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형무소 순례] (2) 유족들이 서울고등법원에 달려간 이유는?

 

▲ 17일 마포형무소 터에서 제를 올리고 있는 제주4.3 행불인협의회. 원래 형무소가 있던 자리에는 법원과 검찰청 건물이 들어섰다. ⓒ 제주의소리

유복자(遺腹子). 세상의 빛을 만나기도 전 비극을 맞이해야 했던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기는 힘들다. 특히 제주4.3은 수많은 유복자들을 낳았다. 김성도(68)씨도 그와 같은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방불명인협의회의 2박3일 전국 형무소 순례에 나선 김씨는 17일 오전 인천소년형무소에 닿자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4.3 당시 그의 아버지는 내란죄로 징역 20년을 받고 인천소년형무소까지 끌려왔다. 아버지의 나이 19살이었을 때다. 4.3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가 그랬듯 그의 아버지 역시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이 곳에 끌려왔다. 가족들은 시대의 희생양이 된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시큰하다.

모든 사건이 그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일어났다. 아버지는 끌려갔고, 어머니는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인천시 학익동에 위치했던 인천소년형무소에는 당시 1300여명의 수형자가 있었는데 4.3과 관련돼 끌려간 제주도민의 수는 360여명으로 추정된다.

인천소년형무소 터 앞에서 채비를 갖추고 절을 했다. 제를 올릴 때 주변을 스쳐갔던 행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봤다. 이제는 인천지방검찰청과 인천지방법원 건물이 솟아있어 과거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김씨는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안타깝다. 이곳에 오는 감회가 새롭다”며 “미성년자였고, 혐의도 없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관점에서 4.3 명예회복이 더더욱 중요한 게 아니겠냐”며 “어머니가 고생했던 세월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도 그랬을 것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홀로 당시에 겪었을 고충이야 추측키도 힘들다.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김씨는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하셨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만 어머니가 고생했던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마포형무소터를 방문한 강혁진(70)씨도 마찬가지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살던 그의 아버지는 무기징역 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로 끌려왔다. 하지만 이후 소식이 끊겼다.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유난히 건강했던 그의 아버지가 병고로 돌아갈 리는 없었을거라 그는 생각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이 더 막막한 이유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아버지가 마지막을 맞이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공간을 찾았다. 현재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검찰청이 들어서있다. 상전벽해다.

오늘 처음으로 이곳을 찾은 강씨는 “오늘 보니 너무 감회가 새롭다. 아버지가 그립다”며 “어머니가 고생하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자녀들, 손자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보냈을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터질 듯하다.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슬픈 눈빛은 왜 4.3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 17일 마포형무소 터에서 제를 올리고 있는 제주4.3 행불인협의회. 원래 형무소가 있던 자리에는 법원과 검찰청 건물이 들어섰다. ⓒ 제주의소리

계속되는 4.3흔들기 ‘언제쯤이면...’

 

서대문형무소터까지 참배를 끝낸 뒤 행불인협의회가 향한 곳은 서울고등법원. 이번엔 참배를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씨와 이선교 목사 등이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제주4.3사건 희생자결정 무효확인 청구 항소심이 열린 것. 마침 이 날이 선고일이었다.

원고측은 4.3중앙위원회 심사를 거친 희생자 중 63명에 대한 결정이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4.3희생자 재심사’와 맥을 같이 하는 얘기다. 그러나 이날도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들의 청구 자격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4.3흔들기에 사법기관이 또 다시 철퇴를 내리친 셈이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 안에 울려퍼지자 참관하고 있던 유족들은 참지못하고 박수를 힘껏 쳤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 이들은 기쁨을 참지 못했다. 당연한 결정이지만, 그래도 기쁘다고 말했다.

이중흥 행불인협의회장은 “당연히 기각돼야 옳다. 사실 애당초 말이 안되는 소송이었다”며 “항소심에서까지 승리하니 더 용기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곧바로 원고 측에서 상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판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4.3유족들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재판부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단체들은 과거에도 4.3희생자 무효확인 소송과 희생자 정보공개청구 등 각종 소송을 제기했지만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심판 등 6개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그러나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끊임없는 4.3 흔들기. 4.3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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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사건 희생자결정 무효확인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기각 판결이 내려지자 재판장을 찾았던 4.3유족들은 환호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유족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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