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8)

   
양지바른 산등성이나 무덤가, 습지에서도 따스한 햇살 한 줌만으로도 마냥 행복해하며 피어나는 노란꽃이 있습니다. 맨 처음 피어날 때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하지만 이내 햇살만 비추면 반짝반짝 광택을 낸 것처럼 반짝이는 '미나리아재비'가 그것입니다.
미나리아재비는 '미(물을 뜻하는 말)+나리(나물을 뜻하는 말)+아재비(아저씨의 낮춤말로 아주 가까운 사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는 있는데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질 때 '아재비'란 말을 사용한답니다.

   
4월의 햇살에 피어나고 5월의 햇살에 더욱 더 빛나는 미나리아재비의 꽃말이 '천진난만함'이라는 것을 알고는 참 재미있는 꽃말이라 생각했습니다. 햇살 따스한 날 동네 개구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온 세상의 주인이 된 듯 구김살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풍경은 이제 그리운 옛 풍경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다닐 만한 골목길도 없고, 설령 그런 골목길이 있어도 더 이상 그 곳을 뛰어다닐 아이들도 없으니 어쩌면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더 영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천진난만함은 일찍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들꽃은 시대가 변해도 자신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곳만 있으면 변함 없이 피어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꽃은 마치 별똥이 떨어져 들판에 별을 박아놓은 듯합니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던 별들이 낮에는 들판에 내려와 꽃들로 피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 되면 기지개를 펴듯 줄기를 맘껏 하늘을 향해 올립니다. 속이 텅 빈 기다란 줄기는 가볍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꽃을 '애기젓가락풀'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러나 이름이 그렇다고 정말 아가들의 젓가락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 난 손으로 이 꽃을 만지면 좋지 않다고 하니까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미나리아재비를 만나러 갔던 날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리겠습니다.

미나리아재비는 원래 하늘에 살던 별이었어.
별은 보이지 않는 낮에도 떠있었지만 사람들은 별이 보이는 밤에만 별이 있다고 생각했고, 낮에는 아주 큰 별 해의 빛이 너무 커서 아무리 반짝거려도 낮에는 예쁜 자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지.
그 많은 별 중에 노란 별이 있었어. 이 별은 매일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낮에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보아줄 수 있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어요. 밤은 너무 추워요.'하며 간절하게 기도했단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하나님도 거절할 수가 없었어.
그 별은 별똥별이 되어 땅에 내려와 노란꽃을 피웠단다. 그런데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이잖아.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면 새처럼 하늘을 날을 수 있을까 해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웠어. 그래서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는 텅 비어 있는 것이란다. 미나리아재비는 그 텅 빈 줄기들마다 자기의 꿈을 가득 담아 두었단다. 꿈은 눈을 감으면 보이고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것이잖아.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를 잘라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그 텅 빈 줄기 안에는 풋풋하고 예쁜 꿈들이 가득하단다. 그 증거가 바로 이 풋풋한 향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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