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지 “명예훼손, 법적대응 불사” vs 제주도 “10억+10억 총 20억 요구”

제주도의원 1명당 예산 20억 편성 요구를 했다는 이른바 ‘20억 요구설’이 진실공방으로 치달으면서 연말 예산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도민의 혈세를 놓고 집행부와 의회가 실제 ‘거래’를 했다는 민낯이 공개되면서 제주도나 의회를 바라보는 도민사회의 시선은 추운 겨울날씨 만큼이나 싸늘해지고 있다.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예산정국에 파란의 불씨를 던진 것은 원희룡 지사다. 원 지사는 지난 19일 오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프로그램에 출연, “도의회는 지난 10월, 새해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협의하자고 했다. 구성지 의장은 의도가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의원들은 ‘20억을 보장해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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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원 요구설’은 제주도와 의회, 두 기관이 예산 처리를 두고 정면 대립하는 파행정국의 불씨가 됐다. 이른바 재량사업비와 공약사업비 각 10억원씩 의원별 20억원씩 요구했다는 내용인데, 이후 원 도정의 ‘예산 협치’ 거부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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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설’ 수준에서 떠돌던 것을 도정 최고책임자가 실제 그러한 요구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박정하 정무부지사는 한발 더 나아가 ‘20억 요구설’의 배후로 구성지 의장을 지목했다.

박 부지사는 23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때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구성지 의장이 직접 20억원을 요구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제주도의회와 제주도는 한 시간 간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20억 요구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폭로전’으로 돌입했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구성지 의장이 집행부에 새해예산안 편성 때 의원별 20억원을 배정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은 맞다. 다만 구성지 의장은 “한꺼번에 뭉뚱그려 ‘20억을 요구해본 적이 없다’, ‘20억 요구설은 거짓말’이다”는 입장인 반면 제주도는 “공약사업비 10억과 의원사업비 10억 등 20억원을 요구한 것은 맞다”고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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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2시 의장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구성지 의장. ⓒ제주의소리
◇ 구성지 의장 “제주도가 10억+5억 반영 제안, 의원사업비 증액 놓고 합의 불발된 게 전부”

‘20억 요구설’의 배후로 지목된 구성지 의장은 격노했다.

구 의장은 이날 오후 2시 의장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저 사람들(원희룡 도정)이 뭘 놓고 싸우자는 것인지, 의도하는 바를 모르겠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구 의장은 이어 “저는 도민을 위해 예산을 연내에 처리해 도민들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뿐”이라며 “그러나 (원 도정은) 오직 도민을 바라보는 생각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의회를 적으로 알고 대응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또 “지사는 자신을 의회주의자라고 포장하면서 이리떼 같은 얼굴을 하고 달려든다. 정말 저들이 의도하는 바를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구 의장은 특히 “제가 20억 얘기를 한 적도 없지만, 설령 20억, 100억을 얘기했다고 치자. 그러면 누가 얘기하겠나. 의장이 얘기하지 않겠나.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한 뒤 “이걸 이상하다며 의장을 공격하는 데, 도대체 공격의도를 알 수가 없다. 의장 직에서 끌어내려는 것인지 참으로 난감하다”고 말했다.

속칭 재량사업비와 관련해서는 “언론에서 재량사업비라고 하는데 실체가 없는 것이다. 재량사업비라는 것은 명칭도 없고 사용처도 없고, 뭉뚱그려 계상하는 것을 재량사업비라고 한다”면서 자신이 제안한 것은 ‘재량사업비’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20억을 요구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구 의장은 이어 “다만 원 지사께서 당선된 후 의원들의 공약을 챙길 수 있는 예산 협조를 약속해서 공약사업비 10억 편성에 합의를 했다. 이를 의장단과 운영위원들에게 보고를 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의원사업비 3억3000만원을 10억 정도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안해보라는 건의가 있어 이를 놓고 집행부와 협의를 진행한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후 협상 과정에서 제가 이미 약속한 공약사업비 10억 중 3억 빼서 의원사업비에 얹어 8억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다시 했지만, 제주도는 9월24일 최종적으로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구 의장은 “지사는 19일 전국방송에서 의회를 폄하하고, 부지사는 오늘 내가 20억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내가 죽는지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핵폭탄을 투하한 것 아니냐”며 “더구나 정무부지사는 반은 의회 사람인데, 어떻게 의장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오늘 부지사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검토를 거쳐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도지사가 내일 사과하면 받아들이겠지만, 정무부지사 문제는 별개다. 정무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새해예산안 처리와 관련해서는 “도정과의 싸움과는 별개다. 동료 의원들에게도 호소했던 만큼 연내에 처리하자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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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2시 도청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박정하 정무부지사(오른쪽)와 박영부 기획관리실장. ⓒ제주의소리
◇ 박정하 부지사 “지사께서는 의원 마음대로 쓰는 재량사업비 없애라고 지시”

제주도도 ‘20억 요구설’과 관련해 그 동안 의회와 진행됐던 협의 과정을 공개했다.

박정하 정무부지사는 이날 오후 3시 도청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 사실을 숨기는 것은 도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모든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도의회와의 협의 진행과정은 박영부 기획관리실장이 설명했다.

박 실장은 “지난 9월 중순경 구성지 의장이 박 부지사와 저를 집무실로 불러 2015년 예산에 지금까지의 관행을 바꿔 원만한 예산 심의가 되도록 의원 1인당 20억원 배정을 해주도록 제안했다”고 털어놨다.

20억원 중 10억원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배정되던 재량사업비 3억3000만원을 상향해 달라는 것이었고, 나머지 10억원은 의원들의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사업비라는 것이다.

박 실장은 또 “구 의장은 도지사가 먼저 공약사업비 배정을 약속한 것처럼 표현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도지사는 의원들의 공약도 중요하니 합리적이고 타당한 사업들은 수용하겠다는 것이었지, 10억이라는 돈을 일률적으로 배정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도지사에게 확인 결과,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10억원을 요구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며 “도지사는 의원들의 공약사항도 타당하면 당연히 협조한다는 원칙적 화답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박 부지사와 함께 원 지사에게 도의회의 20억 요구내용을 전달했지만, 원 지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타당한 공약사업이라면 돈이 그 이상 들더라도 반영할 수 있지만, 의원 한 명당 일정액을 배정해 의원이 마음대로 쓰던 소위 재량사업비는 과감히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박 실장은 “구 의장이 제안한 20억 중 10억원은 공약사업비로 하되, 의원재량사업비는 10억원이 아니라 5억원으로 낮추자고 제안해 보았다. 하지만 구 의장은 도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량사업비 ‘8억+공약사업비(7억)=15억’을 수정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저로서는 어떻든 협의를 성사시켜 보고자 15억원을 계속 건의했지만, 원 지사는 재량사업비 성격의 8억원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억원 요구설과 관련해 모든 것이 밝혀진 만큼 상호 감정적 대립은 그만하고, 도민의 혈세인 예산이 정말 도민이 필요한 곳에 법과 원칙을 지켜가면서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좋겠다. 제주도 예산개혁의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연말 예산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20억 요구설’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 도민사회가 냉소를 보내면서 제주도와 의회를 향한 ‘예산개혁’ 목소리는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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