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7) 다양성을 아우르는 연계형 사회적 자본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지방자치에 성공한 이탈리아 지역들의 비결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데이비드 퍼트넘(Robert David Putnam)은 1970년대에 시작된 이탈리아 지방자치와 지역의 변화를 연구하였다. 새로 구성된 20여개의 지방정부는 재정과 권한이 비슷한 상황에서 출범하였다. 퍼트넘은 효율성, 투명성, 시민 참여도 등 지방정부의 성과를 20년간 측정한 결과, 북부는 전체적으로 좋은 성과를, 남부는 나쁜 성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패를 가른 원인을 분석했더니, 교육 수준, 정당 등 정치제도, 경제적 수준과 지방정부의 성과와의 연관성이 높지 않았다. 

그림 : 이탈리아 2019년 지역별 1인당 GDP.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력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출처 : 위키백과
그림 : 이탈리아 2019년 지역별 1인당 GDP.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력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출처 : 위키백과

연관성이 가장 높은 것은 시민 공동체의 활성화 정도였다. 이탈리아 북부는 전통적으로 마을,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시민공동체가 발달했다. 시민공동체는 사람 관계의 신뢰를 높여,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했다. 이는 경제적 협력과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반면, 남부 이탈리아는 과거 왕정과 봉건적 지배 질서 영향으로 수직적인 사회적 관계가 발달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져, 경제적 협력과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림 : 로버트 R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관련 대표 저서들. 출처 : 교보문고
그림 : 로버트 R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관련 대표 저서들. 출처 : 교보문고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우호적 사회적 관계, 서로 필요할 때 돕는 호혜성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의미로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퍼트넘은 이탈리아 연구를 통해 사회적 자본이 출생률, 아동 복지,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범죄로 부터의 안전, 경제적 번영, 민주주의 등 삶의 질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자본은 인간을 행복하게, 사회를 번영하게 만드는 비밀이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계형 사회적 자본

그림 : 사회적 네트워크 속성. 혈연 등의 결속형 사회적 자본과 문화 동호회 등의 연계형 사회적 자본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그림 : 사회적 네트워크 속성. 혈연 등의 결속형 사회적 자본과 문화 동호회 등의 연계형 사회적 자본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사회적 자본은 그 속성에 따라 결속형(bonding)과 연계형(bridging)으로 분류한다. 결속형 사회적 자본은 가족, 친구, 지역사회, 종교 등 비슷한 정체성과 강한 유대감을 가진 집단 내에서의 신뢰와 협력을 말한다. 이는 그룹 내의 강한 연결(strong ties)을 특징으로 한다. 결속형 사회적 자본은 정서적 친밀감과 안정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배타성으로 인해 집단주의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반면 연계형 사회적 자본은 동호회, SNS, 직장 생활에서, 성별·세대·인종 등 다른 다양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결과 협력을 말한다. 다양성을 전제로 한 서로 다른 사회적 그룹 간의 느슨하고 약한 연결(weak ties)을 특징으로 한다. 약한 연결은 모든 사람에 대한 일반화되고 보편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연계형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연계형 사회적 자본은 다양한 정보와 자원을 연계해 새로운 혁신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획득한다. 안정형 애착의 아이들은 부모를 안전기지 삼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같은 방식으로 사람은 결속형 사회적 자본으로 정서적 안정성과 협력 능력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안전기지 삼아 더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협력을 형성한다. 인간은 지연, 학연, 혈연의 결속형 사회적 자본 환경에서 성장한다. 성인이 되면 영역을 확장해 다양하고 느슨한 연계형 사회적 자본 환경에서 활동한다. 결속형과 연계형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변화가 빠르고, 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결속형보다 연계형이 더 중요하다. 결속형 사회적 자본에서 연계형 사회적 자본으로 확장할 때, 사회적 자본의 진가가 발휘된다. 

수평적인 약한 연결의 힘

그림 :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는 약한 연결을 통해서 얻게 된다. 약한 연결은 경계인에 의해 연결된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그림 :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는 약한 연결을 통해서 얻게 된다. 약한 연결은 경계인에 의해 연결된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연계형 사회적 자본과 약한 연결이 가지는 유익함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 (Mark Granovetter)는 보스턴 근교에 거주하는 직장인들의 구직 과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가끔 만나는 느슨한 약한 연결을 통해 중요한 구직 정보를 얻을 확률이 높았다. 약한 연결은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약한 연결은 양쪽 집단으로부터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경계인에 의해서 활성화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경계인의 역할이 중요해 지는 이유이다.

수직적인 강한 연결의 부작용

결속형 사회적 자본과 수직적인 문화가 결합될 경우에는 배타적인 집단주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 배타적인 집단주의는 혐오와 갈등을 조장한다. 수직적인 강한 연결이 권력과 연계될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게 된다.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예산과 공직이 권력자의 사적인 인연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된다.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 신뢰는 떨어지게 된다. 우리 사회는 여는 야를 향해, 야는 여를 향해 서로 카르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를 가장 낙후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 수준에 대한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적 자본의 부족과 불평등의 확대

사회적 자본은 지역, 국가의 경쟁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퍼트넘은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세습되는 지를 고찰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불평등을 바라볼 때, 재화의 부족이나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둔 해결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청년 문제, 저출생 문제,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제적 지원 중심의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퍼트넘은 경제적 빈곤보다 사회적 자본의 부족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계층에 따라 학습, 동기부여,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차이는 학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사회과 사람에 대한 낮은 신뢰지수로 연결된다. 결국 우호적 사회적 관계와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해진다. 그 결과 빈곤이 세습된다. 빈곤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는 재화의 재분배뿐만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는 역량과 사회적 자본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전통적인 빈곤 개념에 도전하며 빈곤 문제를 역량(capability)문제로 접근한다. 빈곤은 단순히 물질적 자원의 결핍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 즉 ‘역량’에 대한 기회가 박탈당한 상태를 빈곤으로 해석한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단기적인 생계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역량을 향상시켜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들은 시민들의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고 실행해야 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고기가 아니라 누구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 일자리를 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자리를 개척하는 역량을 주어야 한다. 역량을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교육과 공공 보건 서비스, 사회적 자본, 민주주의 같은 비물질적 자원이 더 중요하다. 

아마티아 센과 함께 '역량접근법'을 주장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역량의 창조’ 라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관계역량‘를 제시한다. 관계역량는 다른 역량들을 뒷받침해주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관계역량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차별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느끼는 사회적 기반도 중요하다. 역량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 전달과 수동적 학습으로 성장할 수 없다. 역량은 신뢰와 존중을 제공하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 모든 혁신 교육들이 좋은 동료, 멘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기반 학습으로 변화하는 이유이다. 

애착은 뿌리, 물질적 지원은 흙, 사회적 자본은 자양분

그림 : 필자가 생각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과 구성요소. 이미지출처 : Bing image creator
그림 : 필자가 생각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과 구성요소. 이미지출처 : Bing image creator

복잡적응계에서 혁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물, 자양분, 햇살을 흡수하며 성장한다.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을 토양이라고 한다면, 애착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한 물, 자양분, 햇살이다. 나무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앞으로 사람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잎, 줄기, 꽃,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차례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서론 : 복잡적응계에서 혁신을 만드는 과정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2) 영웅은 없다. 다양하고 똑똑한 우리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3) 무질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질서

2. 창조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회

김종현의 ‘다른 내일’ (4)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 
김종현의 ‘다른 내일’ (5)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애착’
김종현의 '다른 내일' (6) 애착과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
김종현의 '다른 내일' (7) 애착은 뿌리, 물질적 지원은 흙, 사회적 자본은 자양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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