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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킨다는 것

강정홍 junghong43@naver.com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08:4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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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을 받아 빛을 발하는 한라산...자연의 내재적 가치와, 우리가 그것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닫고, 한라산과 그 안의 모든 존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문화 창조과정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한라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이미지 창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진 제공=강정홍. ⓒ제주의소리
<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감히 묻습니다. “저 한라산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직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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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바라봅니다. 소나무 숲의 향기를 맡습니다. 산새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아침바람과 더불어 숨을 쉽니다. 제 생각도 바람 따라 하늘에 닿습니다. 한라산 품으로 들어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 밭담에 걸터앉아 멀리서 한라산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입니다.

한라산과,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 장구한 세월동안 우리를 지켜보면서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현존적 가치, 그리고 마음의 고향이라는 영적인 풍요로움…. 제 둔한 필설로서는 그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본다는 건, 역시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인식과 사랑을 심는데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제 비록 아둔하지만, 거기서 상호관련성, 조화로움, 어쩔 수 없는 덧없음, 아픔과 미학을 배우고, 약간의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우리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은 긴밀하게 관련됩니다. 재선충병에 시달리면서도 저 소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듯, 저 산비둘기가 억새밭에 터 잡아 살아가듯, 저 조랑말들이 ‘촐밭’에서 새벽의 기운을 즐기듯, 저 노루가 덤불 속에서 거친 숨을 고르듯, 우리 모두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살고 있으며, 죽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갑니다. 이 땅에서 생명을 얻고, 죽어 다시 땅 전체의 생명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는 것, 그게 바로 자연 속에서의 ‘관계의 신성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라산과,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자연은 우리들의 한 부분인 동시에, 우리들의 실존적 완전성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그 관계성을 자각하고, ‘장소의 거주자’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책임지는 태도의 중요성…. 이게 바로 매일 아침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얻는 ‘약간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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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내면은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됩니다. 그러나 자연을 해석하면서 우리자신만을 그 안에 넣고 ‘인간화된 자연’을 인식한다는 건, 좀 편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생태주의적 자연관마저 다소 인위적인 색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걸 제대로 설명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이 이입되어 “이 땅에 있는 모든 존재물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뜬구름 잡기 식’ 이야기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결코 지나친 감정의 낭비가 아닙니다.

그러나 안타깝습니다. 여기저기 ‘곶자왈’이 훼손되고, 한라산 바로 앞에 대단위 관광휴양지가 들어서고, 그걸 자랑이라 띄우고….(제주의소리 8월18일자 ‘인허가절차 남았는데…’) 어디 그뿐입니까? ‘제주의 땅’이 개발예정지로 세계 사람들에 팔려나가고, 그리하여 ‘제주사람’들이 ‘제주의 땅’과 자꾸만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래가지고선 우리들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한라산을, 그리고 자연을 ‘타자’로 간주할 때, 바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건 자연을 함부로 이용하고 파괴할 수 있다는 ‘도구적 가치’로 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연에 대한 일방적 지배와, 개발을 정당화하는 생각이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그런 생각은 급기야 한라산과,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자연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분리시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내적 자연을 억압합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필연적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부르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초래한다”는 말은 그래서 틀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화의 섬’이라는 것도 한라산과, 한라산이 거느리고 있는 자연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존 가능한 삶의 양식을 회복할 때, 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각종 개발 사업의 허가권을 가진 자들에게, 그리고 환경과 경관을 심의하는 분들에게 그래서 감히 묻습니다. 저 한라산에,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연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직할 수 있는지를…. 아니, 정직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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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앞에 골리앗처럼 서 있는 건설 기중기...개발은 자연을 파괴하고, 자칫 우리들의 삶을 거칠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개발하지 않는 게 최상의 개발입니다. 사진 제공=강정홍. ⓒ제주의소리
개발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입으로는 자연보호를 이야기합니다. 그걸 ‘합리성’으로 위장합니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각합니다. 그건 사이비입니다. 정서적으로 공허하고, 미학적으로 무의미하며, 영적으로 빈곤한 것, 그게 바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합리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각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들은 ‘독점과 권력을 향한 인간 사이의 다툼의 무대’로 던져집니다. 개인을 일정한 전체에 종속시키면서….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 그건 ‘투쟁의 공간’일 뿐입니다. 그때 ‘평화의 섬’은 참으로 무의미해집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래서는 우리들의 자연이 견딜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우리의 땅을 함부로 하다가는 자연을 망가뜨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삶마저 거칠어집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의 크기가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아무도 그 심각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인 삼무의 고장인데 ‘1만 명당 4대 범죄 발생건수가 전국 최고’라니….(제주의소리 8월16일자 보도) 그건 절망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일 망정, 결코 우리들의 운명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팔자소관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발에 대한 반성적 인식’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나중에 보니 오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반성이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개발을 하면 지역주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추측과 목적지향적인 그릇된 주장으로부터 ‘가치 있는 사실’을 분리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도덕적 부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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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바라본다고 했지만, 한라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이 오히려 맞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하는 양심이며, 자신을 수많은 총중(叢中)의 하나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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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홍 언론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들이게 하는 겸손함입니다. 그런 양심과 겸손함이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는 바탕입니다.

시원한 바람을 기다립니다. “들판을 달려오면서 억새와 소곤거리고, 향기 가득한 소나무와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쓸쓸한 묘지를 지나며 인간처럼 탄식하고, 계곡에서 계곡으로 메아리쳐진 그런 바람…” ‘하나의 영혼처럼 우리의 몸을 새롭게 하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무한한 환희를 주는 그런 바람’이…. 요즘 참 덥습니다. / 강정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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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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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2016-08-19 13:24:24    
필자의 견해에 100% 동감입니다
자연은 자연의 논리되로 흘러가야 자연이다
이제 좀 자연스렇게 놓아주자...
노자의 말처럼 무위자연상태로 ...
1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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