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감사 결과 ‘씁쓸’…‘정치행보’ 반성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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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오른쪽)와 김상협 제주연구원장(가운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언제부턴가 징후만 보고도 그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헤아림은 정확도가 점점 높아졌다.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직감이 곧잘 통했다고나 할까. 직감은 능력의 깊이 따위를 일컫는 내공과도 다른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30년 가까운 언론 ‘짬밥’이 원초적 본능을 수없이 자극한 결과 아닐까 싶다.

제주도감사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제주연구원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서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감사 결과는 씁쓸했다. 제주 최고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기관에서 이래도 되는 건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제주도에서 수탁한 연구 용역사업을 제3자에게 재위탁한 뒤 성과품을 검수하면서 내용이 과업지시서와 다른데도 보완 요구 없이 넘어간게 대표적이다. 마치 적정하게 용역이 이뤄진 것처럼 검수를 끝내고는 대금 전부를 지급했다. 과업지시서는 과업의 목적과 범위, 기재할 내용 등을 규정한 문서다. 과업 수행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제주연구원은 심하게 말해 동문서답을 눈감아준 셈이다. 연구로 먹고사는 기관의 연구 신뢰를 좀먹는 행위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해당 성과품을 연구원 내 자료등록원장에 등록하거나 정보자료실에 제출하지 않고 감사(2021년 7월21~27일)가 이뤄질 때까지 직원 개인이 보관해왔다는 점이다. 성과품 검수가 진행된 시점은 2019년 3월4일이므로 개인 보관 기간은 2년이 넘는다. 이 직원은 감사 직전인 2021년 6월30일자로 퇴직했다. 어이가 없다. 어차피 부실한 용역, 써먹지도 못할테니 그냥 방치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궁금하다.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재위탁 계약 상대방이 제출한 성과품 내용을 그대로 기재하거나 단순 취합한 점도 지적을 받았다. 최종보고서 총 253쪽 중 무려 207쪽이 그런 식이다. 특히 253쪽 중 49쪽은 엉뚱한 내용을 채워넣거나 빈칸으로 남겨뒀다. 이 역시 연구전문기관이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한다. 

단독 응찰로 2차례 유찰된 2건의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돌리면서 전문성, 기술능력 등을 검증하는 제안서평가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점도 석연찮은 부분이다. 각각 1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다. 이 돈이 어디서 나왔겠나. 도민의 혈세였다. 제주도 출연기관인 제주연구원은 2021년에만 41억원(예산서 기준)의 출연금을 받았다. 

드러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구원 소유 건물을 빌려주면서 총 2억원 가까운 임대료를 받고도 한번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고, 부가가치세도 내지 않았다. 그 결과 1000만원이 넘는 가산세를 물게됐다. 

관사에 입주한 임직원이 내야하는 인터넷 이용료 등의 경비를 부적정하게 지원(32건 400여만원)한 사례, 임차보증금 2000만원에 대해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지 않은 사례, 자녀의 나이가 차서 더 이상 가족수당을 지급할 수 없는데도 계속 지급(4명)한 사례 등은 애교(?)에 가깝다. 

극도의 기강 해이, 리더십 부재가 읽혀진다. 그 중심에 김상협 원장이 있다. 자꾸만 김 원장의 과거 행보가 아른거린다. 원희룡 지사 재임 시절 그에게서 오늘의 상황을 잉태한 징후들을 느낄 수 있었다.  

원 전 지사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 원장은 도의회 인사청문 부적격 판정에도 원 지사의 선택을 받은 뒤 원 지사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당시 대권 도전에 주력했던 원 지사와 제주밖 동선이 상당부분 일치했다. 일례로 그는 지난해 7월3일 원 지사가 서울 모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만날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심지어 그가 이끄는 제주연구원은 서울에서 제주와 무관한 의제로 토론회를 개최(2020.11.12. 제주연구원 서울서 ‘수상한’ 토론회…원희룡 대선 싱크탱크 전락?)해 입길에 올랐다. 지난해 연구원 개원 24주년 특별 초청 강연 때도 제주 현안은 주제에서 밀려났다. 예외없이 포커스는 원 지사에게 맞춰졌다.

보다 못한 한 도의원은 ‘수상한 토론회’ 직후 제주연구원에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조례(제주연구원 설립 및 운영 조례)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실제로 2021년 4월14일 시행된 개정 조례에는 연구원의 정치적 중립 노력 등을 규정한 조항이 들어갔다. 출자·출연기관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의무를 조례에 명토박아둬야 하는 현실이 웃프지 않을 수 없다. 

미래 먹거리 발굴과 도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연구에만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적어도 2020년 9월1일 이후로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리더가 중심을 잃으면 조직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도민들이 부여한 시대적 사명 앞에서 자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제주연구원은 비전을 ‘제주가 미래다, 도민과 함께 제주가치를 실현하는 정책 싱크탱크’로 내걸었다. 미션은 ‘지속 가능한 제주 실현과 도민행복 증진을 위한 정책 연구 개발’이다. 비전의 혼돈을 겪고있는 제주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과연 지금 제주연구원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응시하는 곳은 어디인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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