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구분 없이 “민감한 시기 중앙방송에 대고 부적절 발언” 맹공…새해예산안 처리 ‘빨간불’

원희룡-구성지.jpg

원희룡 제주지사가 새해예산안 부결과 관련해 제주도의회를 개혁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모처럼 조성된 화해무드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한 차례 부결됐던 새해예산안의 연내 처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원희룡 지사는 19일 오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프로그램에 출연, “도의회는 지난 10월, 새해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협의하자고 했다. 구성지 의장은 의도가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의원들은 ‘20억원을 보장해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20억원 요구설’은 제주도와 의회, 두 기관이 예산 처리를 두고 정면 대립하는 파행정국의 불씨가 됐다. 이른바 재량사업비로 의원별 20억원씩 요구했다는 내용인데, 이후 의회가 격하게 반발하면서 원 도정의 ‘예산 협치’ 거부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이를 원 지사가 전국에 방송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설’수준을 넘어 실제 그러한 요구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날 아침 출근길 전국으로 전파를 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원 지사는 작심한 듯 제주도의회를 개혁대상으로 몰아붙였다.

원 지사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예산편성 등 잘못된 관행은 이번 기회에 없애야 한다”며 “의회도 여기에 동참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집행부도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느냐는 구 의장의 발언을 소개하자 “선심성이 있으면 다 깎으라”고 받아넘겼다.

새해예산안 처리 전망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은 반영하겠지만, 안되는 것까지 의결권을 앞세워 (집행부의)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같은 원 지사의 발언이 언론(<제주의소리> 원희룡 지사 “의원들이 ‘20억 보장’요구…잘못된 관행 없애야)을 통해 알려지면서 의회는 여·야 구분 없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안창남 문화관광스포츠위원장(삼양·봉개·아라동 새정치민주연합)은 추경심사 말미에 “원희룡 지사가 오늘 아침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의원들이 20억 보장을 요구했다고 했는데, 대단히 부적적한 발언”이라며 “원 지사께서는 의원들 누가 그렇게 요구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반격에 나섰다.

김영보 의원(비례대표, 새누리당)도 “제가 아침 일찍 서귀포에서 넘어오는데 KBS라디오에서 원 지사가 한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지사께서 도의원들이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전국에 대고 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경학 의원(구좌·우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어제 의장 개회사를 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의정과 도정 모두 지혜가 모자랐다. 그렇게 하지 못한 저부터 지혜가 모자랐음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그렀다면 지사께서도 최소한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특히 김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 의장과 도지사가 같은 당 소속이면서 왜 그러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원 지사가 ‘제주도는 중앙과 달리 좀 독특한 것 같다’고 한 발언과 관련해 “아직도 서울시민이냐. 어떻게 그런 발언을 중앙언론에 대고 할 수 있느냐”고 맹비난했다.

김 의원은 “도의원들을 동네 의원쯤으로 생각하면서 공격해야 정치적으로 자신이 반사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물론 언론플레이는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같은 당 소속인 김황국 의원(용담1·2동)조차 “지방방송도 아니고 전국방송에 대고 제주도의원들 전체를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 것이냐”면서 “새누리당 의원이라고 할 말 없는 줄 아나. 도민들이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자제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 의원은 “매우 민감한 시기에 부적절한 발언으로, 새해예산안 처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희현 의원(일도2동을, 새정치민주연합)은 “본인이 하면 로맨스고, 도의회에서 하면 전부 불륜이라는 식의 그런 태도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김 의원은 “저는 한 번도 20억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는데도, 도지사는 왜 방송에다 대고 도의원을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냐”며 원 지사의 도발적 발언을 문제 삼았다.

앞서 구성지 의장은 18일 열린 제325회 임시회 개회사에서 “이번 예산 부동의 이후 저나 원희룡 지사나 과거와 같은 예산편성과 심의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해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날 원 지사의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20억 요구설’이 사실이라며 마치 도의회를 개혁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새해예산안 처리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