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이웃, 미등록 노동자] ① 농업 현장 뿌리내리는 이주노동자…농민들 "대안 없어 더 문제"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어느새 제주에도 1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쉬쉬하는 사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느덧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 현실이지만, 음지에 가려 여러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음지에 갇힌 이웃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 현실과 법 규제 사이의 괴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 읍면지역의 밭. 현장에는 모두 불법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 읍면지역의 밭. 현장에는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어느 중산간의 한적한 마을. 전날 내린 장맛비로 주변 밭에서는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이었다. 십여 명의 일꾼들은 컨테이너 박스에 담긴 농작물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일꾼들은 밭주인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모두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길을 따라 자동차로 1km쯤 달렸을까. 역시 수확 작업이 한창인 또 다른 밭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밭을 누비는 이들은 모두 비슷한 표정과 차림의 미등록 노동자들이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의 고통 때문인지,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과 차별 때문인지, 대부분 무표정하거나 짙은 슬픔이 배어나온다. 우울한 그늘이 그들 주변에 짙다. 

그러나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제주도내 읍‧면‧동 지역을 가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 현장이라면, 이미 곳곳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현실이다. 

제주 동·서‧남‧북쪽 지역은 물론 쪽파, 감자, 양파, 월동무 등 작물에 가릴 것 없이 농업 현장은 미등록 노동자들이 필수 인력이 됐다. 농민들은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농사도, 지역경제도 돌아가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대안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어렵게 용기를 낸 밭주인 김민성 씨(가명). 그는 최근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이 적발돼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했다. 불시에 이뤄진 시찰로 인해 십 수 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은 그대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됐고, 김 씨에게도 2000만원에 육박하는 벌금이 부과됐다. 

그러나 김 씨는 다음날 곧바로 새로운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중개인에게 연락을 취해야 했다. 모종을 키우는 작업이 멈춰서면 한 해 농사를 통째로 날려버릴 위기에 처한 터였다. 사실상 대안이 없었다고 토로한다.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오죽하면. 저라고 매일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불법체류자(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싶었겠습니까. 수천만 원 물어가면서 또 적발 당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싶겠습니까. 마땅히 인력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일자리가 없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농사를 하러 들어오지 않아요. 고향도 등지는 판국에 농사를 하러 이 외진 곳으로 들어온다고? 말도 안 되지."

힘든 농사일 특성상 어느 정도의 근력과 지구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아무리 구직난이어도 젊은 사람들은 힘든 농사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세태에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그러다보니 파종이든 수확이든 한창 바쁜 농번기에는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낮은 고령의 노인 인력이라도 구할 수만 있으면 감사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이 확연히 가중된 것도 사실이다.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 읍면지역의 밭. 현장에는 모두 불법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농작물 수확 작업이 한창인 제주 읍면지역의 밭. 현장에는 모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미등록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일당은 6만원 안팎. 내국인 노동자들은 그보다 높지만, 시간이 생명인 바쁜 농번기에도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려하고, 한다해도 만만치 않은 초과수당과 식대 등을 지출하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일쑤다. 마진을 남기기는커녕 일 년 농사짓고도 밑지는 일이 실제로 있으니 농사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낮은 임금'이 미등록 노동자들을 쓰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인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나 김 씨와 같은 농업 종사자들은 반드시 낮은 임금 때문에 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E-9 비자(비전문 취업비자)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방법도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순노무 분야 취업이 가능한 E-9 비자는 고용시장 정책 상 정부에 의해 매년 인원이 제한된다. 농업 규모에 따라 인력을 배정하게 되는데, 김 씨에게는 아무리 많아봐야 5~6명 내외 수준이다.

김 씨는 농사짓는 작물이 다양하기도 하고 경작 규모로 볼 때, 상시 고용인원이 평시 15명 내외가 필요하다고 한다. 농번기에는 더 늘어나 25명 수준이어야 하지만 E-9 비자만 믿고 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김 씨는 '농사지어 먹고 살기 위해' 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열심히 농사만 지었을 뿐인데 자신도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한 업주로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라며 씁쓸해 했다. 

“나름 선행을 베풀며 살아왔습니다. 법을 어기며 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방법이 없더라고요. 당장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살 길이 막막하지, 일 할 사람은 없지, 그렇다고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했다고 해서 크게 남는 것도 아닌 거예요. 뭐가 잘못된 건지…”

김 씨의 밭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 10여명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숙식 해결도 김 씨의 몫이다. 사실상 함께 살고 있다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불법체류 노동자 고용이 적발될 때 만난 출입국·외국인청 사람들과도 얘기했어요. ‘이 순간에 잡아가지만, 난 또 (미등록 노동자를)데려다가 써야 한다’고. 저 절대로 오기로 하는거 아닙니다. 지금 농사 그만두면 완전히 파산해요. 먹고살려면 또 고용할 수밖에 없어요.”

처음 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할 때만 해도 사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김 씨. 말도 안 통하는 청년들이 외딴 시골에서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품으면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미등록 노동자들은 이러한 고민들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들 역시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온 이들이었다. 의사소통만 원활하지 않을 뿐, 워낙 일도 성실히 하고 능동적이란다. 이번 달은 수확도 괜찮고 해서 성과급 명목으로 웃돈을 얹어 줄 정도로 이들에 대한 신뢰가 컸다. 

“똑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사람이니까 간혹 말썽을 부리는 사람도 있겠죠. 그래도 마음을 주고받으면 문제될게 전혀 없었어요. 지난번 단속으로 강제송환될 때는 저도 마음이 너무 찡하고 아프더라고요. 저희 집사람은 그 친구를 껴안고 울며불며 난리도 아니었어요. 이산가족 저리가라였다니까요."

차를 돌려 30분 거리의 인근 다른 마을로 갔다. 여기서 만난 농민 박경홍(가명) 씨와의 대화는 김민성 씨와 나눈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도 유사한 고충을 쏟아냈다.

“이제 불법체류자 없이는 농촌은 아예 돌아가질 않아요. 5년 전만해도 인력 부르면 절반은 내국인, 절반은 외국인이었는데, 이제는 외국인이 80% 이상일 정도에요. 내국인은 고작 10~20%에 불과해요. 일이 몰리는 농번기가 아니면 내국인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어요.”

박 씨도 처음엔 중산간에 위치한 밭에서만 몰래몰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지만, 이젠 도로변 밭에서도 대놓고 미등록 노동자들을 고용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 됐다고 말한다.

“1차 산업을 육성하네, 어쩌네 하는데, 농사 어려운거 나라님들이 모르겠어요? 불법체류자들 데려다가 쓰는 거 모르겠어요? 알면서 묵인하는 거잖아요. 이걸 불법으로만 묶을 거냐는 거죠. 현실을 직시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바라본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아랑곳없이 때때로 하얀 이를 드러내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으로 격려하고 있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국만리 제주 땅에서 고국의 가족들을 대신할 유일한 힘이 동료일테니. 양 손에 쥐어진 콘테이너보다,  그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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