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혐의 인정한 재판부 “제3자 외부 침입 가능성 없어”

소위 ‘제주 바둑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의 피고인이 중형에 처해졌다. 재판부는 직접증거가 없는 이번 사건 범행 현장에서 외부 침입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유일하게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던 피고인을 범인으로 봤다. 

1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진재경 부장)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69)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하면서 5년간의 보호관찰 등을 함께 명령했다. 검찰이 요청한 부착명령은 기각했다. 

A씨는 2023년 7월 서귀포시 보목동 자신의 주거지에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바둑을 두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피해자가 사망해 있었고, 외부 침입 가능성 등을 제기하면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해 왔다. 또 높은 혈중알코올농도로 인해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주장했다. 

부검 결과, 사망 당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421%에 달했다. 0.08%가 넘은 상태로 운전하면 면허가 취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피해자가 ‘피살’됐는지와 ‘범인’이 누군인지다. 

혈중알코올농도만으로도 치사량인 상황에서 피해자는 목과 가슴 등 부위에 9차례에 걸쳐 흉기에 찔렸다. 

피해자 신체에서는 별도의 저항흔조차 발견되지 않았고, 싱크대에 기대 앉아있는 상태에서 피를 흘리다 숨졌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또 전문가들은 범인이 흉기로 피해자를 서서히 찔러 살해했다고도 분석했다. 

재판부는 만취한 피해자가 흉기에 찔리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를 받아들였다.

또 A씨 거주지 화장실과 싱크대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확인됐는데, 이를 범인이 피해자의 혈흔을 씻어낸 흔적으로 봤다. 

피해자가 피살됐다는 사실이 인정한 재판부는 ‘범인’은 합리적 의심 없이 A씨라고 판단했다. 

A씨의 거주지 일부분을 비추는 CCTV가 있는데, A씨와 피해자 말고 찍힌 장면 등은 없다. 

제3자가 머리카락이나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 제3자가 CCTV 등을 피해 거주지로 침입했을 가능성을 A씨 측이 주장한 이유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제3자가 범행했다면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등 계획이 우선돼야 하는데, 피해자는 우연찮게 피고인(A씨) 집을 찾은 날 피살됐다. 제3자가 개입했다면 같은 공간에 있던 피고인만 살려둘 가능성이 극히 낮고, 피고인 집안에 있던 물건 등이 사라진 흔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만에 하나 피해자에게 원한이 있는 제3자가 범행을 계획했다면 A씨의 거주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주 다니는 장소에서 범행했을 것이고, 강도 등의 범죄라면 피고인만 살려둔 이유 등의 상황은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장인 진재경 부장판사는 “피고인(A씨)의 거주지는 옆방과 방음이 잘되지 않는데, 이웃 중 한명은 ‘죽이겠다’는 피고인의 목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거주지 문을 잠갔다. 또 피고인이 입던 옷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는데, 혈흔이 묻은 것이 아니라 혈흔이 피고인 옷에 튄 모습”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범행 장면 목격자나 CCTV 등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외부 침입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증거를 종합했을 때 피해자와 같이 있었던 피고인이 의심의 여지없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며 A씨를 징역 15년형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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