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월정리가 제주에 묻다] (6)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누가 주민인가

‘세계유산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제4조 제3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는 주민, 이해관계자, 관계 전문가 등이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과 관련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민’은 누구인가. 2017년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계획 발표 이후 월정리의 각 단체는 함께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으며, 제주도정을 상대로 이 법 조항에 근거해 마을회를 중심으로 한 월정리 주민의 의견을 들으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3년 1월 19일의 마을 총회에서 비대위가 해산되고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라는 새로운 협의체가 생겨나며 상황이 달라졌다. 월정리 주민들의 집단적인 반발로 공사가 지연되고 갈등이 장기화되던 와중에 변화가 생겨났다. 꾸준히 반대 입장을 공유해오던 월정리 마을회의 행위 주체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당시 마을총회 상황을 월정리 비대위 공동위원장 황정현은 기록해 언론에 알렸다. 그에 따르면, 103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 이장은 한 개발위원회 위원의 제안을 받아 예정에 없던 비대위 해체의 건을 상정했다. 이에 해녀들을 비롯해 반대 의사를 가진 주민들이 반발해 회장을 빠져나가 과반에 15명이 부족한 상태가 되자 투표를 관리하는 마을회와 개발위원회 임원들이 투표장 건물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데려와 결국 53명이 투표해 비대위 해체를 가결시켰다.

이 날 총회에서 마을 이장은 “대책위의 주장대로 끝까지 싸울 것인가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하고 증설을 수용하면서 보상을 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주변의 말을 들어보니 결국 막아낼 수 없기에 더 이상 반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제주도와 협의안을 추진하자 결심하였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이장인 제가 끌어안고 가겠다”라고 개인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비대위 해체의 건에 대한 비대위원장과 해녀들의 발언은 봉쇄되었다. 그의 기록대로라면, 비대위를 해체시키기 위해 마을 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이날 비대위가 해산되고 대신에 이장의 권한으로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가 구성되어 제주도정은 이 위원회와 증설에 대한 협의를 했다. 그러나 해녀들은 협의 과정에서 배제되어 제주도청으로 가서 “제주도지사는 해녀들과 직접 대화하라”고 요구하며 집회를 하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갔다. 마을회의 협의체 구성 결정과 이후 협의의 진전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해녀들은 마을 내에서 고립되어갔다. 하지만 나이 든 해녀들이 제주도청에서 노숙투쟁하는 모습 등에 충격을 받은 시민들과 단체들이 2023년 5월 ‘동부하수처리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53개 시민단체’, ‘월정리 용천동굴을 지키는 사람들’과 같은 모임을 조직하여 해녀들과 연대하며 매일 순번을 정해 공사장 앞 컨테이너를 지켰다. 이렇게 대립의 전선은 제주도정 대 월정리 마을에서 제주도정 대 월정리 해녀회 및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진영으로 옮겨갔다.

마을 조직의 가부장주의

월정리 미래발전위원회는 마을 이장, 개발위원장, 청년회장, 부녀회장, 어촌계장 그리고 해녀회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부녀회장과 해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이들 마을 대표단은 제주도정의 증설 계획을 수용하고 대신 보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이 자리에서 해녀회장은 입장을 달리했지만, 해녀회가 어촌계의 하위 조직으로 포함되는 마을회 구조로 인해 어촌계장이 해녀회를 대변하는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마을의 미래를 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하수처리장 가동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당사자인 해녀들의 의견이 외면당했다.

월정리 어촌계는 120명 정도의 성원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업으로 활동하는 해녀들 55인 이외에 과거 활동했던 해녀들을 포함해 어촌계 구성원의 80% 정도가 해녀들이다. 그 밖에는 어선을 소유하거나 어선으로 어업을 하는 남성들, 그리고 지금은 어업에 종사하지 않지만 과거에 어촌계원으로 등록된 남성들이 있다. 즉 어촌계는 다수가 해녀이지만, 어촌계장이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월정리 문제는 마을 조직의 가부장주의와 비민주성의 여지를 드러내며, 커먼즈 관리체계 안에 위계와 불평등이 내재해 있음을 보여준다. 가부장주의는 마을에서 자원의 배치와 의사의 조직을 결정하는 중요한 권력관계이다. 농어촌 지역에서 가부장주의는 토지가 주로 남성에게 세습되는 관례를 바탕으로 이어져 왔다. 교육기회와 취업기회 역시 남성에게 편중되어 왔다. 대체로 60대 이상인 해녀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경우가 드물며, 어린 시절부터 물질을 해온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마을에서 어업과 농업을 하고 있으며, 해녀회라는 커먼즈 관리 조직을 형성하고 커먼즈인 공동어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마을 내 역학관계에서 열위에 처해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마을 공동체 내부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커먼즈를 둘러싸고 마을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상이하고도 비대칭적인 입장과 그에 따른 갈등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자칫 마을 공동체는 성역화될 수 있다.

1987년 월정리 하수처리장 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해녀들이 제주도청으로 모여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 사진=황정현 제공<br>
1987년 월정리 하수처리장 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해녀들이 제주도청으로 모여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 사진=황정현 제공

해녀들, 운동의 주역

하지만 해녀들은 2023년 1월 비대위 해산과 새로운 협의체 구성 이후에도 마을 내에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비록 해녀들이 마을 내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10%도 안 되지만, 이들의 결속력으로 증설 공사는 장기간 지연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싸웠다. 공사 예정지 진입로에서 서너 명씩 한 조를 이뤄 밤낮으로 24시간 보초를 서서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다. 제주도청과 문화재청으로 항위 시위를 갔으며, 공사를 막기 위한 다양한 고소·고발도 진행했다. 더욱이 해녀들은 공동어장과 동굴을 지킨다는 반대운동의 가치를 알려 제주도 환경단체와 환경활동가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돌이켜보면 처음 월정리에 분뇨처리장이 들어서려던 1987년, 당시 북제주군청에서 사흘 간 철야농성을 해서 공사를 막아낸 주역도 해녀들이었다. 그때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억척스러운 싸움이 가능했던 이유

제주도청에서 철야노숙과 연좌농성을 하는 해녀들 / 사진=엄문희 제공<br>
제주도청에서 철야노숙과 연좌농성을 하는 해녀들 / 사진=엄문희 제공
제주도청에서 철야노숙과 연좌농성을 하는 해녀들 / 사진=엄문희 제공<br>
제주도청에서 철야노숙과 연좌농성을 하는 해녀들 / 사진=엄문희 제공

해녀들이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에 이토록 억척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들은 마을 내에서 소수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직력이 강한 것일까. 그 배경에는 이들에게 바다가 생계의 중요한 터전이라는 사실과 공동노동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해녀들은 배를 타고 나가기도 하지만, 주된 작업 장소는 마을 앞바다이다. 이곳 바다밭의 일부는 해초가 풍부하여 전복이나 오분자기, 해삼 등을 종패로 방사하여 해녀들이 관리하며 해산물을 캐내는 양식장으로 사용된다. 동부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해야 할 오폐수가 늘어나 앞바다의 오염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은 공동어장에서 해산물을 채집하는 월정리 해녀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공동어장에서 물질이 불가능해진다면, 생계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대체로 60대 이상으로 수십 년 간 물질을 해온 그녀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 자체가 뒤바뀌게 된다.

이들의 강한 결속력은 공동작업 방식과 해녀회 조직으로부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녀들은 생존과 협동을 위해 함께 작업한다. 서로 다른 사람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거리에서 물질을 하며 물속에서 처할 수 있는 위험을 상호 예방한다. 그리고 해녀회는 입어 시기, 공동 채취, 입어 관행 등을 자치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한다. 채집된 수확물은 각 해녀회의 규범에 따라 분배한다. 안미정은 해녀들이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거부하고 물질이라는 오래된 노동방식을 고집하는 까닭은 집단 내 고령자들을 배려하고 협력을 통해 상호부조를 이어가기 위함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물질이 해녀에게 의미하는 것

하지만 ‘우리 바당’을 지키는 데 해녀들이 그토록 헌신적인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해녀인 김은아와 대화하며 알게 되었다.

여기서 젠더화된 커먼즈(gendered commons)라는 관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페데리치는 커먼즈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을 강조하며,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남성들보다 커먼즈에 의존해 왔고 커먼즈를 수호하는 데도 헌신적이라고 밝힌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토지에 대한 권리나 사회적 권력이 약해서 생존을 위해 커먼즈를 더욱 활용해야 했다. 커먼즈의 육성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김은아에게 들은 이야기는 월정리 해녀에게 농사와 물질이 어떻게 다른 의미인지였다. 해녀들은 물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짓는다. 그런데 농지는 대체로 남편 명의로 되어 있다.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월정리로 온 해녀들도 많다. 농민보조금을 받기 위해 농사를 짓는 가구가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때 남성은 경영자인 반면 여성은 무급종사자로 기재되곤 한다. 토지와 농사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위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동어장에서는 다르다. 해녀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바다의 자원을 관리하고 작업 방식을 정한다. 이로써 주체적으로 가정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한다. 이러한 과정은 해녀들 공동으로 이루어진다. 능력과 경험에 따라서 채취할 수 있는 곳을 정하고, 서로가 바닷속에서 안전을 지켜준다. 이러한 주체성과 공동성은 여성인 해녀들에게 자긍심과 유대감을 안긴다. 김은아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왜 해녀들이 하수처리장 증설을 막기 위해 가장 끈질기고 조직적으로 싸우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였다.

예언하는 자

동부하수처리장 가동에 따른 어업 피해는 아직 제대로 조사되어 있지 않다. 2017년 무렵 월정리 어촌계 측에 어업 피해 조사와 보상에 대한 제안이 왔지만, 피해 조사 수용이 2차 증설 계획 추인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해녀들이 거부했다. 그래서 월정리 비대위가 자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설문지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해녀들이 답한 내용들이 기억난다.

동부하수처리장 운영과 증설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묻는 항목에 ‘옛날에는 문어도 가득 잡았는데 십여년 전 일이다’, ‘물질로 아이들 공부 다 시켰는데 지금은 빈망사리로 돌아오는 일이 많다’, ‘바당이 거먼 돌벌레였는데 퍼석퍼석해서 소라 같은 것들이 살지 못한다’, ‘바다에 풀이 없다’, ‘물에 들 때도 날씨가 흐린 날은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생계벌이를 하려면 들어가야 한다’는 답변들이 있었다. ‘바당이 없어졌다’, ‘월정리가 폐허의 마을로 전락될 것이 두렵다’고 한 답변들도 있었다.

앞으로 물질을 얼마나 더 할 계획인지를 묻는 항목에 대해서는 답변이 짧았는데, 접하고는 아찔했다. ‘계속’, ‘물질은 10년, 농사는 10년’, ‘25년’. 이미 60대 이상의 고령이신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적으실 때 그 시간감각은 어떠한 것일까. 저 짧은 답변을 문장으로 풀이하면 ‘몸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평생을’이 될 것이다. 물질은 그 분들에게 노동임을 넘어서는 운명 같은 것일까.

평생 물질을 해오고 할 것이라는 사람의 삶.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그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바당이 없어졌다.’ 해녀들이 적은 저 답변들은 자신들의 어업 피해에 관한 내용만이 아니다. 해녀들은 육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결과를 바다에서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땅 위에서 오염시킨 물은 땅 밑의 파이프를 통해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땅 위의 사람들이 저지른 여러 일들로 지금 바다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바당이 없어졌다.’ 이 문장은 이미 과거형이다. 이 신음은 땅 위만을 보고 지내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육지에서 바다로 전가되고 있는 막대한 오염물은 오래 지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예언豫言. 그것은 오지 않은 미래를 맞추는 말이 아니다. 현재 속에 잠재해 있는 징후를 먼저 알아차린 말이다. 모든 것이 빠르고 혼란스럽게 바뀌는 이 사회에서, 같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야 감지할 수 있는 변화가 있다. 월정리 해녀들은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닥쳐올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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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썼다. ‘지키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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