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설치금지 조항 만들어놓고 무시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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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의 레이더시설 설치 공사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삼형제큰오름 정상. 제주도의 행위 허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단 공사는 중단됐다. [그래픽=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동티를 경계할 법도 한데 주저함이 없었다. 제주의 상징과 다름없는 한라산 자락의 오름을 파헤치는 일인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속전속결. 민간 개발업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위 주체는 국토교통부. 이를 제주도가 허가했다. 시쳇말로 케미가 잘 맞았다. 제주도는 무능하거나 무신경했고, 국토부는 시치미(?)를 뗐다. 

훼손 현장은 한라산국립공원 내 천연보호구역이자 절대보전지역인 삼형제큰오름. 1100고지 인근에 동서로 포진한 크고작은 3개의 오름(삼형제오름) 중 첫째로, 국립공원의 핵심지역이다. 백록담과의 거리도 5km 밖에 안된다고 한다.

굴착기가 휘젓고다닌 오름 정상은 처참했다. 나무들이 완전히 제거되자 울창했던 숲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돌무더기, 뿌리가 드러난 나무 더미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평탄 작업이 이뤄진 일대는 잘 정비된 경작지를 연상케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를 표방한 도정에서 납득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곳은 ‘제주남부 항공로 레이더시설 구축 사업’ 부지. 1499㎡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시설물을 설치하기로 돼 있다. 한반도 남쪽 공역에 대한 항공 감시 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각지대가 없는 지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국가안보와도 직결된 중요시설이긴 하나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성역은 없다. 제주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도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그때는 절대보전지역 해제 문제로 홍역을 치렀었다. 과정이 옳았어야 했다. 그러나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면-시민단체의 말마따나-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뒤늦게 법규 해석의 문제라며 부산을 떠는 모양인데, 단언컨대 그건 면피용이다. 난독증도 아니고, 조문을 보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개발이 엄격히 금지된 ‘절대’보전지역에서도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오름(제주특별법상 ‘기생화산’)은 대표적인 절대보전지역 지정 대상이다. 제주특별법은 예외적인 경우로 네 가지를 제시한 뒤 마지막 다섯 번째로 ‘도조례(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로 정하는 행위’도 도지사의 허가를 얻으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자연자원의 원형을 훼손하거나 변형시키지 아니하는 범위’ 내라야 한다. 중장비로 오름 정상부를 헤집어놓아도 대수롭지 않다고 본 것인지 궁금하다. 국토부의 축소 신고, 혹은 제주도의 관리감독 부실이 의심된다. 레이더 시설을 설치하려면 땅속 5m까지 파내려가야 한다니 애초 그 범위를 지키는 건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 여기까지는 판단이 갈릴 소지가 있다고 치자. 보전지역 관리 조례는 아예 오름에는 무선설비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조례 제6조(절대보전지역 안에서의 행위 허가 대상) 5호는 ‘전파법에 따른 무선설비의 설치나 그 부대시설의 신·증축(은 가능하다). 다만, 보전지역 중 기생화산에서는 무선설비의 설치나 그 부대시설의 신·증축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쯤되면 더 이상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법규 해석의 문제도 아니다. 제주도는 같은 조 6호에 나온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절대보전지역 행위허가의 근거로 들고 있지만, 오름에서의 무선설비 설치를 원천봉쇄한 규정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안되는 것도 되는 쪽으로 유도하는 이른바 '조장행정’(?)을 실로 오랜만에 본다. 정당한 민원인한테나 베풀어야할 친절을 엉뚱한 데 쓰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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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큰오름 정상 부근에는 오래전에 설치된 철탑 형태의 군 관련 시설이 들어서있다. 오름에 무선설비를 설치할 수 없다는 조항이 만들어지기 전에 설치됐다. <사진=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도의 일처리를 놓고 여러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정부 부처가 하는 일이라 알아서 기었던지, 문제를 외면했던지, 아니면 무능했던지…. 보전 자원에 대한 인식이 저급했던 것 만은 분명해보인다. 공사를 중단했다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왜 무선설비를 콕 집어서 오름에는 설치할 수 없도록 명토박아두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이러다간 오름이란 오름은 남아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도내 오름 곳곳에는 레이더기지, 통신설비 등 각종 시설들이 마구 들어서 있다. 대부분 ‘무선설비 엄금’ 조항이 생기기 전에 설치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삼형제큰오름 정상 바로 근처에도 철탑 형태의 오래된 군(軍) 관련 시설 2개가 흉측하게 솟아있다.  

오름 훼손을 막겠다며 조례에 없던 조항까지 만들어놓고 무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곧 오름에 대한 배신이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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