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극우단체, 정부 공식 4.3진상조사보고서 부정 성명
자칭 애국정당·단체 “공산당의 역사이자 폭동의 역사” 망언 쏟아내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희생자와 유족의 한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는 통탄의 역사, 제주4.3을 왜곡·폄훼하는 세력들이 정부 공식 4.3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고 나섰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여야 합의를 통해 제주도민의 염원이 담긴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한 채 발간된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는 이들은 보고서 성격을 관보 수준으로 깎아내렸다.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자유논객연합 등 5개 정당·단체는 31일자 성명을 통해 “4.3정부보고서는 항쟁으로 미화하고 왜곡과 편향으로 작성됐다”며 “민주당 관보 수준의 4.3정부보고서를 잣대로 애국 정당의 4.3현수막을 왜곡으로 폄훼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앞서 도내 곳곳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며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4.3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단 바 있다. 

제주4.3은 이들 주장과는 다르게 1947년 3월 1일 기념행사에서부터 싹텄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지서를 습격하기 전부터 제주도는 ‘빨간 섬’이 됐고 도민들은 ‘빨갱이’로 내몰렸다. 4.3 이전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은 물리력 검거 공세를 벌이기도 했다.

1948년 3월에는 일선 지서에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 제주사회가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다. 한편 조직이 노출돼 위기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 같은 민심을 이용해 4월 3일 새벽 2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3.1절 발포사건 이후 제주사회는 검거선풍과 고문치사 등이 이어지며 긴장감이 맴돌았고,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의 시작이다. 이처럼 4.3발발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럼에도 4.3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는 이들 단체는 “4.3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며 폄훼하고 “김일성의 지시를 받았다”고 왜곡한다.

이들 단체는 성명을 통해 “4.3폭동의 초대사령관 김달삼은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라는 4.3폭동의 기록을 남겼다. 4.3폭동의 두령급이었던 김봉현은 일본으로 도피해서 김민주와 함께 ‘제주도인민들의 4.3무쟁투쟁사’를 저술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저서들은 4.3폭동 주동자들이 상부 지시를 받아 인민공화국 창건을 위해 투쟁하는 공산폭동임을 자술하고 있다”며 “본인들이 공산폭동이라고 자백하는데도 불구하고 4.3공산폭동이 도민 자발적이었다고 주장하며 공산폭동 책임을 도민에게 전가하는 자들은 누구인가”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이었다. 

23일 제주시 이도2동 교차로에 내걸린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국회의원(제주시을, 정무위)의 맞불 현수막. 사진 제공= 김한규 의원실.
23일 제주시 이도2동 교차로에 내걸린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국회의원(제주시을, 정무위)의 맞불 현수막. 사진 제공= 김한규 의원실.

이들 단체가 주장하는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과 관련해서 이를 반박하는 자료는 차고 넘친다. 이들이 중앙 지시를 받은 내용이 수록됐다는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는 되려 중앙당, 즉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는 증거가 있다.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는 4월 3일 경비대 동원계획이 무산된 과정을 설명하며 남로당 중앙당이 제주도 무장투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단서를 밝힌다. 

보고서에는 [4.3투쟁 직전에 고 하사관이 문 소위에게 무장투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경비대도 호응 궐기해야 된다고 투쟁 참가를 권유했던 바 문 소위는 중앙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거절한 바 있었다고 함]이라는 글이 적혔다. 

아래에는 [재삼 재사 요청을 하였으나 중앙 지시가 없음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결국 거절당했음. 이리하여 4.3투쟁에 있어서의 국경 동원에 의한 거점 분쇄는 실패로 돌아갔음]이라는 내용이 나타난다.

남로당에 관여한 증언자들도 중앙당 지령설을 부인하고 있다. 제주도당 정치위원이었던 이삼룡은 “중앙당 지령은 없었고, 제주도 자체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남로당 대정면 책임자였던 이운방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 글을 썼다. 

심지어 1948년 지리산 진압군 사령관을 지낸 백선엽 장군 역시 저서 ‘실록 지리산’을 통해 여순10.19과 함께 4.3의 진실을 밝힌다. 그는 “여순반란사건은 결코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4.3과 마찬가지로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했다.

남로당 전문 연구가인 김남식 역시 대중동원에 의한 정치투쟁과 폭력투쟁을 배합한 복합형태이지 전면 무력투쟁이 아니었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제주도의 특수여건이 김달삼 등의 선동에 의해 터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존 메릴 박사도 논문을 통해 “4월 3일 공격은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 캠페인으로부터 발생했지만, 제주도당부의 전투적인 지도부 주도 아래 감행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조사 결과 중앙당 지령은 없었다”고 말했다.

4.3을 왜곡하는 단체들은 “제주4.3은 공산당의 역사요, 폭동의 역사”라며 왜곡된 발언을 일삼고 있다. 계속해서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아픈 상처를 헤집는 이 같은 4.3흔들기를 막기 위해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에 도민사회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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