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냉기류] (1) ‘의원별 20억 배정’ 놓고 줄다리기…道, “가용예산이 4천억 수준인데…”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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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새해 예산편성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의회가 ‘의원별 20억 배정’을 요구한 데 대해 도는 “한해 가용예산이 4천억 수준에 불과한데, 지나친 요구”라는 입장이다. ⓒ제주의소리
새누리당 제주도지사와, 새누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의회. 찰떡궁합 같을 것 같은 사이가 최근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감귤 1번과 처리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더니 제주시장 예정자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스텝이 한 번 더 꼬이고, 새해 예산편성을 놓고는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출발은 산뜻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원희룡 지사는 7월2일 10대 의회 개원식 축사를 통해 자신을 “의회를 존중하는 의회주의자”라고 소개하며 “상생을 위한 협력과 비판, 견제와 균형을 통해 발전적인 협력관계를 맺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소속 구성지 의장 역시 원 지사의 뜻과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개원사에서 “현안과 관련해서는 수시로 정보와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협조체제를 구축하겠다. 생산적인 동반자 관계를 통해 제주발전의 동력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도정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과 견제의 끈을 항상 유지하겠다”며 ‘불가근불가원’원칙을 밝혔지만 ‘생산적 동반자’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두 기관 사이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감귤 1번과 문제를 놓고 대립하면서다.

의회는 현장의정의 결과물로 ‘1번과 상품화’ 의견을 제주도에 제출했지만, 제주도는 끝내 ‘49㎜ 개선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제주도 역시 준비부족을 이유로 시행을 1년 유보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구성지 의장은 10대 의회 출범 100일째 되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감귤 1번과 문제처럼 도정이 혼자서 가려한다면 그 책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의회도 나름대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새해 예산안 편성 문제로 한랭전선이 드리웠다.

제주도와 도의회에 따르면 새해 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의원 재량사업비 문제를 놓고 양측이 갈등을 겪고 있다. 의회는 의원별 20억원(정책사업비 10억, 재량사업비 10억)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집행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면, 의회는 이를 심사하고 의결해왔다. 즉, 예산편성권한은 제주도가, 예산심사권한은 의회가 행사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 출신인 구성지 의장이 예산편성 단계에서부터 집행부와 의회간 사전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예산전쟁’의 불씨를 당겼다.

당장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됐다.

현재는 각 실·국별로 제출된 예산을 예산부서에서 자체심사·조정하고 있는 단계지만 벌써부터 의회의 과도한(?) 요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의회 전체(41명)로 치면 무려 820억원의 예산 배정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한해 가용예산이 4000억원 정도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800억원 요구는 너무 무리하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가용예산이 한해 4000억원 수준인데 800억원을 (의회 몫으로) 배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세수가 특별히 증가하지 않는 이상 신규 사업은 엄두를 못 내게 됐다”고 토로했다.

반면 의회에서는 ‘20억 요구’라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예산편성-심사·의결’ 시스템 개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제주도의 경우는 기초의회가 없다. 각 지역·단체들의 요구가 곧바로 도의원들에게 집중되면서 의원들 역시 민원해결에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A의원은 “선출직 의원들도 공약 실현을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편성하면 결국 의회는 심사 때 대규모 조정을 통해 공약 예산을 확보하려 한다”며 “단순히 예산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도정과 의회가 협의하면 졸속심의, 쪽지예산이 사라져 투명한 행정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이 제안한 인사청문회를 받아들인 것과 같은 맥락으로 도의회와 함께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도지사의 권한을 나누는 ‘분권형 도지사’로 가는 길”이라며 예산 편성을 도의회와 함께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성지 의장 역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협치(協治)를 한다고 하면서 예산편성 이전에 사전 협의를 하겠다는 것을 예산편성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이는 소통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도의회가 예산편성 단계에서 ‘의원 몫’을 반영한다면 이후 심사 과정도 예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해 감액을 할 수 있지만 증액은 최소화해 예비비로 돌리고, 의회가 신규 편성할 경우에는 집행부가 집행을 거부하도록 하는 등의 ‘룰’을 마련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산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공직자는 “대통령이나 시·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의원도 선출직인 만큼 공약 예산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신 선심성으로 흐르지 않도록 사업명을 명시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면 집행부는 예산분배 왜곡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의회 역시 지역구 챙기기라는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제주도의회는 제주도가 제출한 3조5868억원 규모의 새해예산안을 심사하면서 518억9726만원를 삭감했다. 교육청 예산(14억5000만원)까지 포함하면 의원 1명당 평균 13억원 정도 조정한 셈이다.

결국 이번 제주도와 의회의 ‘예산전쟁’은 의원들의 요구를 예산안에 ‘先반영’할 것이냐, 아니면 의회 심사과정에서 ‘後반영’할 것이냐를 놓고 사전 기싸움 성격이 짙다.

누가 기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도민이 중심이 된 ‘위민정신’이 후퇴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만큼은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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