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공갈등 관리] ②북부광역환경센터 실직자 '고용 승계→고용 연계' 선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입체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갈등관리'는 어느 때보다 중대하게 다뤄지는 요소다. 이해당사자에 따른 갈등이 필연적인 공공 영역에 있어서는 보다 전문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주요 갈등현안의 해결 과정을 살펴보고, 갈등관리 프로세스의 활용방안과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 주


지난 6월초를 마지막으로 철거된 제주도청 앞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 고용승계 촉구 천막농성장. ⓒ제주의소리
지난 6월초를 마지막으로 철거된 제주도청 앞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 고용승계 촉구 천막농성장. ⓒ제주의소리

저마다의 이유로 제주도청 건너편 길가에 줄지어 세워졌던 천막농성장은 어느 순간부터 덩그러니 한 동만 남아 외로운 농성을 이어왔다. 지난 겨울,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제주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북부소각장)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담긴 현장이었다.

2002년 건립돼 20여년 간 제주시민들의 폐기물 처리 업무를 도맡아 온 제주시 봉개동 북부소각장은 2023년 2월 28일자로 운영이 폐쇄됐다. 제주 곳곳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통합 처리하는 광역폐기물처리시설이 새롭게 들어서며 각 지역마다 흩어져있던 소각·처리 시설 역시 수명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일해온 노동자들은 일순간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 제주에 예기치 못한 '쓰레기 대란'이 불어닥쳤을 당시 현장 최일선에 섰던 노동자들도 그 필요를 다했다는 듯 벼랑 끝에 섰다.

'폐기물 처리' 업무는 그 성격상 온전히 공적 영역임은 물론, 사실상 제주도·제주시의 관리·감독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은 민간위탁이라는 구조를 띄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했지만, 형식적으로는 민간사업장 노동자의 고용을 행정이 승계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과거 행정 편의적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뒤늦게 화를 키운 셈이다.

애초부터 찬반 구도가 갈리는 갈등이 아니었기에 싸움은 더욱 외로웠다. 이 사안의 피해는 오롯이 57명의 노동자들에게만 집중됐다. 노동자들이 소속된 상위 노조가 십시일반 힘을 보탰지만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는 없었다. 천막농성은 해를 넘겨 계속됐고,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제주도 역시 손을 놓지는 않았지만, 고용 승계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결과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벽에 가로막혀야 했다. 공무원 및 공무직은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하는 근로 형태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직원을 행정에서 승계하는 의무나 근거 조항은 없었다. 

제주도청 종합민원실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는 북부 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들. ⓒ제주의소리<br>
제주도청 종합민원실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는 북부 광역환경관리센터 노동자들. ⓒ제주의소리

그렇다고 행정에서 법적 권한 외의 해법을 제시하거나, 이전과 같이 공적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의 기형적 고리를 다시 연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 한파를 뚫고 이어지던 지리한 싸움은 방법을 다르게 접근하면서 실마리를 찾게 됐다. 제주도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정협의체를 구성하고, 노동자들을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시켰다. 

제주도청 내 갈등관리를 담당하는 소통청렴담당관실이 주도했지만, 협의체에는 환경, 경제, 일자리, 정책기획 등 7개 부서가 달겨들었다. 직접 '고용 승계'는 불가할지라도 대규모 '고용 위기'로 접근해 간접적 지원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업무 연관성이 있는 취업정보를 알선해주거나 창업을 지원해주는 등의 방식이었다. 실업급여도 개별 신청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단체로 상담해주는 창구를 열었고, 노동자들의 관련 자격증 소지 유무를 파악했다. 모든 과정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부서 간 벽을 허무니 시야가 넓어졌다. 이미 경기도의 경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를 겪으며 행정 차원의 지원 가능성을 연구한 용역사례가 있었고, 제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실직했던 이들을 지원해주던 프로그램의 선례가 있었다.

제주도는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퇴직 근로자 고용위기 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체를 구성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br>
제주도는 북부광역환경관리센터 퇴직 근로자 고용위기 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체를 구성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특히 공공갈등 관리기법 매뉴얼에 따른 '참여적 의사결정'과 '대안적 분쟁해결' 등의 접근 방식이 주효했다. 노동자들의 필요 의견을 직접 수렴했고, 이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북부소각장 실직자 중 고용을 필요로 한 노동자는 52명이다. 6월27일 기준 이중 23명은 환경관련 시설 등에 재취업했고, 정년이 지난 노동자 등을 제외한 재취업 희망자는 17명이 남아있다. 더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기에 천막농성장은 200여일 만에 자진 철거됐다. 

제주도로서는 이와 유사한 고용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시 즉각 적용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제주도는 갈등 현안과 관련한 협의체를 구성함에 있어 협업구조를 만드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 규제하는 부서와 확산하는 부서의 시각이 다르다보니 일괄된 기준을 적용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다. 이미 주요 갈등 현안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기준이 속속 적용되고 있다. 

* ‘제주 공공갈등 관리’ 기획 취재는 제주도의 취재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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