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집] (하) 도내 학교 10곳 중 8곳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없어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4.3의 진상규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정부 공식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됐다. 올해는 4.3진상조사보고서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되는 해다. 최근 극우세력의 4.3 흔들기가 도를 넘어서면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4.3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75주년 4·3추념식을 맞아 4.3 진상조사보고서의 접근성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 내걸린 현수막. ⓒ제주의소리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 내걸린 현수막. ⓒ제주의소리

제주도 내 공공도서관에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대출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미래세대의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제주의소리]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 ‘제주도내 초·중·고등학교 중 4.3진상조사보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학교’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4.3 진상조사보고서를 소장하고 있는 학교는 전체 192개교 중 29개교(15.1%)에 불과했다.

학교별로는 △초등학교 114개교 중 20개교(17.5%)  △중학교 45개교 중 6개교(13.3%) △고등학교 30개교 중 3개교(10%)였다.

나머지 163개교(84.8%)는 4.3진상조사보고서를 소장하지 않거나 소장 유무조차 파악이 안 되는 실정이었다.

물론 4.3 관련 교육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눈높이’ 교육 자료 개발에도 신경을 쓰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4.3 진상규명의 교본(바이블)과도 같은 정부 공식 4.3진상조사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4.3진상조사보고서의 원문 내용이 어렵다 보니 아이들 수준에 맞는 4.3 교재를 제작해 제공하고 있다”며 “교직원의 경우 주로 디지털화된 4.3진상조사보고서를 활용하고 있는데 인수인계가 누락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 비매품이기에 자료를 새로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공공도서관 관계자도 4.3진상조사보고서를 여유 있게 비치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비매품’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렇다면 4.3진상조사보고서는 과연 구하기 어려운 자료일까.

제주4.3평화재단에 문의한 결과 공공기관을 포함해 연구기관, 개인 등 누구나 4.3 평화재단을 찾아 배부 대장만 작성하면 그 즉시 4.3진상조사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3진상조사보고서가 귀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구하지 못할 정도의 희귀 자료는 아니라는 거다.

더하여 4.3진상조사보고서는 2003년 발간 당시 제주도 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배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의 관리 소홀 문제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4.3 왜곡·폄훼 도서가 자료실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여타 공공도서관들과 비슷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학살 원흉인 전두환씨의 자서전 ‘전두환 회고록’의 경우 제주와 광주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제주에서는 4.3을 공산폭동이라 주장하는 역사 왜곡·폄훼 도서들이 버젓이 공공도서관에 비치돼 있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강 위원장은 “4.3을 알리기 위해서는 도민들이 쉽게 자료를 활용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4.3을 처음 접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도서가 사실에 기반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도서관 측이 도민들의 혈세로 4.3 폄훼 도서를 직접 구입해 비치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4.3평화재단을 비롯한 4.3 단체에 문의만 해도 문제 있는 도서를 걸러낼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4.3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4.3진상조사보고서 편찬에 참여한 김종민 제주4.3중앙위원회 위원도 “4.3진상조사보고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김 위원은 “자료 보존을 위해 대출이 어렵다면 책을 여러 권 구비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4.3진상조사보고서는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제주도와 4.3평화재단 차원에서 4.3진상조사보고서를 많이 배포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많은 사람이 쉽게 읽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4.3 왜곡·폄훼 도서에 대해서는 “4.3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발간된 4.3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가짜라고 호도하고 폄훼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며 “독일에서는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기만 해도 처벌받는다”고 말했다.

비단 4.3진상조사보고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기록된 수많은 자료가 무관심 속에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 수만 명이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4.3의 세대 전승이 필수적이다. 4.3 자료의 활용 방안과 함께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을 앞두고 일부 극우 세력들의 ‘4.3 흔들기’가 도를 넘는 지금, 제주의 미래를 책임질 제주도정과 교육 당국이 두번 세번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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