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절강성(浙江省), 널 만나 더는 소원이 없다
중국 절강성(浙江省), 널 만나 더는 소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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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중국기행] (1) 한반도에서 날려 온 민들레 홀씨들 따뜻이 품어 안은 땅

필자는 서귀포시 야구연합회가 추진한 ‘사회인 야구단 국제교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국 상해(上海)를 방문하였다. 마침 몇 해 전부터 상해와 인근 절강성(浙江省) 일대에 관심을 갖고 답사할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개인적으로 뜻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4박5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름의 보람이 컸던 지라 그 감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야구를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야구보다는 다른 소재에 대한 얘기가 많을 것이다. 스포츠 교류라는 게 원래 스포츠를 매개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모처럼 귀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서귀포시야구연합회 문순용 회장 이하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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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 중심을 가로지르는 황포강

김동규가 부르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가 어울리는 맑은 날이다. 제주에서 상해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가슴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던 땅, 바로 절강성(浙江省)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대륙을 꿈꾸며 이곳에 첫발을 내딛었다. 좁은 반도를 벗어나 중원을 주름잡고자 했던 자들이 있었고, 중국을 통해 세상의 넓은 큰 사상을 얻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또, 풍랑을 구사일생으로 이곳으로 휩쓸려 온 자가 있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근거지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든 자들도 있었다. 절강성은 이럴 때마다 우리 선조들을 친절하게 맞아 준 땅이다.

그래서 절강성에는 1000여 년 전 장보고 대사가 중국 동부를 휘젓고 다닌 일을 비롯하여 수많은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특히 이곳이 한국의 불교와 천주교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한국 불교와 천주교에 지대한 영향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가서 중국을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상해 남서쪽 바다 보타산에 관음상을 남겼다. 고려 문종의 아들인 의천은 서호(西湖)로 유명한 항주에서 머무르며 천태종을 공부하였고, 그래서 한국 천태종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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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주의 서호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또,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에 조선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곳도 상하이 김가항(金家港, 중국 발음으로는 진샤상)성당이다. 천주교가 사교로 배척받던 시절에 그는 풍랑에 시달리며 뱃길로 중국과 조선을 오간 끝에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고 뱃길로 귀국하던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여 제주에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절강성은 15세기 기행문학의 백미라 불리는 금남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을 잉태한 곳이다.

기행문학의 백미, '금남 표해록' 잉태

15세기 말 조선의 선비 최부는 노비를 잡아들이는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귀향하던 길에 풍랑을 만났다. 그리고 14일간의 표류 끝에 중국 절강성 주산시(舟山市) 대산섬(岱山島)에 표착한 후 조선으로 송환되었었다. 그는 이일을 계기로 성종의 명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오늘날에는 금남 표해록으로 불린다. 15세기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나 강남 일대의 실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기에, 당시 동아시아를 연구하는데 매우 유익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이 땅은 한말 이후 일제 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주요 활동무대였고, 그래서 우리 역사의 아픔을 잘 기억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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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터

갑신정변의 주모자였던 김옥균이 홍종우에게 피살된 곳도 상해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일본으로 도피한 김옥균은 국제미아로 떠돌다가 중국에 입국했는데, 홍종우는 김옥균에 접근하여 신뢰를 얻었다. 그러다가 1894년 어느 봄날, 호텔방에서 홍종우는 김옥균을 향해 권총을 꺼내들었고, 총알 세 발이 김옥균의 몸을 관통했다. 훗날 홍종우는 제주목사에 제수되기도 했다.

망국의 서러움을 기억하다

또, 3.1운동이 좌절된 직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해에 모여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와중에 스물네 살 꽃다운 청년 윤봉길은 상해 홍교 공원에서 열린 일본천황 생일 기념행사에 폭탄을 터트려 조선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과시했다.

한편, 최근 10년 동안 이어졌던 한류열품이 점화된 곳도 상해다. 10년 전 쯤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상해 푸동공항에 내린 ‘한상궁’ 양미경씨를 보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일이나, ‘별에서 온 그대’에 열광한 팬들이 상하이 코리아타운에서 ‘전지현 치킨’을 먹기 위해 3시간 동안 줄을 일은 상해 시민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정도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날려 온 수많은 ‘민들레 홀씨’들은 어김없이 바람에 날려 이곳에 떨어졌고, 이 땅은 그 홀씨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품어 안았다. 혹시 상해 주변 사람들의 유전자 지도에 한반도를 향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나오는 가사처럼 절강성에 와보기 전에 이미 사랑은 가득 찼다. 게다가 더없이 맑은 가을날이다. 이런 날 널 만난다니 더 이상 소원이 없을 수밖에......, (계속/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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