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多>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기 강판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10편을 무사히 넘어섰습니다. 편안한 소통을 위해 글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 형식의 입말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제주의소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질문을 남기시면 정성껏 취재해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연말까지 기획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소리多] (11)전농로-연삼로는 일본산 접목...토종은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앞 가로수 유일
벚꽃하면 전농로와 제주대학교 진입로, 연삼로 등이 먼저 떠오르시죠. 길게 뻗은 벚꽃 터널 속에서 눈처럼 내리는 꽃잎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럼 과연 이 나무들은 제주산 토종 왕벚나무일까요. 아쉽게도 아닙니다. 왕벚꽃축제가 열리는 전농로 나무는 일본에서 자란 왕벚나무를 접목한 후계목입니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죠. 그럼 왜 일본산이 제주의 가로수를 잠식하고 있는 걸까요. 제주의 역사를 보면 한결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1908년 4월12일 프랑스인 다케 신부가 한라산 관음사 부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1912년 베를린대학 쾨네 박사가 감정을 통해 이를 확인시켜 줬죠.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 박사도 1932년 4월 한라산 남쪽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발견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에 있던 암울한 시기였죠.
2001년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조경진 박사팀은 DNA 분석으로 원산지 논란을 잠식시켰습니다. 2014년에는 미국식물학회지에 제주 왕벚나무 원산지 논문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로수에도 토종 왕벚나무가 아닌 일본산 나무들이 심어지게 됐죠. 전농로는 1982년, 제주대 진입로는 1983년, 연삼로는 1993년에 각각 왕벚나무가 심어졌습니다.
제주에서 왕벚나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후입니다. 실제 정부는 1964년 제주시 봉개동에서 발견된 왕벚나무를 천연기념물 159호로 지정하기도 했죠.
토종 왕벚꽃 나무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증식작업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천연기념물은 보존이 원칙이어서 증식작업 등 연구 활동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구방향도 복원이 아닌 보존에 맞춰졌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노력으로 지금껏 한라산 일대에서 발견된 토종 왕벚나무는 모두 235그루입니다.
2016년 5월에는 제주시 봉개동 개오름 남동쪽에서 수령 265년의 왕벚나무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천연기념물 159호의 수령 200년을 훌쩍 넘는 역대 최고입니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왕벚나무를 포함한 벚나무의 보존을 위해 1990년대부터 자생 왕벚나무 노령목을 토대로 대량 증식기술을 개발했습니다.
2013년 이후에는 보존에서 보급으로 정책이 바뀝니다. 2015년부터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10ha에 왕벚나무 보급원을 조성하고 왕벚나무 3253본을 심었습니다.
보존원이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의 쇠퇴와 자연감소에 대비한 품종 보존 차원이라면 보급원은 우수품종의 증식을 통해 대중화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2015년 관음사의 한 토종 왕벚나무를 어미목으로 정하고 후계목을 가로수로 낙점했습니다. 이 나무는 위로 곧게 자라고 꽃도 화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나무들이 크면 실제 가로수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증식을 통해 가로수 묘목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최소 5년에서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토종 왕벚나무가 아직 가로수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거죠. 다만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입구에는 토종 왕벚나무가 유일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제주시를 기준으로 가로수 3만9790그루 중 왕벚나무는 27%인 1만1000여그루입니다. 이중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입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일본산 왕벚나무 가로수입니다.
토종 왕벚나무가 보급되면 제주땅 곳곳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토종 왕벚나무가 한라산 아래 삭막한 도심을 채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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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기자
new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