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섬 제주] ①가치관 충돌, 민-민 갈등...지역특성 반영된 갈등 심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갈등 현안이 터져나오는 제주사회. 혹자는 '갈등의 섬'이라는 오명을 덧붙일 정도로 제주는 갈등에 신음하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을 비롯해 지역단위 개발사업 등 종류도 다양하고, 최근의 갈등 양상은 단순 '이권' 다툼이 아닌 '가치관'의 충돌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제주도정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제주의소리]는 2022년 송년을 맞아 제주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갈등의 양상을 되짚어보고, 이에 대한 해법과 주요 갈등 개선사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제주 제2공항, 추자도 해상풍력발전,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제주동물테마파크, 제주자연체험파크, 비자림로 확장공사, 송악산 난개발, 서귀포시 우회도로, 제성마을 왕벚꽃마을, 대형마트-아울렛 입점, 제주 국립공원 확대 지정...

'갈등'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했을 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슈들. 제주를 휘감고 있는 갈등 현안은 양 손으로 꼽을 수 없을만큼 다양하다.

제주 해군기지와 같이 짙은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사안, 영리병원 도입과 같이 논란이 끝내 마무리되지 못한 사안,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같이 외부 요인에 의한 사안 등을 포함시키면 갈등 리스트는 끝도 없이 배가된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공공정책에 의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과거보다 높아지고, 국민들의 사회적 참여가 높아지면서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순기능적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정당한 주권 행사의 과정이 곧 갈등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갈등은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제주사회는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갈등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전례를 숱하게 남겨왔다. 갈등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 과제다.

근래에 양산된 제주사회 내 갈등은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과거 갈등 현안은 주로 '이권'에 의해 발생했다면 최근의 갈등은 '가치관'의 충돌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다.

지역사회 최대 갈등인 제주 제2공항은 상징적인 예다. 공항은 혐오시설을 '내 뒷마당에 짓지 말라'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의 반대격인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을 대표하는 시설이다. 전국 지자체가 앞다퉈 공항 유치를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반해 제주사회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항시설 사업을 오히려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제주도의회가 실시한 제2공항 도민 공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하게 나온 것은 제주개발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제2공항 유치에 따른 경제적 이득보다 환경보전적 가치를 우선시 한 결과였다. 상반된 두 가치관 모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논의의 장에 올릴 수 있었고, 이에 대한 도민의 선택은 의미를 더했다.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주요 관광개발사업이나 해상풍력사업 등도 맥을 같이 한다. 대부분 지역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상당한 환경파괴가 수반돼야 하는 사업들이다.

제주도정이 관리하고 있는 주요 공공갈등 사업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뚜렷하다.

제주도는 주요 공공갈등 사업에 대해 △갈등발생 가능성 △갈등강도 △사회적 파장 △갈등전개 추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을 분석하고 있다. 이중 갈등 심화 사업으로 분류되는 '갈등지수 100점 이상' 사업은 주로 환경이슈와 연관돼 있다.

가장 갈등지수가 높은 제2공항 개발사업을 비롯해 도로·교통 분야에서는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지역개발 사업에서는 해상풍력, 제주동물테마파크,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등이 명단에 올랐다. 제주지역의 특성 상 환경이슈와의 높은 연계성은 필연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격한 반발을 사고 있는 구좌읍 월정리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 역시 주된 반대논리는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다.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사업도 단순 지역사회의 '이권' 문제였다면 오히려 문제 해결이 쉬웠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비슷한 시기에 삽을 든 보목, 색달, 대정, 남원, 판포 하수처리장의 경우 증설사업을 마무리지었거나 현재 진행중에 있다. 해당 마을은 주민 소득사업에 대한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진 케이스다.

기존의 갈등이 주로 민-관 간의 대립이었다면, 최근의 갈등은 민-민 갈등의 양상을 띄고 있다는 점은 뼈 아픈 대목이다.

제주는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해 가파른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전국적인 인구 감소세 속에도 제주에 살고 싶은 이들이 늘어나며 제주만은 굳건한 증가세를 유지했다. 관광산업의 성장 역시 괄목할만 했다. 

변화의 시기, 제주에는 필연적으로 지역개발 사업이 늘어났고, 환경 수용력 확충을 위한 인프라 확대도 뒤따라야 했다. 새롭게 재편된 인구 구조와 맞물려 급격한 사회변화는 가치관의 충돌을 불러왔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정착 주민과 달리 낙후된 환경을 탈피하고자 했던 기존 주민들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찬반 주민 간 법정다툼으로까지 비화된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비롯해 제주자연체험파크 등의 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극명하게 엇갈린 입장으로 해당 사업은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에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제주 지역적 특성 상 갈등이 주로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주시해야 할 사안이다. 지역개발 사업이나 혐오시설 설치 사업의 비중이 인구밀도가 낮고 넓은 부지 확보가 용이한 읍면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이다.

제주도 읍면지역의 경우 주로 해안가에 부락이 형성돼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중산간 지역의 정주인구 수가 적다. 이는 곧 대규모 개발사업의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역사회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시킬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의 성장 동력을 감소시킬 우려를 낳는다. 제주사회가 지역적 특성에 따른 갈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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