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공갈등 관리] ① 불씨 끈 동부하수처리장 갈등, 신뢰확보 원칙 주효

갈수록 고도화되고 입체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갈등관리'는 어느 때보다 중대하게 다뤄지는 요소다. 이해당사자에 따른 갈등이 필연적인 공공 영역에 있어서는 보다 전문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주요 갈등현안의 해결 과정을 살펴보고, 갈등관리 프로세스의 활용방안과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에 반대하는 해녀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시가 급했던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가 처음 멈춰선 것은 2017년 12월이다. 마을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숨고르기를 한다는 것이 근 5년을 훌쩍 넘어섰다. 계획은 계획대로 틀어졌고, 손해는 나날이 커져갔다.

해녀와 어부들은 생업을 내팽개치고 거리의 투사를 자처했다. 공사 진입 차량을 막아서기 위해 아스팔트 도로에 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진심을 다한 일부 주민들은 합법적인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피의자' 낙인이 찍혔다.

'으레 겪는 갈등이겠거니' 판단한 것이 패착이었다. 상황이 유사했던 제주 서쪽마을, 남쪽마을의 해결 선례를 그대로 들이민 것 또한 뼈아팠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소재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은 공공 갈등관리의 중대성을 일깨워준 사례가 됐다.

갈등의 형태나 강도가 더욱 입체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 공공갈등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술 한 잔에 훌훌 털어넘기는' 구시대적 사고가 아닌, 전문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는 시대다.

2016년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미래비전'은 공공갈등의 발생 요인을 서술하고 있다. 공공갈등의 발생원인과 관련해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공공갈등 발생 원인은 관(官) 주도적인 정책결정 방식이 가장 크다는 판단이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에 반대하는 해녀들이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역주민이나 민간부문의 역할, 시민사회의 기능이 그 어느 떄보다 확대됐고, 민간부문 역시 주요 정책이 가져 올 기대효과에 대한 분석능력이나 이해도가 국가 주도 시대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정책의 추진 주체들이 여전히 관 주도의 일방적인 방식을 견지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담겼다.

업무 수행 방식이나 주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가 배제되거나, 이해 관계자에 대한 형식적 의견수렴이 가져오는 도외시 현상 역시 공공갈등을 확산시키는 중대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예상보다 거센 반발을 샀던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애초부터 증설 필요성만큼은 인정된 사업이었다. 급격한 주민-관광객 증가세와 맞물려 하수처리량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수처리장 증설 밖에는 답이 없었다. 또 다른 하수처리장을 신설하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더 큰 사회적 갈등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 역시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업의 당위성으로만 밀어붙이기에는 주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사업 부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보호구역 인근에 위치해 있고, 보호 가치가 높은 용천동굴이 있다는 점도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보다 큰 명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해녀들의 생존권 문제였다.

행정으로서는 이미 서부지역의 월령리·판포리, 동부지역의 김녕리, 남부지역의 남원읍 등 유사한 갈등해결 선례를 기준 삼아 접근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난 15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녀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소리<br>
지난 15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녀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소리

전임 도정의 급작스런 공백으로 인해 책임 주체가 명확치 않았던 것도 화를 키웠다. 그 사이에 주민들은 사업 부지는 물론 제주도청, 제주시청, 제주지방법원, 제주도의회 등 전장을 옮겨가며 투쟁을 벌였고, 정치권 인사까지 가세하며 전선은 확산됐다.

평행선을 긋던 갈등은 민선 8기에 접어들어 해결의 물꼬를 텄다.

제주도는 갈등관리의 기본원칙으로 △자율해결과 신뢰확보의 원칙 △참여와 절차적 정의의 원칙 △이익의 비교형량의 원칙 △정보공개 및 공유의 원칙 △해결방안의 검토와 실질적 시행의 원칙 등을 제시했다.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우선시하되, 이해관계자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고, 이익이 상충될 경우 공익·사익간의 비교형량을 판단한다는 기준이다.

이 과정에 있어 이해관계자에게 관련정보를 공개·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갈등 해결기법을 활용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세 차례에 걸쳐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업을 추진할 때 법과 절차에 따라 불가피하게 진행해야 되는 측면도 있지만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면서 "지자체장으로서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해녀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복원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제주도가 모든 사업 과정의 투명화와 주민숙원 수용을 조건으로 내걸자 월정리마을회도 올해 초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이를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로 대체했다. 지난 20일에는 오 지사와 월정리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갈등 종결'을 선언했다.

지난 5월 6일 민관군 상생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회 일강정의 날 기념식. ⓒ제주의소리<br>
지난 5월 6일 민관군 상생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회 일강정의 날 기념식. ⓒ제주의소리

제주도와 월정리는 '허용 범위 내 주민 숙원사항'의 범위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불씨는 남아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결론도 나지 않았음에도 갈등 종결 선언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공공갈등 관리와 원칙의 중대성이 반영된 결과다.

치유하기 어려운 상흔으로 남은 제주해군기지 갈등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갈등해결 모델로 발전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민-관-군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생협의회 주최로 열린 친선대회나 축제 등은 갈등의 주체들이 한데 모이고, 소통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 있어 의미가 부여된다. 

공공갈등은 유형별, 시기별, 사안별로 다양하게 진행됨에 따라 '도민 참여와 이해 관계자와의 협의'라는 기본 방향을 유지한 채 사안의 특성에 맞게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만큼 제주사회는 갈등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저감하고, 긍정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제주 공공갈등 관리’ 기획 취재는 제주도의 취재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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