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검증의 계절’을 맞고 있다.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제주정가에서 치열한 ‘후보 검증’이 시작됐다. 이로 인한 각종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 제주도지사 예비주자들 간 폭로전은 과열 양상까지 띠고 있다. 잇따른 의혹 제기와 해명,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도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후보 검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제주의소리>는 6.13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 6.13, 후보 톺아보기’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제주특별자치도호’의 선장을 뽑는 막중한 선거인 만큼 각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과 논란을 샅샅이 살펴보기로 했다. 특정 후보의 유·불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야·무소속 등 어떤 후보도 예외일 수 없다. 억지춘향식 기계적 균형도 지양한다. 눈앞에 닥친 쟁점 사안부터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후보검증을 위한 현미경을 들이댈 예정이다. [편집자 말]


[선택6.13, 후보 톺아보기] 4년 전 ‘신구범 합의추대’, “기회주의적 처신” vs "정략적 비방"

 2014년 4월21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예비후보였던 고희범-김우남-신구범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도지사 후보를 어떻게 선출할 것이냐를 놓고 힘겨루기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오전 8시쯤 시작된 회동은 이튿날 3시까지 이어졌다.

결론은 신구범 전 지사로의 ‘합의추대’였다. 전격적인 합의추대도 그렇거니와 결과 또한 항간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아름다운 합의추대’라고 포장했지만,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김우남-고희범 캠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원희룡의 등장과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원희룡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당시 3선 국회의원이던 김우남의 경쟁력이 가장 셌다.

2013년 12월28~29일 실시된 <제주매일>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김우남은 31.6%의 지지율로 새누리당 우근민(23.0%), 무소속 신구범(22.2%)을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며 선두를 달렸다. *표본수 2000명, 신뢰수준 95%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대세론을 서서히 굳혀갈 즈음 새누리당이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던 원희룡을 차출, 사실상 제주도지사 후보로 내리꽂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KCTV․한라일보가 (주)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4월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원희룡은 63.3%의 지지율로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12.0%), 고희범(9.7%), 신구범(5.8%) 세명의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블스코어 차이로 격차를 벌리며 상대를 압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적합도 조사에서는 김우남 37.2%, 고희범 26.0%, 신구범 22.0% 순이었다. *표본수 1000명,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참조.

게다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국민참여경선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도지사 후보를 선출하려던 계획도 틀어졌다. 원희룡으로 기운 여론을 국민참여경선이라는 대형이벤트를 통해 반전시킨다는 전략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 때 신구범 후보가 “(세월호 추모 분위기에서) 계획된 프로그램대로 나가면 도민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며 합의추대로 후보를 선출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누구로 합의추대할 것이냐를 놓고 밤샘 마라톤 협상을 벌인게 바로 2014년 4월21~22일이었다. 마라톤 협상의 결과물이 바로 ‘신구범으로의 합의추대’였던 것이다.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공당의 후보를 민주적 절차를 밟아 선출한 것도 아니고, 밀실에서 전격적으로 합의했다는 절차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어떤 기준에 의해 합의추대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당시 고충석 새정치민주연합 인재영입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에 “새누리당 원희룡 후보는 그나마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로 결정됐다. 그렇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후보는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합의추대했다. 더구나 신구범은 되고, 고희범․김우남은 안 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직격탄을 날린 뒤 인재영입위원장을 사퇴해버리고 만다.

사실 김우남 후보는 현역 의원이면서도 ‘사즉생’을 얘기하며 경선 완주 의사를 수차례 밝혔고, 고희범 후보는 4년전 선거 패배후 절치부심 설욕을 다짐했던 터.

그러던 그들이 땡볕에 나물 말라비틀어지듯 어이없이 하차하자, 다들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둘은 ‘아름다운 합의추대’라고만 말할 뿐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와 관련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보 ‘합의추대’ 과정에서 나의 투지 부족과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 결국 나의 동지들, 당원과 도민들에게 크나 큰 실망을 안긴 채 갚을 길 없는 마음의 빚만 남기고 말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을 쓴 시점은 고 전 사장이 김우남 캠프에 합류하기 전인 3월11일이다.

무엇보다 당내 후보적합도 조사에서 여전히 경쟁률 1위를 달리던 김우남 후보가 왜 발을 뺐는지에 대한 말들이 무성했다.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김 후보가 침몰하던 민주號를 버리고 혼자 탈출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돌았다.

수백명의 어린 목숨이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와중에 자신만 살자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에 빗댄 것이었다. 이게 바로 SNS와 관련 기사 댓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김선장론’의 요체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우남 예비후보는 <제주의소리>에 “국민참여경선 일정은 물론 투표 장소, 토론회 일정까지 모두 완료된 상태였다. 경선후보 등록서류를 들고 서울로 출발하려고 하던 중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며 “어떠한 정치행사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도당 공동위원장단과 3명의 후보 간 협의를 통한 합의추대 방식이 채택됐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1박2일 비공개 회동 결과에 대해서는 “저는 당연히 후보가 되겠다며 다른 후보들의 양보를 요청했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합의가 늦어지면서 민주당이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며 “저를 제외한 다수가 저는 국회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결국 다른 후보(신구범)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원과 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죄송함을 늘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서 ‘김선장’에 빗대어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정략적 비방”이라고 일축했다.

결국 당시 신구범 전 지사를 내세운 새정치민주연합(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 원희룡 후보에 ‘59.97% vs 34.53%’로 참패했다. 당원이 주인인 정당의 상향식 공천시스템을 ‘밀실 합의’로 무력화시킨 대가는 혹독했다.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참패를, 당원들에게는 크나 큰 실망을 안긴 이들의 이후 행보는 아리송한 구석이 많다.

우여곡절 끝에 당 간판으로 출전했던 신구범은 박근혜대통령 탄핵정국에서 태극기집회에 단골 참석하는가 하면 “제주4.3은 공산폭동”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등 ‘극우 인사’로 변모했고, 참패의 빌미를 제공했던 김우남-고희범은 4년 전 경쟁자에서 이번 도지사선거에서는 선수와 감독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4년 전 김우남 캠프의 책사였던 문대림은 당시 주군과 6.13본선 진출을 위한 공천티켓을 따내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