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월정리가 제주에 묻다](4)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위의 하수처리장

출처 = 황정현 제공
출처=황정현 제공
출처=황정현 제공
출처=황정현 제공

두 이미지에는 땅 밑에 가만히 있는 동굴을 두고 땅 위에선 왜 소란스러운지 그 이유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이미지를 보자. ‘토지이음’에서 월정리 1544-12번지를 검색하면 지적도 상에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이라고 표시되어 나온다. 월정리 1544-12번지는 동부하수처리장의 주소다.

두 번째 이미지를 보자. 월정리 비대위 측에서 동부하수처리장 준공과 1차 증설계획과 허가, 건설, 가동에 따른 정보, 2차 증설계획과 허가에 따른 정보를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에 보고했는지에 관해 문화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답변은 “보고한 사실이 없음”이었다.

두 이미지의 내용을 연결하면 이렇게 된다. 월정리 1544-12번지 땅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용천동굴 인근지역이고 세계자연유산 완충구역에 맞닿아 있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이다. 동부하수처리장은 이런 땅에서 2007년 완공되었다. 그 해 용천동굴을 포함한 제주도의 자연 기념물이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로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2022년 시점에 확인한 바, 동부하수처리장 완공 시점(2007)에도 1차 증설 시점(2014)에도 2차 증설 계획 발표 시점(2017)에도 그 사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참 시간이 흘러 지하의 동굴은 갑자기 지상의 정치에서 첨예한 공간이 되었다.

동굴 곁의 하수처리장

월정리는 면적 6.63㎢에 현재 시점 총 303세대, 7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지만, 세계자연유산의 핵심 자원인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자리해 마을 대부분이 세계자연유산의 핵심구역과 완충구역에 속해 있다.

월정리 일대는 과거 화산 분출 때 파호이호이 용암이 많은 동굴을 만든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밭의 토양이 지하로 유실되는 등의 싱크홀이 종종 생기며,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호우에도 물이 지하로 배수되어 홍수 피해가 나지 않는다.

당처물 동굴은 1995년에 동부하수처리장 입지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나 1997년 동부하수처리장의 설립 허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용천동굴은 2005년에 보다 가까운 곳의 전신주 교체 작업 도중에 발견되었으나 2007년 동부하수처리장의 완공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넘어간 일들이 2020년대에 들어 역류한 것이다.

2022년 10월 17일, 월정리 마을회, 비대회, 해녀회가 제주지방법원에 ‘공공하수도 설치(변경) 고시 무효확인 청구 소송’ 소장을 제출할 때 그 핵심 내용은 “도는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신청서에 부지에서 100m 거리에 있는 용천동굴이 아닌 600m 거리에 있는 당처물동굴만 기재했을 뿐 아니라 수질·악취·오수 등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건축물 등을 개축하는 행위로 허가를 신청하는 위법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즉 하수처리장의 증설을 위한 서류 작성 과정에서 동부하수처리장에서 보다 가까운 동굴(용천동굴)은 누락하고 먼 동굴(당처물 동굴)만 기재했으며, 하수처리장이 동굴에 미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 고시는 무효라는 것이다.

설치와 증설의 법제도적 쟁점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부하수처리장의 건설과 증설 단계에서의 문제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월정리 비대위가 유네스코 측에 보낸 자료에 근거해 그 요지를 간단히 정리해보자.

○ 건설 시점의 문제 : 동부하수처리장의 건설 공사는 1997년 1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심사가 진행된 시기인 2006년 2월부터 2007년 6월까지가 포함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서」에서는 환경 악화가 우려되는 시설은 반드시 사전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어 있으나 당시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본부에 제출한 신청서에는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 지역)’을 위협하는 대규모 공사 및 하수처리장에 관한 언급이 나오지 않으며, 다음처럼 되어 있다.

“오염된 지하수처럼 용암동굴이나 용암동굴 형성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위적인 오염원은 거문오름계 용암동굴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농경지로부터 유출되는 빗물 등이 용암동굴에 미치는 영향은 모니터링해야 한다.” (김은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서 '허위작성 의혹', 진실은?”, 『미디어제주』 2022.04.14. 재인용.)

그러나 신청서가 작성될 당시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인 월정리의 당처물동굴, 용천동굴 인근에서는 동부하수처리장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증설 시점의 문제 : 동부하수처리장에 인접한 용천동굴은 한국 정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4년 동부하수처리장의 1차 증설 공사는 이격거리 408m인 용천동굴을 대상문화재로 하지 않고, 1.7km 떨어진 당처물 동굴을 대상으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다. 더욱이 이때 증축된 시설들은 건축물대장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169조에 따르면 등재국 사무국은 세계유산의 가치나 보존 상태에 영향을 주는 건설사업이 진행될 시 구체적인 보고서와 영향 연구 결과를 세계유산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하고, 172조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과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신규, 증축 등의 공사에 대해서 공사 전 계획 시부터 보고하라고 되어 있다.

그리하여 반대운동 진영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과정에서 세계유산협약을 어겨 용천동굴은 세계유산협약 180조의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 등재 기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22년 4월 제주도정을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에 제소할 방침임을 밝혔다. 또한 2023년 1월 월정리 비대위, 해녀회 등은 “동부하수처리장 신축과 1·2차 증설 과정에서 문화재 현상변경신청서와 허가서를 위변조, 허위 작성, 행사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전현직 제주지사와 문화재청장, 공무원, 공사업체 관계자 등 19명을 대상으로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문화재보호법 36조(허가기준)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 지구에서 역사문화환경을 훼손하는 증설 공사는 허가불허 사항이고, 문화재보호법 37조(허가사항의 취소)의 허가취소 사항에 해당한다.

그밖에 제기된 쟁점들도 많은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다음의 인용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단순 실수라 하기엔 반복되는 오류투성이 허가신청서와 허가서,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보존지역허가신청과 허가 심의과정 절차 위반, 용천동굴 주변 보존 지역 내 건설 행위 등, 불허된 타 사업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허가, 용천동굴의 핵심 구간인 호수구간 최하류가 은폐되어 현재까지 유네스코에 미등재인 점, 문화재청을 패싱해 버린 제주도지사의 자체 허가, 누락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 대체 몇 단계를 뛰어넘은 것인가? 이런 일들엔 대체 어떤 이유를 붙여야 할까?” (엄문희, “월정 해녀 투쟁기를 시작하며”,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2023.06.05.)

세계유산 보존을 위한 다층위 거버넌스

출처=유네스코에 보낸 탄원서 첫 페이지
출처=유네스코에 보낸 탄원서 첫 페이지

세계유산으로서 국제적 보호를 받아야 할 기념물에 훼손 가능성이 생기면 유네스코가 개입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사례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릉 조선왕릉 보존 문제가 있다. 2022년 8월, 정부가 태릉 조선왕릉 인근의 태릉골프장을 개발해 1만 가구를 공급한다고 밝히자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유네스코에 개발 반대의 서한을 보내 2023년 9월 사우디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조선왕릉 유산처리 건이 의제로 상정되었다.

월정리 비대위, 세계유산 용천동굴을 지키는 사람들, 월정리 해녀회도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에 탄원서를 보내고, ‘유네스코 제주 세계자연유산을 지키기 위한 전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그 내용을 유네스코에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는 탄원의 내용에 대해 유네스코에 보고하라는 회신을 한국 외교부로 보내 문화재청과 제주도정에 전달된 상태이다.

월정리 문제는 이처럼 지구적 커먼즈인 용천동굴과 지역적 커먼즈인 공동어장이 하수처리장 문제를 매개로 얽히면서 마을, 지역, 국가, 세계 차원의 다양한 단체, 기관, 규범과 관계하는 다층위적 문제가 되었다.

동부하수처리장과 용천동굴을 둘러싼 마을-지방-국가-세계 수준의 행위자들과 관련 제도 / 출처=필자 작성
동부하수처리장과 용천동굴을 둘러싼 마을-지방-국가-세계 수준의 행위자들과 관련 제도 / 출처=필자 작성

반대운동 진영은 제주도정과 제주도 상하수도본부가 추진하는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을 막아내기 위해 건설 및 증설에 관한 행정 자료를 분석하고, 동굴이나 숨골을 자체적으로 살펴보고, 거기서 드러난 문제 소지의 지점을 문화재청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에 보고하고, 보도자료 배포와 기자회견 개최 등을 통해 제주도 시민사회에 알렸다.

그런데 주민과 시민들의 이러한 노고는 세계자연유산을 둘러싼 마을-지방정부-중앙정부-국제기구 차원의 중층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빚어진 사회적 비용으로도 볼 수 있다. 단적인 사례로 월정리 비대위는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이 용천동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의 가능성에 대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문서로 문제제기했으나 그 내용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거쳐 유네스코 본부 측에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탄원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유네스코 자연유산위원회에 직접 보냈다. 만약 그 이전에 ‘세계유산협약’(국제협약), ‘문화재보호법’(국내법), ‘유네스코 등록유산 관리에 관한 조례’(지방조례) 등의 중층적 규범에 따라서 세계자연유산이 관리되고,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있는 경우 유관기관들이 협력적으로 대처했다면 고소고발로 얼룩진 지금의 사태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월정리 문제는 제주도에 또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유네스코의 섬이라면 그에 걸맞게 등재 유산 보호 및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거버넌스를 정립하고 가동해야 한다. 지난 상처가 컸던 만큼, 이제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 글쓴이 윤여일은?

윤여일 연구교수
윤여일 학술연구교수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썼다. ‘지키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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