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월정리가 제주에 묻다] (7)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해녀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

2023년 6월 15일, 월정리 해녀회와 오영훈 제주도지사 간의 간담회가 어렵사리 성사되었다. 이 자리에서 해녀들은 이렇게 요구했다.

1. 제주시 동지역에 위치한 삼양처리분구를 월정처리구역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동부하수처리장은 조천읍과 구좌읍 관내 하수처리만 담당한다.

2. 동부하수처리장 3차, 4차 증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한다. 삼양처리분구를 연결하지 않을 경우 12000톤의 증설은 과도하며 증설에 필요한 적정용량으로 증설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3. 해녀회와 시민들에게 행해지는 공사방해가처분 인용 집행 청구 및 고소고발을 취하한다.

4. 삼양처리분구의 하수 유입 여부와 하수처리 방류수의 수질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민관합동 감시단을 구성한다.

5. 세계자연유산본부에서 수행하고 있는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미래 변형예측 연구 용역"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주민 추천 자문위원 수를 동수로 구성한다.

6. 해녀회와의 협의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공사 진행은 멈춘다.

7. 협의된 내용을 구속력 있는 문서로 남긴다.

해녀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동부하수처리장이 관할하는 구좌읍과 조천읍 이외에 삼양 등 도시 지역 하수는 맡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오영훈 도지사는 "제주시 동지역에 위치한 삼양처리분구를 월정처리구역으로 전환하는 기본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환경부에 제출하였고 승인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변경 계획에는 동부하수처리장 3차, 4차 증설계획 전면 백지화, 제주시 동지역에 신설계획을 반영하였다"고 답했다.

분산화란 무엇인가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 가로놓인 해녀들의 테왁들. 왼쪽 현수막에 "하수처리시설을 소규모 분산형으로"라고 적혀 있다. / 사진=엄문희 제공

"동부하수처리장의 증설은 안 된다. 따라서 분산화해야 한다."

월정리 해녀회를 비롯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진영의 주장은 이러하다. 여기서 분산화란 무엇인가. 소규모 하수처리장을 여러 곳에 만들어 하수를 되도록 해당 지역에서 처리하자는 것이다. 애초 동부하수처리장의 하수 처리량이 크게 늘어난 까닭은 광역하수시설을 통해 넓은 지역의 하수가 모여들었기 때문이고, 두 배 규모 증설 계획도 삼양과 화북 지역의 5만 인구가 배출하는 하수를 이곳에서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도시 지역의 환경 부담을 농어촌인 월정리에 지우는 계획에 반발이 일어나고 분산화의 요구가 터져나온 것이다.

그런데 해녀회의 이러한 요구사항에 대한 도지사의 약속사항을 단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앞으로 분산화하겠다. 다만 동부하수처리장은 2차 증설은 예정대로 하고 3, 4차 증설 계획은 백지화한다.'

따라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운동의 성과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예정대로 증설하게 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며, '분산화 방향의 하수 정책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만일 "동부하수처리장의 증설은 안 된다. 따라서 분산화해야 한다"에서 '증설 불가'가 목적이고, '분산화'가 그 방법이라면 목적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월정리에서의) 증설 불가'가 목적이고, '(제주도에서의) 분산화'가 지향이라면 분명한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다만 그 성취를 실제로 현실화시키는 것은 월정리만의 몫이 아니다.

분산화 정책과 오염자 부담 원칙

소규모 분산화 정책은 과연 바람직한 대안일까. 장점으로는 이송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운영 비용과 함께 장거리 관로에서 하수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하수처리장 신설을 위한 입지를 물색하기가 쉽지 않고, 신설에 따른 초기 비용도 큰 부담이다.

다만 여기서는 소규모 분산화가 하수 정책으로서 지니는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이 대안이 '오염자 부담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이 원칙은 크게 두 가지 의의를 갖는다.

① 공정성: 오염자가 오염으로 인한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그 비용이 타 지역의 성원에게 전가되는 것을 방지한다.

② 오염 감소: 오염 물질을 발생시키는 지역에서 그것을 스스로 처리하게 함으로써 오염자의 환경민감도를 제고해 오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유도한다.

커먼즈 시각에서 보자면, 분산화는 커먼즈의 관리 원리와 겹치는 측면이 있다. 분산화는 오염 발생에 대한 책임을 오염자에게 부과함으로써 지속가능한 환경 관리의 노력을 촉발할 수 있는데, 거기서 핵심은 소규모 단위의 '경계' 설정이다. 이 경우 오염자 부담 원칙을 보다 분명히 '발생지 처리 원칙'이라고 옮겨 쓸 수 있다.

공동어장이나 공동목장 같은 지역의 커먼즈도 제대로 보존하려면 명확한 '경계'가 관건이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커먼즈의 경계만이 아니라 이용자의 경계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커먼즈 관리에 기여한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커먼즈를 불합리하게 향유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이용자 집단의 경계가 명확하고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이용자들 사이에서 커먼즈를 매개로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해진다. 그것은 커먼즈를 지켜내려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나아가 커먼즈의 경계가 뚜렷해야 경계 내에서 행위의 결과가 되도록 분명해져 커먼즈를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분산화를 통해 하수를 일정한 경계 내의 발생지에서 처리한다면 오염물을 매개로 하여 오염자가 자신들의 책임임을 의식할 가능성이 커지며, 이렇게 오염 행위로 인한 부정적 외부 비용을 내부화해야 오염을 줄이려는 유인을 만들 수 있다. 이로써 오염자 부담의 원칙은 환경을 이용하는 혜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공평하게 나눠갖는 환경정의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정치권도 의식하는 분산화론

동부하수처리장이 위치한 월정리 연안과 앞바다. / 사진=임형묵 제공<br>
동부하수처리장이 위치한 월정리 연안과 앞바다. / 사진=임형묵 제공

2022년 9월 19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송창권 도의원은 "삼양·화북에서 나오는 하수는 펌프장을 거쳐 도두로 온다. 펌프장 운영에 따른 전기요금만 한해 수십억원이 든다"며 제주시 공공하수처리시설 분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오영훈 도지사는 "환경기초시설은 분산이 기본 방향이 돼야 한다"고 공감을 표했다.

2023년 6월5일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은 함께 "제주도는 하수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라"고 촉구하며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지구는 한정적이다. 특히 섬인 제주도는 그 한계가 우리 생활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물과 땅과 바다와 각종 폐기물은 서로 순환하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이미 제주의 땅과 바다는 인간의 도를 넘은 개발과 착취로 몸살을 앓고 있고 그 결과는 도민들의 삶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 이제는 하수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하수처리 용량을 늘이기 전에 기존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 하수 수요 관리에서 핵심은 양적 관광 중심에서 질적 관광으로의 전환과 대규모 개발에 대한 엄격한 규제이다."

정치권에서도 등장한 분산화론은 단지 하수처리장을 많이 짓자는 주장이 아니다. 하수 처리에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여 기존의 물 수요를 지속가능하도록 관리하자는 것이다.

제주도의 하수처리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제주도의 지하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도 수자원에서 지하수의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얼마전인 6월8일, 제주도정은 이대로라면 2030년 무렵 농업용수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해 수자원 이용·관리체계 개선과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수자원관리종합계획을 고시했다.

분산화는 '하수처리장을 많이 지어 발생 지역에서 하수를 처리하자'만이 아니라 '그로써 되도록 발생하는 하수의 양을 줄이자'라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있다. 따라서 하수정책이자 환경정책이며, 도시정책이다.

월정리가 건넨 과제를 이제 제주도가 받을 차례

동부하수처리장 문제로 월정리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으며,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주사회는 여러 환경 갈등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얻는 것도 있었다. 최근 일만 보더라도 송악산 유원지 건설 계획을 끝내 막아낸 활동은 '외자 유치를 통한 무분별한 개발을 이제는 멈추자', 선흘2리 동물테마파크 건설 저지 노력은 '제주도 생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동료시민들에게 보냈다. 끈질긴 제2공항 반대 운동을 거치며 '환경수용력'이 제주도 환경담론의 주요 논점으로 부상했고, 비자림로 확장을 막아내려던 시민들의 노력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어떤 개발은 막아냈고, 어떤 개발은 막아내지 못했으며, 어떤 개발은 진행 중이다. 다만 개발 저지 운동이 지니는 가치는 결국 막아냈는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못 막아냈다고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노력들로 제주도의 생태 감각과 환경 담론은 점차 풍부해질 수 있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지난 운동도 도래하는 이후의 운동에 실천의 참조점이 되었다. 지난 운동은 이후 운동에 계승되고, 이후 운동은 지난 운동을 되살린다.

그렇다면, 월정리의 지금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게 될 것인가. 월정리는 제주도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지만, 광역하수시설을 통해 제주도 차원의 문제가 월정리로 모여들었다. 복잡한 월정리 문제(1화)는 '전가의 사회구조'(2화)와 '마을 내 위계구조'(5화)를 드러냈으며, '세계유산 보존을 위한 중층적 거버넌스'(3화),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른 하수 정책'(7화) 마련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앞바다를 삶터로 삼아온 해녀들의 억척스러운 싸움(6화)은 지하(4화)와 바다(5화), 즉 우리의 근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의식하게 했다.

월정리는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제주도에 소중한 사고와 실천의 과제를 건넸다.

이제 제주도가 받을 차례이다. 


엄문희 님이 월정리 싸움에 대해 처음 알려주었다.
해녀분들의 노숙투쟁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김은아 님과 컨테이너 안에서 대화하며 연재를 궁리했다.
'월정리 용천동굴을 지키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문장을 만들었다.
월정리를 지키려는 이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끝]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물음을 위한 물음』, 『광장이 되는 시간』,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여행의 사고』,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썼다. '지키는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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