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지금도 울고 있다...아직도 풀지 못한 제주 3대 미제사건
피해자는 지금도 울고 있다...아직도 풀지 못한 제주 3대 미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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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多>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조기 강판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20편을 향해 순항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 글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 형식의 입말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제주의소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질문을 남기시면 정성껏 취재해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소리多](15) 2006년 소주방 여주인 피살-2007년 서귀포 주부 피살-2009년 보육교사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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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9년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동물사체실험과 섬유조각 분석, 디지털 포렌식 등 각종 과학수사를 동원해 수사에 나섰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까지 이끌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2009년 사건을 재구성하며 증거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피의자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수사는 계속 되겠지만 진실이 밝혀질지는 의문이네요.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행 수법이나 발견 장소 등을 보면 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작)과 흡사합니다. 피해자가 여성인 점, 발견 장소가 배수로 인 점이 눈에 띕니다.

이번 일로 미제사건 해결에 대한 도민들의 열망도 높아졌죠. 그래서 대표적인 제주의 미제사건을 소개합니다. 대상은 일명 태완이법으로 공소시효가 사라진 3대 미제사건입니다.

▲2006년 9월3일 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연쇄 살인 의혹 용의자 결국 증거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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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3일 오후 2시40분 제주시 건입동의 한 소주방에서 여주인이 흉기에 찔려 숨진채 발견됐다. 당시 여주인은 소주방 내부 주방에 쓰러져 있었다.
소주방 여주인인 한모(당시 52세)는 2006년 9월3일 오후 2시40분 제주시 건입동 자신의 식당 주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연락두절로 걱정이 돼 달려왔던 동생이 최초 발견자였죠.

당시 한씨는 엎드린 채로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그 위로 얇은 이불이 덮어져 있었습니다. 몸에는 수차례 흉기에 찔린 흔적이 역력했죠. 명백한 타살이었습니다.

소주방 위층에 가족이 살고 있었지만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소주방 홀에 술잔과 술병이 있고 출입문이 밖에서 잠긴 점을 이유로 면식범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수사 역시 평소 한씨를 알고 지낸 주변인을 상대로 진행됐습니다. 한씨의 휴대전화에 남은 27건의 통화기록을 분석하고 홀에 있던 술잔과 탁자에서 여러 지문도 확보했습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만 70여명에 달했습니다. 당일 행적을 추적하며 용의자를 압축했지만 범행 현장에서 나온 지문은 감식 불능이라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직접증거가 없었던 거죠.

수사가 한창이던 2006년 9월22일 제주시 삼도동의 한 카페에서 40대 여주인(당시 48세)이 살해되는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부검 결과 목졸림에 의한 사망이라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소주방 피살사건과 달리 수사는 활기를 띄었죠. 피해자의 손톱과 현장에서 범인의 DNA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결국 범인 A(당시 42세)씨를 붙잡았습니다.

경찰은 A씨의 연쇄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A씨가 두 여주인을 모두 죽였다는 의혹을 입증하지는 못했습니다. 

A씨는 삼도동 카페 사건으로만 기소되면서 건입동 소주방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았습니다. 당초 2021년 9월3일 공소시효(15년)가 끝나게 됐지만, 태완이법 시행으로 기한은 사라졌습니다. 

▲2007년 9월17일 서귀포 가정주부 피살사건...태풍 나리 내습에 정전 ‘증거 확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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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9월17일 오전 1시17분 서귀포시 동홍동의 한 식당 앞 골목길에서 40대 가정주부가 흉기에 찔러 숨진채 발견됐다. 당시 여성은 사진 속 나무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가정주부인 주모(당시 42세)씨는 2007년 9월17일 오전 1시17분 서귀포시 동홍동의 한 식당 앞 골목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씨는 2007년 9월16일 밤 동거남과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마트에서 장을 보기 위해 동문로터리에서 홀로 내렸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주씨는 정체불명의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가슴과 배를 수차례 찔렸습니다. 현장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길에 쓰러져 있는 주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죠,

주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출혈이 너무 심했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태풍이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2009년 9월16일 제주는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제주에서만 13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강력한 태풍이었죠.

경찰은 사건발생 시간을 전후해 주씨의 동선을 토대로 차량 조회를 시도했지만 폐쇄회로(CC)TV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정전으로 영상 자체가 녹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당시 태풍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 36개 지역에서 17만여 가구가 정전피해를 입었습니다. 정전으로 서귀포시내 과속카메라와 교통정보수집기, 방범용 CCTV가 먹통이 됐습니다.

통신기지국도 전파를 수집하지 못하면서 주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도 벽에 부딪쳤습니다. 도심 대부분이 암흑으로 변하면서 뚜렷한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씨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여성을 봤다는 제보가 한때 있었지만 범죄 현장과는 거리가 멀어 증거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2009년 2월8일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9년만에 피의자 된 40대 택시기사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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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2월8일 오후 1시50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고내오름 옆 농업용배수로에서 보육교사가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16일 유력 용의자를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18일 기각했다.
보육교사인 이모(당시 27)씨는 2009년 1월31일 저녁 제주시청에서 여고 동창생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월요일인 그해 2월2일 이씨가 출근하지 않자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엿새뒤인 2009년 2월8일 애월읍 고내리 고내봉 옆 배수로에서 이씨가 숨진채 발견됩니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인 40대 택시기사를 상대로 수사를 했지만 DNA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풀려난 택시기사는 이듬해 제주를 떠나 주변과의 연락을 끊고 강원도 등지에서 생활했습니다.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고 2015년에는 주민등록까지 말소됐습니다.

결국 2012년 6월 수사본부는 해체됩니다. 태완이법 시행으로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제주지방경찰청은 2016년 2월 장기미제사건팀을 신설하고 재수사에 나섭니다.

올해 3월에는 보육교사 살인사건 TF를 구성하고 9년 전 용의자에 대한 체포 작전에 나섭니다. 이를 위해 당시 수사기록을 모두 보강하고 과학수사를 통해 증거능력을 끌어올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미세증거물이었죠. 경찰은 초기 수사 당시 피의자의 택시 뒷좌석과 트렁크에서 피해여성이 입고 있던 무스탕의 섬유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피해여성의 오른쪽 무릎과 어깨 등에서도 피의자가 입었던 남방과 비슷한 섬유 조직을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섬유조각을 두 사람간 접촉이 있었다는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문제는 ‘동일’과 ‘일치’의 차이였습니다. 같은 재질의 옷이라도 기성복은 수천, 수만벌이 동시에 제작돼 양측에서 발견된 서로의 섬유조각이 일치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법원은 이 같은 이유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택시기사도 일관되게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경찰은 다시 증거와의 싸움에 직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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