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지방자치, 어제와 내일] ③ '특별' 지위 잃는 제주, 전국 흐름 활용해야

1960년대 '시·읍·면장 직선' 역사에서부터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자치 시·군 폐지, 그리고 다시 기초자치 부활 요구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새로운 자치모델을 찾아가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의소리]는 민선8기 제주도정의 제주형 행정체제 재편의 배경 속에 있는 제주의 지방자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세 차례에 걸쳐 정리한다. /편집자

"제왕적 도지사의 폐단 반드시 없애겠습니다. 그 권력은 여러분들께 고스란히 돌려드리겠습니다. 우리는 2006년도부터 행정단일광역체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갈등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커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우리가 꿈꾸는대로, 우리가 설계하는대로, 제주는 개척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권력을 나눠야 합니다. 새로운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해 권력을 여러분께 나눠드리겠습니다." - 2022년 5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제주도지사 후보 출정식에서

"'게매이, 되카이(그러게, 되겠나)'라는 말은 안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현재 행정체제가 만족할만한가, 미래 제주를 위해 여전히 유효한가,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 이대로 가야하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전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기득권에 머물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기에 그 도전을 격려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22년 12월 19일 제주도청 출입기자단 송년 간담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기초자치단체 부활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별자치도에 대한 오 지사의 시각은 '제왕적 도지사'라는 함축적인 표현에 잘 드러나 있다. 특별자치도의 핵심 구조인 단일광역 행정체제는 제주도민의 권한이 아니라 제주도지사의 권한만을 지나치게 키웠다는 것을 도민사회만이 아닌 도지사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제왕적 도지사의 폐단을 끊어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회복한다는 포부는 분명 도민사회가 바라던 열망 중 하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제주도의회에 입성하고, 두 번의 제주도의원과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오 지사는 그 누구보다 특별자치도 제도의 장단점을 꿰차고 있을 인물이기도 하다.

오 지사의 발언은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대명제로 두고 있다. 그간 도민사회에서 숱하게 다뤄졌던 '행정시장 직선제'와 같은 우회로는 고려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상수로 설정하고, 이 기초단체의 유형을 대립형으로 할지, 통합형으로 할지, 기초단체의 수를 몇 개로 나눌지에 대한 논의만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제주의 기초단체 부활 시도는 고비마다 중앙 정치권의 '형평성 논리'에 발목이 잡혔다. 제주특별자치도에 특별히 사무·권한 이양을 양보했으니, 적어도 테스트베드 성격의 단일 행정체제는 유지하는 것이 형평성 불만을 잠재울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다만, 지난 16년과는 달리 최근의 기류는 분명 달라지고 있다.

제주는 더이상 '특별자치도'라는 단일 지위를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강원특별자치도에 이어 전북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내년 6월에는 강원특별자치도가, 12월에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기존의 세종특별자치시까지 포함하면 특별지방자치단체는 4곳이 된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경기도와 충청북도도 특별자치도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특별시·광역시를 제외하고 9개 도(道)의 절반 이상이 모두 '특별자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특별'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됐다.

이들 단체는 사실상 제주특별자치도를 모태로 한다. 제주도는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현재까지 6단계 제도개선을 거쳐 4660건의 국가사무를 넘겨받았다. 현재는 7단계 제도개선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제주에 있어 숱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누린 산물이다.

개중에는 불필요한 사무도 있고, 권한만 이양된 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되려 독이 된 사무도 존재했다. 수 차례에 걸쳐 문을 두들겨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실패의 기록도 남아있다. 후발주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됐다. 국가적 차원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그 소임을 다한 셈이다.

이를 밑거름 삼아 강원이며, 전북이며 새롭게 출범하는 특별자치도는 그 어디도 '단일 행정체제'로의 전환이 논의되지 않는다. 강원도는 강릉·동해·삼척·속초·원주·춘천·태백 등 7개 시와 고성·양구·양양·영월·인제·정선·철원·평창·홍천·화천·횡성 등 11개 군으로 구성돼 있다. 전라북도 역시 군산·김제·남원·익산·전주·정읍 등 6개 시와 고창·무주·부안·순창·완주·임실·장수·진안 등 8개 군이 있다.

해당 지역은 광역단체 산하 기초자치단체의 원형을 유지하게 된다. 만약 단일 행정체제의 장점이 기초단체 폐쇄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면, 필연적으로 후발주자 역시 단일 행정체제 도입 가능성을 검토했을 터다. 기초단체 통폐합의 폐해를 증명한 것 또한 제주의 유산이다.

이제 제주의 요구를 당당하게 관철시켜야 할 때다. 또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2기 특별자치도'를 선도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민선8기 제주도정이 내건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은 그 시초가 될 전망이다. 기초단체의 수를 몇 개로 나눌지도 주된 쟁점이지만, 기관의 형태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제주는 새롭게 도입될 기초자치단체의 형태를 선정함에 있어 기존의 '기관대립형' 모델을 비롯해 그간 국내에 선보인 적이 없었던 '기관통합형' 모델까지 폭 넓게 고려하고 있다.

'기관통합형' 정치 모델은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일찍이 여러 선진국에서 정착한 모델이다. '의원내각제'에 따라 국가의 대표가 '대통령'이 아닌 '총리'인 일본, 영국, 캐나다, 독일 등이 대표적이다. 각 형태의 장단점이 있기에 중앙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내각제 도입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제주의 입장에서는 이 틈새시장을 공략할 여지가 남아있다.

오 지사는 행정체제 개편과 관련 "강원특별자치도가 내년 6월 도입되는데, 거기엔 시군 폐지 내용이 없다. 전북이나 경기도에도 마찬가지"라며 "제주 역시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분권 모델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연방제 수준의 모델로 가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제도적 과정을 밟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특별자치 제도에 있어 "제주가 가장 앞서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멈춰있으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지금 앞선 위치에서 한 발 밀려난다면 강원이나 전북이나 특별자치도 모델이 우리의 분권모델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더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민사회 각계의 조언도 잇따르고 있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이정엽 의원(국민의힘)은 "타 지역의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인해 제주만의 특별함이 상실되는 현 시점에서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서 갖는 특별시, 세종이 행정수도로서 갖는 특별자치시와 같이 제주의 특별자치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며 "제주가 가져야 하는 고도의 자치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각 읍면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등 보다 발전된 형태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민운동에 매진해 온 하승수 변호사는 "일본, 독일 등의 나라는 모두 읍면 단위의 행정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5.16쿠데타 이전 우리의 역사에서도 기본 단위는 읍면이었다. 현재의 특별자치 제도는 중앙집권적인 체제에서 행정 관리의 편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기초자치단체로서 더 세분화 된 모델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읍면동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구성된 주민운동 기구인 제주민회의 신훈민 변호사는 "제주형 기초자치가 기존의 단체장과 지방의회 중심의 기초자치로 가는 것보다는 주민 중심의 기초자치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며 "다만 제주형 기초자치 도입 논의에서 '시군자치냐 읍면동자치냐'는 식의 양자택일적 논의보다는 기초자치를 도입한다면 이층제로 할 것이냐, 단층제로 할 것이냐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제주형 지방자치’ 기획 취재는 제주도의 취재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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