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간첩조작사건] 보안사 제주지부 ‘한라기업사’ 끌려가 폭행, 전기·물고문 

잔인하고도 끔찍한 7일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간 일주일 남짓한 기간,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으로 평생 가슴속 깊이 남은 후유증을 겪게 됐다. 

억울했지만 작정하고 간첩을 만들어 권력을 보위하겠다고 덤벼든 국가를 상대로 힘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평범한 국민은 ‘간첩’이 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강병선 씨 사건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했다. 

국군방첩사령부 기록, 신청인 및 참고인 조사, 강광보 사건 재심 공판기록 등 조사 결과 강병선 씨가 1986년 1월 24일부터 31일까지 총 7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된 사실이 확인된 것.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제72차 위원회에서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강병선 씨 사건인 ‘1986년 제주 보안부대에 의한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꾸준히 보도 중인 제주간첩조작사건 관련 김종민 제주4.3사건중앙위원회 위원이 연구책임을 맡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는 강병선 씨의 억울한 사연이 나타난다. 

[일주일만 송두리째 망가진 삶, ‘간첩조작 고문’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한라기업사’ 고문 제주간첩조작 피해자 ‘진실규명-명예회복’ 길 열려] 등 기사다.

강병선 씨는 10촌 형님인 ‘강광보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1986년 한라기업사에서 불법구금‧고문‧가혹 행위 등 피해를 겪었다. 형님인 강광보는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가 강제 송환된 이후 공안당국의 고문 끝에 허위자백한 간첩조작 피해자다.

강광보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으며, 지난 2017년 재심을 청구해 31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전국 처음으로 조작간첩을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로하는 기억 공간 ‘수상한 집’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병선 씨는 이 사건에 연루돼 끌려간 뒤 불법 구금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재심조차 신청할 수 없는 억울한 신세였다. 그냥 고문만 받고 훈계 방면된 것이다.

진화위는 강광보 씨의 재심공판 기록을 검토하던 중 한라기업사에서 조사를 받은 증인들의 진술 과정에서 폭행과 가혹 행위, 진술 강요 등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강병선 씨 역시 한라기업사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보안사령부의 제주지부인 한라기업사는 당시 ‘다녀오면 반병신 되는 곳’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는 옷 몸이 발가벗겨진 채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두드려 맞고 성기에 전기를 흘려보내거나 몸이 묶인 상태로 얼굴에 수건을 덮어 물을 붓는 등 고문을 겪었다고 했다.

그가 한라기업사에 끌려간 이유는 1968년 4월쯤부터 1976년 7월쯤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강제 송환된 기록 때문이었다. 10촌이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간첩이 됐는데, 공안당국이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완벽한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차지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강병선 씨가 일본에 있을 때 조총련계 친인척과 만난 뒤 북한의 우월성을 선전, 언동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강병선 씨는 일주일간 고문을 당한 뒤 허위자백했다. 그는 “쓰라는 대로 썼다. 뭐라고 썼는지도 잘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진정으로 쓴 거라면 지금도 기억할 텐데 거짓으로 쓴 거니까 생각도 안 난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진실규명’ 결정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피해자에 대해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강병선 씨가 진화위 조사를 청구할 수 있었던 것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역할이 컸다. 연구원들은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을 위해 피해자와 유가족이 진실규명 개시 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피해 사실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또 보고서를 진화위 관계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과 자료를 모은 덕분에 진화위는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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