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평화의 섬(3)] 이지훈 대표…지도자들 먼저 인권·환경·복지마인드 필요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정부에 의해. 그것도 국내도 아니고, 동북아도 아닌 '세계' 평화의 섬이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난과 비극의 역사로 점철됐던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난다니 어느 누가 환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임문철 신부님도 지적하셨듯이 제주가 '평화의 섬'을 주장할 만 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곰곰이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제주의 생명 곶자왈이 골프장으로 파헤쳐지고, 생명 보다는 개발의 논리가 횡횡하는 제주지역의 현실이 아닌가? 제현우 사관께서 말씀하셨듯 웬 평화의 섬에 노숙자들이 넘치고 있는가?

지율스님의 1백일 단식으로 다시금 '생명과 평화'라는 화두가 전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이 때에, 제주가 진정 평화를 자신 있게 얘기할 만큼 생명평화의 섬이 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의 진정성 보다는 상품화에 앞서고 있는 제주지역의 분위기를 보며, 벌써 5년 전인가, 지역일간지에 기고했던 내용을 떠올린다.

"최근 평화의 섬 논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우려할 만한 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평화라는 개념을 단순히 '전쟁 반대' 혹은 '대립과 갈등이 없는 - 쉽게 말해 시끄럽지 않은 -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며, 둘째는 '평화의 섬, 제주'를 위해서는 국가의 지정이 필요하고 평화재단, 국제기구 등이 유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전부이거나 필요조건은 아니다.

UN은 올해(2000년)를 '세계 평화문화의 해'로 선포함은 물론, 그 주무단체인 유네스코는 '평화의 문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언 2000'을 선포한 바 있다. 이 선언에는 '모든 생명의 존중, 폭력의 거부, 타인과 나눔의 실천, 상호 이해와 경청, 지구환경 보존, 연대의 회복' 등 6가지 약속을 담고 있다.

이러한 평화 개념의 확장은 물론, 평화운동의 폭 또한 6∼70년대 반전·반핵운동의 범위를 넘어서, 평화 여성운동, 생태평화주의 운동, 인권운동, 선진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 반대하는 운동과 외채탕감 운동 등 국제적 경제정의 운동 등을 포괄하여 확장되고 있다.

평화(平和)란 어원은 '밥(禾)과 입(口)의 평등'을 의미한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쟁취되는 것이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재연된 중동사태만 보더라도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극명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제주가 진정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국가가) 지정해 주거나 여타의 기구가 유치되면 평화의 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이 땅을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노력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런 점에서 '평화'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제주도내의 지도급 인사들이 먼저 인권과 환경, 복지의 마인드를 가지고 제주도를 지속가능한 사회, 정의로운 복지공동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하여 제주가 인권과 환경, 복지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모범적인 지역이 될 때, 누가 지정하지 않고 스스로 선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평화의 섬으로 자리잡게 됨은 물론 세계적으로 소문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 글을 쓴 지 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이 시점에서 오히려 더욱 강하게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 평화의 섬'은 국가의 '공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주사회에 생명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때 자연스럽게 평화의 섬으로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에 오면 어린이도, 노인도, 여성도, 장애인도, 가난한 사람도, 외국인도...누구든지 자연과 벗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제주를 만들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꾸는 꿈이다. 

* 이지훈,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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