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5):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평화의 균형자'로서 제주가 돼야

최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도민사회에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지난 2002년과 달리 학계나 언론계, 사회단체 일각에서 조차 해군기지 건설을 조심스레 찬성하는 논조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사안이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는데...달라진 것이라면 해군이 이지스함이나 미항모의 입항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또한 올해 1월 정부에 의해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최근 독도사태 등으로 불거진 동북아지역의 긴장상태 조성이 이러한 논리를 부추기는 커다란 상황적 배경이 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이렇게 상반된 논리가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른바 ‘국가안보’를 위해서, 찬성론자는 해군기지 설치를, 반대론자는 해군기지는 물론 어떠한 형태의 군사기지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해군기지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국가안보가 위태로운데 우리만 평화롭게 잘살자는 ‘지역이기주의’도 아니며, 오히려 제주도를 비군사지대화시킴으로서 참여정부가 구상하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전진기지’로 기능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및 나아가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앞선 글에서 누누이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군기지가 필요하며 그것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의는 평행선으로 갈라진다.

이렇게 엇갈리는 이유를 이제 곰곰이 찾아보아야 한다. 해군기지 설치 문제가 단지 화순지역이나 안덕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 전체 명운이 걸린 주요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정말 허심탄회하게 서로간의 주장을 나누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대전대 권혁범 교수의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삼인)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다소 도발적 제목의 이 책 속에 실려있는 ‘국가안보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글을 통해 이 문제해결의 단초를 찾게 되었다. 하여 다소 길지만 권교수의 글을 가능한 전문 그대로 요약 소개하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보려 한다.

#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권 교수는 먼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인들의 구호가 “대다수 군인들의 ‘기본적 사상’”이라 여긴다. “전쟁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게 군인들의 운명이고 그렇다고 전쟁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는 이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평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게 현재 화순에 해군기지를 세우고자 하는 해군과 이른바 ‘자주국방네트워크’로 불리어지는 군사마니아 들의 기본인식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이러한 특정한 입장의 ‘군사주의 안보 담론’이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정치적 논쟁이나 이론을 넘어선 초월적인 것으로 이 담론은 이미 우리사회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안보없이 국가없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구호로 표방되는 ‘국가 안보론’은 누구에게나 ‘절대적 선’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비교적 개혁적인 매체에서도 이른바 시민운동을 하는 진영 내에서도, 진보적 지식인 그룹 일부에도, 더 나아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그룹 내부에도 실제 이 담론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근 독도 사태를 둘러싼 언론의 반응과 민주노동당의 성명이 대표적 사례이며, 지역적으로는 화순항 해군기지를 둘러싼 제주지역 일부 오피니언 그룹 일부의 조심스런 찬성 논리가 바로 이 담론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권 교수는 “안보가 무소불위의 권력 담론이 되고 그것에 대한 어떤 문제 제기도 금기시되며 사람들의 일상적․공적 의식에 보편적으로 스며든 것은”, 크게 보아 ▲국가주의, ▲분단으로 인한 반공 반북주의, ▲과도한 국민 의식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먼저 국가주의와 관련 권교수는, “한국에서 초국가주의적 식민지 통치, 분단, 개발 독재의 경험은 국가를 사회나 개인, 사적 집단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실체로 각인시켰고 ‘안보’는 당연히 ‘국가 안보’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국가 안보는 번영(경제)과 더불어 국가 및 그것에 귀속된 ‘국민’들이 의문의 여지없이 자동적으로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권교수는 “한국의 국가 안보 담론이 다른 후후발국과도 다르고 또한 강력한 것은 그것이 민족 내부의 적을 전제로 하는 ‘분단’적 사고와 현실, 그것이 세계적 차원의 냉전과 결부되어 발생한 반공 반북주의 이데올로기와 겹쳐있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배경(국가주의와 반공주의)은 민주화되고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 안보의 ‘힘’ 담론과 평화

“안보주의 담론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배타적 타자의 전제다. 안보는 가상의 적, 잠재적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네이션(국가, 민족)을 강조할수록 ‘우리’를 지키기 위한 안보주의는 정당성을 얻으며 강화된다.”

권교수는 “한국은 식민지 경험, 분단 체제 등으로 인하여 다른 어떤 근대 국가보다도 국민 의식이 강한 사회적 공간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최근 독도문제와 동북아지역의 긴장이 높아가면서 이 담론은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복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제주지역 오피니언 그룹 일부의 찬성론도 이러한 상황적 논리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권 교수는 묻는다.

“과연 국제 정치 현실은 정글인가? 약자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하고 있는가? 약자가 생존하는 것은 오로지 힘을 키울 때뿐인가? 국력이나 국익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성립 가능한 개념 혹은 실체인가? ‘우리’와 ‘적’은 정말 이해관계가 갈리는 두 개의 이질적 집단인가? 안보 태세 강화보다는 평화를 강력하게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 국가의 물리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와 국제적 협력이 대안은 될 수 없을까?”

약자가 생존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것만이 아니며, 안보태세 강화보다는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과 국제적 협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다양한 대안들이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오로지 힘의 증강을 통한 국가 안보의 강화만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으며 유발하는 정치사회적 영향과 암시에 대한 생각도 묻혀버린다”고 권교수는 우려하고 있다.

# 이러한 안보 담론의 종착역, 그 정치사회적 암시

끝으로 권교수는 “최근 안보 담론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면서 여전히 유포되고 있는 생각은 앞서 얘기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식의 논리”라고 얘기한다.

이 로마시대의 '힘의 논리'가 2005년 현재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특히 독도사태와 최근 동북아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관계 하에서 이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권교수는 “힘의 논리는 언제든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군축, 화해, 협상 등의 비군사적 접근의 공간을 위축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힘의 담론이 강할수록 타협과 외교의 폭은 줄어들며, 동시에 안보 담론은 ‘국민 국갗라는 단위를 기초로 하는 배타적 사유 방식을 자연스레 강화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관계/유대, 초국민적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가려버린다”고 경고한다.

주목할 것은 “국가 안보라는 개념에 의해서 생겨나는 ‘힘’이 사실은 전쟁을 유발하고 국가의 안전을 훼손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를 권교수는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군비 증강이 상대방의 잇따른 군비 증강으로 인해 되려 안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안보의 기반을 훼손하고 결국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사실 안보 담론은 항상 반안보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다.

# '평화의 균형자’로서의 제주

왜곡된 ‘안보론’은 이른바 ‘힘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힘의 논리’는 단순히 ‘군사력’으로 등치된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우리 민족의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동북아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단순한 군사력의 확대로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며 오히려 ‘연성파워’의 선점이 중요하다.

현재 진행중인 동북아지역의 긴장관계는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군비증강 및 핵보유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대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은 자체의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동북아 공동안보 증진을 위한 외교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의 합리적 핵심이며, 그 균형추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최적지가 제주도라는 말이다.

‘동북아 균형자’란 다시 말해 “역내 국가간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평화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평화의 균형자'란 주변국간 갈등을 조정·완화시키고 평화와 협력을 촉진하며, 지역의 공동이익 증대를 위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다.(2005.4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이러한 ‘평화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전진기지가 바로 ‘세계평화의 섬, 제주’라는 말이다.

그래서, 동북아균형자론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보여지는 문정인 위원장 조차 제주도를 '비무장지대화' 시키고 더 나아가 군사적 목적의 어떠한 선박이나 항공기도 이착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사족 : 제주도의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군사기지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왜 대한민국 정부가 ‘독도’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지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군대를 파견하는 순간 이른바 ‘분쟁지역’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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