문제로 방학기간 중 잠시 귀국하여 의료치료를 받은 후 유학 대상국가로 복귀한 인도학생의 의료서비스 구매경험은 구전을 통해 주류사회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의료수가보다 1/8 수준으로 저렴하지만 완벽한 영어구사가 가능한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인도의 의료여건은 풍부한 관광자원과 결부되면서 매년 큰 폭의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의 여파로 의료관광에 주목한 태국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의 의료관광도 외환위기 직후 시작되었다. 그런데 개별 병원의 기업관리 측면에서 해외로부터 환자를 유치한 태국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산업다변화의 일환으로 국가 차원의 의료관광 육성전략이 시작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슬람교가 국교(國敎)인 점을 십분 활용하여 인접한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중동 소재 국가를 전략적 표적시장으로 설정하였다. 이처럼 소규모 표적시장에 집중한 관계로 의료관광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소비용으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이라든지 국민총소득(GNI)의 기준을 적용하면 저개발국가 범주에 싱가포르를 포함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태국 및 인도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의료관광목적지라는 점에서 비교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상품과 금융의 중개무역지로서 싱가포르에는 다양한 배경의 외국국적 방문객의 장단기 체류가 일상화됨에 따라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사항을 개별적으로 충족시킨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무엇보다도 상이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의 오류가능성을 최소화기 위한 방안이 대두되었다. 결과적으로 까다로운 인증절차에도 불구하고 2009년 5월 현재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로부터 인증을 획득한 병원의 수(數)는 세계 최대인 15개로 이는 국제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지표로 해석된다.
 
아시아에 소재한 대표적인 의료관광목적지 중 태국과 인도, 그리고 싱가포르의 의료관광은 민간부문으로부터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의료시설이 집중되면서 제주도를 포함한 지방의 의료여건으로는 국내 환자유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민간부문의 자체역량으로 국제적 의료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관광목적지로의 발전을 추진 중인 제주도로서는 정부차원의 육성전략을 채택한 말레이시아의 사례처럼 공공기관 주도로 기존 병원에 대한 정책지원을 모색하거나 또는 규제완화의 방식으로 새로운 민간병원, 즉 영리병원의 유치를 모색할 수 있다. 전자인 경우 지방재정으로는 충담할 수 없는 막대한 소요예산의 조달문제가 제기되고, 후자는 의료공공성의 포기뿐만 아니라 특히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병원설립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관광의 후발주자로서 인지도가 낮은 제주도에서 선점효과를 점하고 있는 의료관광목적지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의료비용 또는 의료기술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점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의료관광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관계로 세계적 수준의 의료진으로 충원된 병원을 제주도에 설립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투자위험이 매우 높아 국제인증(JCI) 획득이 가능한 영리병원 설립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의 사례처럼 초기 단계에서는 공공기관 주도로 기존 병원의 혁신을 도모하여 의료관광목적지로서의 인지도를 형성한다면 자연스럽게 민간부문의 투자도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