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섬 제주] ③ 지혜로운 갈등 예방·관리 필요성 대두...복기하는 모범 선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갈등 현안이 터져나오는 제주사회. 혹자는 '갈등의 섬'이라는 오명을 덧붙일 정도로 제주는 갈등에 신음하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을 비롯해 지역단위 개발사업 등 종류도 다양하고, 최근의 갈등 양상은 단순 '이권' 다툼이 아닌 '가치관'의 충돌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제주도정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제주의소리]는 2022년 송년을 맞아 제주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갈등의 양상을 되짚어보고, 이에 대한 해법과 주요 갈등 개선사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제주도 홈페이지에 운영중인 '중점관리대상 갈등사업 의견 수렴' 게시판. 제2공항, 동부하수처리장 등 갈등사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마련됐지만, 한 건의 게시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제주도 홈페이지에 운영중인 '중점관리대상 갈등사업 의견 수렴' 게시판. 제2공항, 동부하수처리장 등 갈등사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마련됐지만, 한 건의 게시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사회가 입체화되고 다변화되면서 공공갈등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갈등은 민주성이 발현된 결과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권리의식 속에 정당한 주권 행사의 과정이 갈등이 되곤 한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이 전제된다. 찬반의 치열한 논의 속에서 다양한 관점이 반영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인 해법이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 통합의 기회로 작용하는 사례 역시 괜한 기대만은 아니다. 집단 간 갈등이 되려 내부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져 조직의 안전성에 기여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즉, 오늘날에 있어 갈등은 무조건적으로 억제하려 들 사안이 아닌, 지혜롭게 예방하고 관리돼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제주사회에서 갈등을 억제하려다 역효과가 발생한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주민의견 수렴 없이 강제적으로 행정절차를 밀어붙이거나, 민감한 사안일수록 밀실 속에서 논의가 이뤄지거나, 애초에 논의의 장에 이해당사자를 배제시킨 구조 등은 숱하게 경험해 온 갈등관리 실패 사례들이다. 이는 추후에라도 더 큰 화를 부르기 마련이었다.

최근 민선8기 도정이 시도하려다가 된서리를 맞은 이른바 '언론취재 동향 보고' 내부지시 문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제주도는 '도지사 요청사항' 내부문서를 통해 전 부서에 '언론의 취재 사항에 대해 즉각 상부에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갈등사안이 작든 크든, 갈등이 예상되거나 발생할 때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언론사의 통화, 부서방문, 인터뷰, 자료제공 등 모든 취재사항도 즉각 상부에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곧 갈등 사안에 대한 선제적 관리가 아닌 비민주적인 언론통제라는 지적에 직면했고, 끝내 오영훈 도지사는 "오해가 있었다, 즉각 바로잡겠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최초 '갈등사안 선제적 관리체계 구축'이라는 목적을 내건 절차였지만, 되려 소통을 제한하고 알권리를 훼방놓은 흑역사를 남겨놓은 예다.

도지사 요청사항으로 제주도정 각 부서에 발송된 공문.  언론사 취재사안에 대한 즉각보고를 지시하며 강한 반발을 샀고, 오영훈 지사 스스로 철회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반면, 갈등 해결의 모범이 될만한 선례들도 남아있다. 

제주 쇠소깍 수상레저 사업을 두고 장장 7년째 갈등을 겪어 온 남원읍 하례1리와 하효동 마을 간의 갈등은 갈등조정협의회를 거쳐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 2009년부터 쇠소깍에서는 풍광을 즐기기 위해 투명카약과 테우체험사업이 시작됐고, 수상레저사업권을 두고 사업자와 하효동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마을 차원에서 수상레저사업을 위한 하천점용허가 연장을 거부했지만, 방문객의 감소로 주변 상권마저 피해를 입자 양 측은 '하효쇠소깍협동조합'을 구성해 사업을 공동 운영하는데 합의했다.

쇠소깍 하류에 위치한 하례1리 역시 마을회의 권리를 주장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5년부터 지속된 갈등은 7년째 이어졌고, 마을간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2021년 8월 제주도 갈등조정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다뤄졌다. 협의회 구성 이후 10차례에 걸친 회의가 이뤄졌고, 두 마을이 이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합의가 도출돼서야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됐다.

최근 입지가 확정된 광역폐기물소각시설 역시 복기할만한 사례다. 해당 시설은 늘어나는 쓰레기 소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 환경기반시설이었다. 다만, 시설의 특성상 주민반발이 우려됐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업 초안부터 제주도는 '주민수용성'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입지 후보지를 공모했다. 소각시설 입지로 선정된 마을에는 260억원 가량의 주민편익시설을 지원하고, 매해 폐기물 반입수수료의 10%를 기금으로 조성해 소득증대․복리증진․육영사업 등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10개 마을이 유치에 관심을 보였고, 최종 후보지 3곳에 대한 평가를 거쳐 안덕면 상천리가 최종 입지로 선정됐다.

상황을 반대로 가정해 소각시설의 입지를 우선 상천리로 지정하고, 인센티브 제공과 관련한 협의를 시작하려들었다면, 지역사회 내부에서 발현되는 갈등은 상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 밖에도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 신축사업 △구남마을공영주차장 유료화사업 △축산마을 주르레 샘물오염 등도 대표적인 갈등 개선사례로 꼽힌다. 대부분 갈등의 표출기에서 적극적인 조정·개입으로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중재된 사례다.

최근의 갈등 해소 사례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수반되고 있다. 마냥 '자주 만나고, 자주 소통하는' 방식의 갈등해소 방식은 점점 당위성을 잃고 있다. 갈등의 강도와 시기, 해당 이해관계자간의 역학관계 등을 고려한 전문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뒤따른다.

제주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새해를 앞두고 '2023 갈등관리 매뉴얼'을 수립했다. 갈등관리의 원칙으로 △자율해결과 신뢰확보 △참여와 절차적 정의 △이익의 비교형량 △정보공개 및 공유 △해결방안의 검토와 실질적 시행 △갈등관리 역량 강화 △지속가능발전 고려 등을 포함시켰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 갈등관리 매뉴얼에 명시된 갈등관리 체계.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 갈등관리 매뉴얼에 명시된 갈등관리 체계.

갈등 원인과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조직적·체계적인 갈등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내외부 조직간 연계 및 대응체계 마련에 힘을 쏟고, 갈등관리데이터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전문적 갈등관리를 위한 역량을 강화하고, 갈등관리 교육을 확대키로 했다.

이미 구성돼 있는 갈등관리 기구인 사회협약위원회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제주특별법과 조례 등의 근거를 통한 사회협약위원회에 행정력을 담보하는 방식이다. 갈등 해소를 위한 전문기구를 도지사 직할로 구성하거나, 제주도와 의회 사이에 두는 방식으로도 운용을 고민할 수 있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은 "제주의 최근 갈등 사례는 환경이슈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제주의 환경수용력 측면이 심각한 상황이고, 도민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은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갈등을 예방·관리하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라고 제언했다.

강 원장은 "현대 사회에서 갈등관리는 단순한 대화, 소통을 넓히는 식으로 해결되어지지는 않는다. '공자왈 맹자왈' 식의 접근일 수 있다. 갈등 사안마다 도지사가 매번 직접 찾아가는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효과적이지도 못했던 전례가 있다"며 "갈등관리 역시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예방 프로세스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창윤 제주도 소통담당관은 "갈등 해소는 사회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지역 내 갈등이 복합적이다보니 행정이 전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게 됐다"며 "이 갈등을 어느 단위가 책임지는 것이 아닌, 행정은 물론 시민단체, 의회, 언론 등의 각 기관이 서로 협력해 해결해 나가는 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 담당관은 "갈등을 조정하는데 다양한 갈등 전문가가 필요하다. 행정 내부에서도 전문가나 전문그룹을 양성할 필요도 있고, 세부적으로 마을 안에서의 시민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안도 있다. 전체적인 큰 그림은 갈등을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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