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갱도서, 차가운 댐 끝자락서 '4.3행불' 유족들 사무쳐
어두운 갱도서, 차가운 댐 끝자락서 '4.3행불' 유족들 사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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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행불인유족회 영·호남 순례] 2박 3일 첫 일정 경북 코발트 광산·대구 가창댐 찾아
ⓒ제주의소리
6월 26일 경북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 광산에서 4.3행불인 희생자들을 위한 제를 올리고 있는 4.3행불인유족회원들. ⓒ제주의소리

7년 간 지속된 제주4.3. 현대사에 잔혹한 이름으로 남은 4.3 관련 재판으로 수형인이 된 제주인은 대략 4000여명. 이 중 2500명은 한국 전쟁 당시 전국 형무소에 수감 중 대부분 옥사하거나 집단학살 당하는 등 행적을 알기 어려운 행불인이 됐다.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이, 그리고 시아버지, 외할아버지…. 가족의 얼굴이 가물거려도, 안타까운 그 혼령들을 생각하면 유족들은 71년이 지난 지금도 몸서리치도록 마음이 사무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불인유족협의회가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영·호남 4.3유적지 순례를 떠난 이유이다. 4.3을 기억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행불인 유족, 제주도 관계자 등 총 76명이 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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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 갱도를 들어갔다 나오며 당시 학살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행불인유족회. ⓒ제주의소리

26일 첫 목적지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광산. 애초 일정은 가창댐을 먼저 들르는 것이었지만 달가운 소식이 있었다. 코발트 광산 일대 민간인 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유해 80구를 위령제 봉행 후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하기로 한 것.

지난 2000년부터 10년간 진실화해위원회가 수습한 민간인 유해 420구는 충북대 박물관에 있다가 세종시 추모의 집에 이미 안치되었으나, 지역 유족회가 발굴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안치되지 못했던 유해 80구는 현장 컨테이너 창고에 방치돼 그동안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현장에서 제주4.3 유족들을 맞이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박의원 대표는 "충북대에 있던 유해들이 추모의 집으로 안치됐다. 전보다 훨씬 시설이 좋다. 오늘 위령탑에서 유해 80구를 화장해 영혼을 올려 보냈다. 이후 대전에 조성 중인 추모관이 준비되면 그곳에서 영면하게 될 것"이라 전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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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박의원 대표가 코발트 광산에 위치한 위령탑 앞에서 유해 안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4.3유족들도 위령제에 마음을 함께 하기 위해 발 빠르게 달려갔으나, 아쉽게도 위령제 일정이 끝난 뒤였다.

대신 경산시에서 건립한 위령탑 앞에서 행불인 유족회는 제주서 싸온 과일 등을 차려 간단히 제를 올렸다.

코발트 광산은 30년대 후반 일제에 의해 개발된 군사용 광산이다. 폐광된 후에 방치 되어 오다 대규모 민간인학살 적지로 선택돼 약 3500명의 희생자를 만든 학살이 벌어졌다. 

대구형무소서 이감 과정 중 사라진 재소자 2574명 중엔 당시 불법재판으로 대구, 부산, 마산, 서대문, 인천 등 형무소에 갇혔던 4.3 피해자들도 다수 포함돼있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생을 마감 했을지 모를 가족을 떠올리며 먹먹해 진 유족들은 오늘 위령제 행사로 개방된 코발트 광산 갱도에 들어가 어두운 갱도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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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로 잠시 개방된 코발트 광산 내부. 아직 수습하지 못한 유해가 상당수 남아있다. ⓒ제주의소리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대구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로, 현재 가창댐이 있다. 길이 206m, 높이 45m, 저수용량 910만톤의 큰 댐은 현재 대구시민의 귀중한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수가 나오는 그 자리엔 끝내 씻기지 못한 피의 희생이 잠겨있다.

가창댐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 최대 민간인 학살터로 꼽힌다. 1950년 7월 군경에 의해 민간인 1만여명이 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대구형무소로 끌려갔던 제주 도민 499명 중 다수 또한 편치 못한 영원의 잠에 들었을 것으로 가늠된다.

댐에 도착할 즈음 비는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간단하게나마 제를 올리기 위해 준비가 분주했다. 유족들은 꿋꿋이 자리를 펴고 끊임없이 절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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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가창댐에서 4.3 행불인 희생자들을 위한 제를 올리고 있는 4.3행불인유족회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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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0월항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채영희 회장(사진 가운데)이 가창학살에 대해 4.3행불인유족회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함께 한 대구 10월항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채영희 회장은 "4.3특별법 개정 촉구에 함께 노력하겠다. 또 (유족회 여러분이) 건강하고 웃으면서 잘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의 바람처럼 4.3행불인 유족회는 일정 내내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슴 속 얘기를 나누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가창댐에서 외할아버지가 행불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4.3행불인유족회 영남위원회 강우진(53) 씨는 "4.3유족터 순례에 어머니와 함께 처음 왔는데, 순례지와 유족회의 활동을 보니 가슴이 찡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4.3의 아들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를 시작으로 유족들은 담담하게, 혹은 감정이 격앙돼 떨리는 목소리로 4.3의 기억을 함께 나눴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진심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눈 감기 전에 꼭 4.3의 억울함을 풀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리라는 결의가 모두의 마음 속에 단단하게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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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영호남 형무소터 및 학살터 추모 순례길에 오른 제주4.3행불인유족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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