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과거사 국가 차원의 보상 큰 의미...국가 폭력에 뒤틀린 가족관계 해결 못해 ‘미완성’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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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참혹한 비극인 제주4‧3에 대해 국가 차원의 보상이 현실화 됐다. 다만 국가 폭력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 잡기 위한 명예회복 수단인 가족관계 특례 조항은 빠져 추가적인 보완입법이 불가피해졌다.

국회는 9일 제391회 정기회 본회의를 열어 행정안전위원회 대안으로 제출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4‧3특별법)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4·3 희생자에 대해 정신적 손해(위자료), 적극적 손해 등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위해 사망자·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해 1인당 9000만원을 균등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 사회는 그동안 4.3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추념에 이어 희생자의 실질적 피해 회복을 위한 배·보상을 정부에 요구해 왔다. 

보상은 단순히 재정적 지원을 떠나 피해자에 대한 공동체의 ‘인정’이자 ‘명예회복’을 의미한다. 헌법과 인권적의 측면에서 국가 폭력에 대한 보상 의무는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불법행위를 책임지기 위한 특별법상 피해 구제 법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화운동법과 5.18보상법, 부마민주항쟁보상법, 전후납북자법 등에도 국가 보상이 담겨 있다.

다만 희생 당시 연령과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피해자에 일실이익과 위자료를 균등지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실이익은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수입을 계산한 손해액이다.

당초 정부는 등급별로 보상 금액을 달리하는 일실이익을 제시했지만 희생자에 입증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균등지급 방식을 확정했다.

4・3특별법 제16조에 명시된 위자료의 법적 성격도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정리됐다. 배상은 위법행위에 따른 대가인 반면 보상은 적법행위에 따른 손해를 갚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이 혼재돼 있는 점을 고려해 적법행위와 위법행위를 모두 아우르는 손해전보까지 포함한다는 취지로 ‘보상’이 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정적 지원이 현실화 됐지만 국가 폭력으로 붕괴된 가족관계 해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부모를 잃고 서류상 아버지와 형제지간으로 살아가는 등 유족마다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뒤틀린 가족관계를 복원해 조상의 뿌리를 되찾는 명예회복을 기대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인지청구와 혼인신고 특례 조항이 제외됐다.

당초 개정안에는 가족관계 정정이 용이하도록 인지청구시 민법상 친생관계부존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특례가 담겼지만 법원의 반대로 최종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사망일자 정정시 발생할 수 있는 혼인신고 무효를 예외로 하는 특례 도입도 무산됐다. 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이후 이뤄진 출생신고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례 역시 빠졌다.

4・3유족회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법률에서 제외된 특례 조항에 해당하는 유족이 부지기수다. 부모가 희생돼 양자로 삼거나 사망과 혼인신고 시점이 뒤죽박죽인 사례도 넘쳐난다.

특례 조항이 빠지면서 앞으로 가족관계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유족이 직접 친생관계부존재 확인 소를 제기하고 이를 토대로 법원에 인지청구 소송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인지청구를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를 내세워 법원에서 변론을 해야 한다. 소송에만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소송 비용은 물론 친자를 입증할 유전자(DNA) 검사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 사망일자를 정정하는 경우에도 민법상 혼인신고는 물론 자녀 출생까지 무효가 되는 등 유족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다.

4・3유족회는 국가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시켜서는 안된다며 특례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가족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 용역을 검토 중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대안을 토대로 추가적인 보완입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유족들은 국가 폭력으로 뒤틀린 자신들의 뿌리를 되찾는 일을 중요한 명예회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4・3영령들의 해원을 위해서라도 가족관계 정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가로 인해 무너진 가족 공동체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제도적 보완을 유족들은 기대하고 있다. 내년부터 보상은 시작되지만 희생된 가족을 되찾는 일은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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