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긴급제안(3)] 문제는 사람이다.

[제주대 철학과 김현돈교수]혈연, 지연, 학연에다 돈봉투 돌리기, 금품 제공, 식사 대접 등. 선거 운동에서 나올 수 있는 갖가지 비리와 탈법 사례가 모두 동원되었다. 지난 15일 치러진 제주도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당선증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후보자의 집에서 미처 못 돌린 돈봉투와 억대의 뭉칫돈이 쏟아져 나오고, 금품 수수 내역이 적힌 장부가 발견되었다. 당선자의 운동원인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제주교육을 희망의 에듀토피아'로 만들겠다던 당선자의 측근이 맨 먼저 법망의 올가미에 걸렸다. 당선증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제주도는 총체적인 교육 비리의 온상으로 도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교육감이 그렇게 대단한 자린가?" 9시 전국 네트워크로 방송된 제주발 뉴스를 보던 고등 학생 아들 녀석이 냉소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차떼기로 검은 돈을 주고받은 정치권의 비리 행각을 알고 있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 무슨 말로 답할 수 있을 것인가. 부끄럽다. 참담하다. 그리고 서글프다.

"교육감이 그렇게 높은 자린가?

아침 조회 시간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입만 열면 정직과 정의를 가르쳐 온 그들이 아닌가. 그 손으로 구린내가 나는 돈을 세고, 책 읽고 연구해야 할 시간에 돈봉투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선거꾼으로 전락한 이 추태를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 것인가.

더군다나 현 교육감이 임기 말년에 터져 나온 이런저런 비리 의혹으로 도피성 병가를 내어 집무를 못하고 있고, 승진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교육감의 최측근 인사 담당자가 사법 당국에 구속된 상태에서 치른 이번 교육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일들을 거울삼아 한 치의 의혹도 없이 공명정대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쩌자고 도 교육행정의 수장이 되려는 사람들, 어떤 직책에 앉은 이들보다도 더 도덕적 청렴성이 높아야 될 이들이 한낱 정치모리배와도 같은 추태를 저질렀던 말인가.

오호 통제라!

청정한 평화의 섬 이미지에 먹칠을 한 이들은 도민들에게 이를 어떻게 사죄할 것인가. 제주도의 청정 이미지는 비단 물이 깨끗하고 공기가 깨끗하다고 해서 부각될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삼무의 섬'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밖으론 조정의 핍박과 외세의 침탈 속에서, 안으론 척박한 화산도의 풍토 속에서도 제주인들은 근검 절약하고 상부 상조하며 탐라 공동체의 미덕을 지켜오지 않았는가.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고 인문환경이 오염되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대내외에 떳떳이 제주도의 청정 이미지를 내세울 수가 있다. 누구보다도 더 앞장서서 아름다운 인문환경을 지키고 가꾸어야 할 선생님들이 이를 훼손하는데 발벗고 나섰다. 교육자치의 근본 정신을 뒤흔든 중대 사건이다. 오호 통제라!

따라서 당선자는 지금이라도 당선을 반납하고 미련 없이 사퇴해야 한다. 이런 형국에 취임하여 업무를 본들 누가 그를 믿고 따르겠는가. 조금이라도 탈법과 비리에 연루되었다면, 다른 후보들도 응분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들을 도와 온당치 못한 대열에 함께 서서 제주교육의 명예를 더럽힌 교사, 학부모, 지역 유지 등 학교 운영위원들도 모두 엎드려 반성하고 현직에서 용퇴해야 한다.

문제는 사람이다

이 기회에 원점에서 제주교육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고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교육감 일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은 물론, 소수의 운영위원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지는 현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제도는 없다.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모든 제도는 허사가 되기 십상이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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