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람과 바람] (8) 카본프리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의 공공적 관리’를 준비해야 / 김동주

바람(風)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제주의 바람은 누대로 제주의 언어, 건축, 농경, 무속, 의식주 등 모든 삶의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기후위기라는 생태적 기로에 선 오늘날에 제주 바람은 풍력에너지라는 대체에너지 자원의 사회적 성격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풍력발전 시설 개발이 이어지면서 바람자원의 이용 · 개발 및 그 수익 분배와 관련해, 도민과 기업 간의 역사 · 문화 · 생태적 불평등 문제가 제기돼 제주특별법 개정법률에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 조항’이 신설되기도 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환경정책칼럼 [제주 바람과 바람]을 통해 전지구적 과제인 기후위기에 대응할 대안과 희망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제주 바람(風)과 바람(希望)]은 격주 화요일에 싣는다. [편집자 주]


올해 초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에너지 가격은 쉽사리 내려가질 않고 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어려운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 에너지비용 지출은 더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 쌓이고 있다. 

경제활동의 기본은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공급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전 세계 공급망의 교란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지난 여름 제주의 기름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은 휘발유가격이 조금 내리긴 했으나, 버스와 화물차, 건설기계의 주요 연료인 경유 가격은 여전히 1리터에 2000원 선을 넘나들고 있다. 

국제적인 정세에 따라 기름값이 들쭉날쭉한다는 것은 이미 50년 전인 1970년대 오일쇼크 때부터 국민들은 체감해왔지만, 왜 제주는 육지보다 기름값이 더 비싼지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잘 풀리지 않는다. 혹자는 기름을 배에 싣고 오는 해상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에 비싸다고도 하지만, 육지에서도 선박을 이용한 운송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국내 정유회사들의 모임인 ‘대한석유협회’의 홈페이지에는 “국내 수송수단으로는 선박, 유조화차(RTC), 유조차(T/T), 송유관(파이프라인) 등이 이용되고 있는데, 이들 수송수단 중 선박에 의한 해상 수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정유공장이 모두 해안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대량 원거리 수송 시 해상 수송비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 https://www.petroleum.or.kr/ko/sub02/02_8.php )

또한 SK에너지의 블로그에서도 생산지인 SK인천석유화학에서는 군산과 목포로, SK에너지 울산CLX에서는 부산, 강원도 동해, 경북 포항, 경남 마산, 그리고 제주로 해양운송을 하는 그림이 있다. ( https://skinnonews.com/archives/21558 )

이렇게 봤을 때, 단순히 해상운송만을 비싼 기름값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단초를 제시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됐다. 지난 8월 제주도는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에 의뢰한 제주지역 석유제품 가격 및 유통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제주도 석유유통구조가 대리점과 주유소 간 견고하게 수직계열화되었고, 현물거래 물량도 없다고 했다. 육지의 경우에는 정유사 직영 대리점 이외에 많은 대리점이 존재하면서 가격결정권을 일부 행사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견고한 수직계열화로 가격결정이 대리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육지의 경우, 국내 전체 거래량 중 전자상거래를 통한 현물거래량이 13.6%에 달해, 이런 물량으로 시장의 경쟁구조를 형성해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제주는 전혀 없어 가격 경쟁요인이 적다고 분석했다. 한편 알뜰주유소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주변 주유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①도지사가 대리점 공급가격 요청 및 보고 ②알뜰주유소로의 전환 지원 ③석유가격 모니터링 강화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 조사는 그 동안 제주도 기름값의 형성 원인에 대해 궁금해왔던 도민들에게 “대리점을 통한 일종의 담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정도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한 첫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유사에서 대리점으로 공급하는 가격은 영업비밀로 간주돼 자료를 얻기 어려웠기에, 주유소의 소매 가격을 위주로 조사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에너지담당 부서가 아닌 물가담당 부서에서 발주한 용역이었기에 ‘카본프리 아일랜드’라는 에너지전환 정책과의 연관성도 다소 부족했다.

이런 점에서 보다 더 구조적인 전환을 위한 생각이 필요한데, 에너지법과 제주도 에너지기본조례에 따라 지난 2020년 수립된 ‘제주특별자치도 제6차 지역에너지계획’에는 ‘공공석유비축기지 설치 검토’라는 세부사업이 포함되어 있어 관심을 갖고 읽어보자. 

“제주도의 석유저장일수는 전국 평균의 10%에 불과하고, 한국석유공사의 석유비축사업 대상지도 아니어서, 섬의 특성상 태풍 및 전란 등 비상사태의 장기간 지속 시 석유수급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장은 석유수급 조정권이 없으므로, 제도개선 검토도 필요하다. 공공석유비축기지가 평상시에는 공공기관에 석유를 공급하고 수급불안 및 유가 급등 시에는 민간에 방출하도록 하여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꾀할 수 있다.”

그간 제주도의 에너지계획은 주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 전기자동차 보급 위주여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대부분 사용하는 화석연료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지역에너지계획은 전통적 화석에너지에 대한 안정적 공급 방안을 포함시켜야 했기에, 시민연구단의 의견을 수렴해 전문가 연구진 검토에 따라 포함되었다. 

더욱이 10년 전 카본프리 아일랜드 계획을 발표할 때에 비해 제주지역의 석유소비량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발전소 연료로 쓰이는 중유를 제외하고, 수송 및 기계, 난방 등에 사용되는 휘발유, 등유, 경유, 그리고 LP가스의 사용량이 전부 증가했고, 주유소 또한 2010년 183개소에서 최근 194개로 더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관련 부서에서 ‘공공석유비축기지 구축검토’에 대한 후속조치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카본프리 아일랜드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사업을 하는 게 껄끄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카본프리를 달성하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경제체제에서는 석유중독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50년 전부터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풍력발전을 시작했다. 반 세기 정도가 흐른 지금, 제주도내 전체 전력의 10%는 풍력발전을 통해 공급하는 수준이 됐지만, 아직까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전체 에너지를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100% 전환이라는 ‘카본프리 아일랜드’의 목표는 계속 전진해야할 우리의 도전과제다. 

즉, 화석연료 소비를 빠르게 줄이면서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보다 더 빠르게 해야 하는 이중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따라 에너지전환 과정의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기름과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안정적 퇴출방안, 즉 ‘화석연료의 공공적 관리’ 대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제주도내 연탄공장이 폐지된 이후, 도내 연탄사용가구를 위해 육지의 연탄을 반입하는 비용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미 제주도는 ‘화석연료의 공공적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름값을 낮추면 기름소비가 늘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다른 한편 제주도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전국 평균 기름값보다 비싸게 지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정부의 법률적 목표는 2050년 탄소제로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방향에 맞춰 화석연료 사용량을 점진적에서 대폭적으로 감소시키면서 도민들의 에너지비용도 적절한 수준에서 지불할 수 있도록 ‘화석연료의 공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 김동주

물, 하천, 에너지, 기후와 관련한 환경운동을 하였고, 제주도 풍력자원 공유화운동을 중점적으로 실천하였다. 이를 통해 자연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두게 되어 환경사회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간강사와 지방공기업 직원을 거쳐, 현재 기초지방정부를 대표하는 협의체인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서 기후환경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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