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주말 한라산 철쭉꽃 구경을 나섰다가 영실 계곡으로 하산하던 길에서 등산객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은 당신의 서거 소식을 사실로 확인하면서 하산길이 천근만근 무게로 가슴을 짓눌러 왔습니다.  답답하고 착잡한 심정, 그리고 울분을 가눌 길 없어 몇 번인가 주저앉아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구름이 몰려오더군요. 하늘도 당신의 기막힌 죽음을 그렇게 슬퍼하는 듯 싶었습니다.

부산에서 그리고 제주에서 당신과의 남다른 인연을 떠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좀 격한 표현을 쓰렵니다.

노무현, 당신을 부엉이 바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 몬 이 나라는 뒷골목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비열하고도 치사하고도 파렴치한 정권입니다.

세상에 어느 막되 먹은 나라에서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을 검찰에 불러다 놓고 새벽 2시까지 조사를 한답니까. 방문조사라는 최소한의 예우도 관용도 없는 정권에 철저히 절망합니다.

저는 감히 말하렵니다.

당신의 죽음은 분명히 이 3류 막가파 정권이 저지른 정치적 타살입니다. 엠비 집권 이후 유일한 성과가 있다면, 그건 노무현과 그 측근 죽이기였습니다. 전 방위로 죄어오는 그 심적 압박과 고통을 더는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당신의 브랜드 이미지인 청렴한 도덕성을 갈가리 찢어놓은 정권의 주구, 검찰에 더 이상 욕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겠지요.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죽음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자 한 당신의 그 절박함과 결연함도 이해합니다.

이런저런 당신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구현하려 애썼던 지역통합의 정치와 지방분권,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 종부세를 통한 부동산 투기 억제, 남북교류협력과 화해 같은 정책들은 정의와 평등의 세상을 앞당기고, 국가의 격을 한 단계 더 높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치적이었습니다.

‘반역의 섬’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폭력에 희생된 4.3 영령들과 제주도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습니다. 공산폭도들이란 이름으로 오랜 오욕의 세월을 살아온 그네들에게 그것은 어둡고 짓눌린 가슴을 뚫는 한줄기 빛이었고 청량제였습니다.

당신이기에 할 수 있었던 그 역사의 쾌거를 우리는 영원히 고이 기억할 것입니다.

만년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벗겨준 당신에게 권력의 수장이 바뀌기 무섭게 칼날을 들이미는 어찌할 수 없는 저 검찰의 후안무치한 본색에 연민과 분노가 함께 치밉니다.

이라크 파병 때, 김선일의 죽음에서, 또 황우석 사태에서 참여정부에 비판의 날을 세웠던 절 이해하고 용서하시겠지요.

수 천 억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광주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내란의 수괴들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허망하게 가야만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있었기에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 한 때나마 용기와 위안과 희망을 가졌던 지난 시절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원칙을 존중했기에 타협을 몰랐고, 양심이 있었기에 남보다 몇 갑절 더 아팠을 바보 노무현 님!

당신의 정치 인생은 협잡과 술수를 다반사로 여기는 어제와 지금 이 정국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두고두고 큰 귀감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제 모든 고통과 번민 다 내려놓으시고 당신이 돌아간 그 나라에서 부디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길 삼가 머리 숙여 비옵니다. /김현돈 제주대 철학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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