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괸당] (3) 일상실험으로 자리잡은 제주 혁신 생태계

지금 제주에서는 주민 주도의 일상 속 사회혁신이 진행 중이다. 꽉 막혀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 제주시 원도심에서는 소통과 협력, 연결과 확산이 되면서 ‘새로운 괸당’이 탄생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와 함께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준 협력의 사례를 세 차례에 나눠 조명한다. / 편집자

예비사회적기업 랄라고고의 구성원들. 조인래 대표(맨 오른쪽)는 모두의 실험실에 입주하면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기업과 단체들의 협업이 이뤄지는 것을 강점으로 꼽았다. ⓒ제주의소리
예비사회적기업 랄라고고의 구성원들. 조인래 대표(맨 오른쪽)는 모두의 실험실에 입주하면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기업과 단체들의 협업이 이뤄지는 것을 강점으로 꼽았다. ⓒ제주의소리

예비사회적기업 랄라고고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지닌 사람들의 시도를 뒷받침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제주생활실험에 참여했다. 그들은 NFT(대체 불가능 토큰)와 환경을 함께 떠올렸다. 봉사활동을 하면 가상의 디지털 토큰을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주운 뒤 인증을 받으면 보상을 얻는 방식이다.

“누구를 도우면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가 나누는 게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고 있구나’라는 피드백과 리액션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탈중앙화된 의사결정 구조에서,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NFT를 생각한 거죠. 이 NFT를 통해 지역상권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소비자도 기업도 좋은 구조이지 않을까 해서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잘되면 더 나아가 탈중앙화된 의사결정조직 다오(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도입해 기업이 영세한 제주에 있는 수많은 크리에이터 들에게 일종의 프로젝트 기반을 제공하려 했어요. 프로젝트가 잘 됐을 때 기여도에 따라서 보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랄라고고 조인래 대표)

설문대할망 신화를 차용한 세계관을 만들고, 제주의 노루와 돌고래를 형상화한 NFT 카드를 만들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제 작동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반응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 스스로 실패였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실패의 과정은 새로운 자산이 됐다. NFT 커뮤니티 내에서는 제주의 작은 기업이 만들어낸 시도로 주목받으면서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의 도전 과정과 핵심 내용들은 센터에 아카이빙 돼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다.

랄라고고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생활실험 프로젝트 '2022 제주생활실험'에서 NFT를 통한 쓰레기 줄이기 생활화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랄라고고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생활실험 프로젝트 '2022 제주생활실험'에서 NFT를 통한 쓰레기 줄이기 생활화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다른 제주생활실험 팀들과 교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생활실험 참가자들과 ‘함께 모여서 놀아보자’는 생각에 뭉쳤는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들은 이들과 함께 가까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제주소통협력센터 모두의 실험실에 입주하게 됐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 단체들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협업을 진행하게 됐다.  

조 대표는 이 곳에서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협력, 공모사업들을 진행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 곳에서 이 분들과 함께 하면 ‘재미있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제주생활실험의 심사 과정이 기억나요. 다른 관의 사업 심사와 달리 진심으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걱정해주며, 이해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 진행을 도우며 결과까지 챙겨주는 게 정말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모습(흰색 건물). ⓒ제주의소리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모습(흰색 건물). ⓒ제주의소리

공동체 혁신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방식과 동료의 역할을 맡은 매니저와 담당자들의 동행자로서의 역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은 ‘문제해결 여부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와 노력 자체를 장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철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고 서로 존중하는 조직 문화와 협업 방식이 ‘함께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 함께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정현정 제주시소통협력센터 매니저는 “기관에서 금액을 지원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업을 짜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맞춰서 사업을 진행하는 게 핵심”이라며 “단순 지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먼저 물어보고 확인해보는 과정을 함께 가고 있다”고 말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활동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2020년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 입사한 이소현 매니저는 그들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요한 건 태도라고 생각해요. 마주했던 주민들이 단순한 지원을 바라는 게 아니라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는 것을 바라셨어요. 또 파트너로서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특히 초창기부터 관찰-실험-협력-공유라는 단계를 체계화해서 포지셔닝을 잘 해둔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다른 분들께 제주시소통협력센터를 설명할 때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지역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공간을 기반으로 지역의 다양한 단체나 커뮤니티가 협력될 수 있게 하는 곳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 곳에서 경험이 좋아서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곳에서 관련된 시도를 더 해본다거나, 사회혁신에 참여한다거나, 업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참 유의미한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4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린 코리아커피위크는 상업성과 경쟁 대신 영감을 공유하는 축제의 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층 오프라운지를 비롯해 세미나, 모임 등 다양한 유형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 구성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제주의소리
지난 4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린 코리아커피위크는 상업성과 경쟁 대신 영감을 공유하는 축제의 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1층 오프라운지를 비롯해 세미나, 모임 등 다양한 유형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 구성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잡은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다양한 이들의 네트워크를 맺는 거점 역할을 한다. 강현자 매니저는 센터의 역할을 “주민 주도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협력을 위해 중매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주민들에게 센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내준 공간기반 열린모임지원사업은 공간을 활용해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킨 사례다. 참가자들이 사람들이 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공간을 함께 채워가는 참여자로서의 경험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는 과거 산업은행, 미래에셋대우 등 은행사 사옥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운영구상과 사업추진 후에 설계와 리모델링이 진행됐기 때문에 촘촘하게 쓰임새를 극대화한 공간 구성이 가능했다. 

지하에 있는 창작자들을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 ㅈㅈㅈ(제주의 지속가능한 제작소)에는 다양한 제조 관련 활동이 가능하도록 구성됐으며, 1층에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오픈라운지인 질문도서관이 마련돼있다. 2층에 위치한 개방형 놀이공간인 소소소는 도심 속 어린이 친화공간으로 부모들의 인기를 끌었다. 3층에는 공유문화를 지향하는 개인들이 모여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과 협업이 이뤄지는 개방형 사무실이 마련돼 있다. 입주기업·단체를 위해 구획형 사무실과 공유주방, 세미나실, 회의실, 옥상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 새로운 괸당 기획 취재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취재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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