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괸당] (2) 아이들의 마음을 위해 손 잡은 어른들

지금 제주에서는 주민 주도의 일상 속 사회혁신이 진행 중이다. 꽉 막혀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 제주시 원도심에서는 소통과 협력, 연결과 확산이 되면서 ‘새로운 괸당’이 탄생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와 함께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준 협력의 사례를 세 차례에 나눠 조명한다. / 편집자

위기의 초등학교 교실을 구한 어른들

교직 경력 30년의 제주남초등학교 이봉화 교감에게 2022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어느 날 저학년 학급을 담당하던 한 교사가 이 교감을 찾아왔다. 교실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SOS였다. 코로나19로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사회화 과정에서 소중한 시기를 단절된 상태로 보낸 게 원인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따뜻한 보살핌이 어려워진 가정이 생기고, 학교에서도 단절된 분위기가 이어지자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자기표현을 어려워하거나, 공격적이거나, 혹은 너무 눈치를 보느라 학교생활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담임선생님 혼자 감당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자세히 상황을 살펴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심리정서적 지원이 시급했다.

실현가능한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이 교감에게 문득 한 곳이 떠올랐다. 학교와 가까운 제주시 원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제주시소통협력센터였다. 이 교감은 절박한 마음에 전화를 건 뒤 상황을 설명했다.

사흘 뒤 답이 왔다. “너무나도 중요한 아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학교와 제주시교육지원청,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교육협동조합 사람과 제주시소통협력센터 관계자들이 만났다. 

“아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부모님이 참여하지 않는 한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기에 학부모님들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하루 수입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지원을 검토해주기로 했습니다. 심리상담 전문가님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보겠다고 했고,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는 공간과 함께 정서놀이교육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각각이 갖고 있는 자원들이 한마음이 돼 역할을 나눈 겁니다.”(이봉화 교감)

제주남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서놀이교육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제주남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서놀이교육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학교에서 이런 부분을 생각해서 제안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가웠어요. 저희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오케이 했고, 그렇다면 재단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같이 했던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이 잘 되려면 가장 중요한 건 아이도 부모도 즐겁게 계속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큰 금액은 아니지만 장학금 지원을 하는 일이었습니다.”(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성경 팀장)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급 내 정서놀이교육과,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학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감정과 표현 활동을 했고, 부모는 애착과 소통을 주제로 경험을 나누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서로 교감을 나누는 시간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변화라는 게 단기적으로 표면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한 작은 변화들은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어요. 자기를 전혀 표현하지 않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신을 표현하게 되고, ‘야! 너!’ 이런 식으로 말하던 아이가 순화된 부드러운 표현으로 부탁하는 모습도 있었어요. 또 아이들이 집에서 엄마아빠에게 느꼈던 것, 친구들에게 느꼈던 감정과 마음을 얘기하려 하게 됐습니다. 정서적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 거죠.”(이봉화 교감)

“한 아버지의 소감이 기억나요. ‘나는 내 아이를 정말 몰랐던 것 같다. 가정에서의 아이와 또래관계에서의 아이의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 지를 알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다른 부모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요.”(이성경 팀장)

이번 돌봄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점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해야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는 것. ⓒ제주의소리
이번 돌봄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점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해야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는 것. ⓒ제주의소리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건강한 변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지금 시대에 어떻게 구현할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연결과 시도에 열린 마음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다.

“정서놀이교육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또 제주시소통협력센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연결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고, 그 연결 속에서 각자가 갖고있는 자원들을 최대한 발현해주셨던 것 같아요. 함께하는 것의 힘, 그리고 함께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준 역할, 함께하는 분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이봉화 교감)

이번 경험은 또 다른 일상 속 문제 해결을 위한 동기부여가 됐다. 이봉화 교감은 학교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심리적인 문제, 특히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이 자존감을 갖고 제주에서 생활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심하고 있다. 이성경 팀장은 온 마을이 함께 힘을 모은 돌봄 모델을 경험하면서 서로의 아이를 존중하며 이뤄지는 돌봄이 확산되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협력을 통한 돌봄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어느새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성경 팀장에게는 이런 변화가 각별하다.

“저는 원도심에서 태어났고 제주남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원도심이 가장 번화할 때 여기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지금 원도심이 다시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다시 찾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반가워요. 앞으로 이런 변화를 하는데 저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주남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서놀이교육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제주남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정서놀이교육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 사람과 사회를 잇는 플랫폼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연결과 협력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자원 연계 협력사업이다.

지역사회 내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 지자체, 주민, 학회 등 여러 민간·공공의 단체가 협업하는 판을 마련한 것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이어주는 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추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돌봄, 교통안전, 실패박람회, 습지 보전, 외국 이주민의 정착기반 마련 등 다양한 주제로 공동 아젠다를 발굴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또 가정 밖 청소년·청년 자립지원, 건강한 먹거리 기반 커뮤니티 돌봄, 공유이동수단을 활용한 대안이동실험, 이주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온·오프라인 플랫폼 구축 등 전문성을 갖춘 파트너와 협력해 직접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민관협력 기획형 리빙랩도 진행 중이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행정안전부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조성 및 운영사업’에 2019년 제주시가 선정되면서 사단법인 행복나눔제주공동체가 수탁 운영하고 있다. 제주시 관덕로 44(일도일동)에 있다.

* 새로운 괸당 기획 취재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취재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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