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표류하는 제주학생인권조례](하) 타 시도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교육청 뒷짐 논란

학생들의 보편적 인권을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생인권 조례안(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례의 본질과 취지보다 특정 쟁점으로 인한 갈등만 심화되는 양상이다.

제주학생인권조례 논란은 이 조례의 제정을 촉구하는 제주도민 1002명의 청원이 지난 3월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불거졌다. 청원 통과 여부를 다루는 순간부터 도의회 정문 앞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피켓시위가 벌어졌다.

제주도의회 고은실 의원(정의당)을 비롯한 22명의 의원들로부터 조례안이 발의되자 반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학부모 단체를 비롯해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제주도기독교교단협의회 등 교원단체와 종교단체 역시 조례 제정 반대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7월 도의회 교육위원회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학생인권조례의 상정을 보류시켰다.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학생인권 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의 역할을 담보하기 위한 교권보호조례, 학부모 교육활동 지원조례 등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반발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학교 현장에서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할 인권 문제를 다루는 조례 제정을 두고, 본질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토론이 아닌 진영논리에 따른 찬반 주장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조례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5424명의 서명을 받아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61개 단체가 참여한 공동성명을 통해 "제주학생인권조례는 정치적 목적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나쁜 조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 공동성명에는 제주지역 교원·학부모 단체도 포함됐지만, 전국적으로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다수 포함됐다.

조례에 찬성하는 단체들은 역시 진보적 성격을 띈 단체가 대다수다. 전교조 제주지부 등이 대표적이다. 찬성 진영 역시 하루 단위로 쪼개 성명·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여론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충남학생인권조례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충남지역 시민단체들. 충남은 천신만고 끝에 올해 6월 전국 5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사진=오마이뉴스
지난해 11월 충남학생인권조례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충남지역 시민단체들. 충남은 천신만고 끝에 올해 6월 전국 5번째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사진=오마이뉴스

◇ 같은 진통 겪은 타 시도교육청...반발 여론에 세 차례 고배까지

물론 이런 논란은 제주가 처음은 아니다. 제주에 앞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역들 모두 공통된 진통을 겪어왔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2010년대 초반에 조례를 제정한 경기도(2010년),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 모두 지역사회에서의 반발을 감내해야 했다.

가장 최근인 올해 6월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충청남도의 경우에도 최초 발의됐던 조례안이 상당 부분 손질되고 나서야 입법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반성문, 서약서 강요 금지' 조항이 제외됐고, '지문날인 서명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문항 역시 삭제됐다. 노동인권 교육과 현장실습 시 학교장의 책무 조항 등도 심사 과정에서 사라졌다. 학생인권센터와 학생인권옹호관을 두도록 했지만, 인원·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례 상에 수정된 내용은 모두 19가지다. 찬성 측에서도 '부실한 개악안'이라며 등을 돌릴 정도로 심한 내홍을 겪었다.

그나마 충남의 경우 천신만고 끝에라도 통과된 사례다. 경상남도의 경우엔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상남도는 2009년과 2012년에 이어 2019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시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수 만명에 이를 정도로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탓이다.

경남 지역은 청소년들이 직접 조례 발의과정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운동을 벌였지만, 결실은 맺지 못했다. 이 과정에 참여했던 청소년 운동가들이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 거야>라는 제목의 활동기록집을 펴며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경상남도 청소년 운동가들로 구성된 '조례만드는청소년들'이 펴낸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활동기록집. 경남지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다 세 차례나 고배를 마셨다. 사진=오마이뉴스
경상남도 청소년 운동가들로 구성된 '조례만드는청소년들'이 펴낸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활동기록집. 경남지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다 세 차례나 고배를 마셨다. 

◇ 학생인권조례 거리 둔 제주교육청, 선거공약과도 대치

찬반을 떠나 문제는 또 있다. 정작 지역 교육 현안을 가장 먼저 꿰차고 나가야 할 제주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이슈에 대해서는 꾸준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이석문 교육감이 주창했던 선거 공약과도 대치되는 모습이다. 

이 교육감은 후보 시절 공약실천계획을 통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민주적인 학교공동체 문화 확산'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세부 추진내용으로 '학교자치 역량 및 학생인권 신장 방안(학생인권조례 등) 추진'을 명시했다. 

하지만 임기가 시작된 2018년부터 현재까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제주도의회가 이를 주도하게 됐다. 진성성을 의심받는 대목이다. 

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서울시가 반대 목소리를 무릅쓰고 학생인권조례를 전격 도입한 2012년 당시 교육의원이었던 이 교육감은 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주도하기도 했던 점을 상기하면 고개를 더욱 갸웃거리게 하는 지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당선 직후 발표한 '제16대 제주도교육감 공약세부실천계획' 문서에는 공약 세부내용으로 학생인구너조례를 명시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당선 직후 발표한 '제16대 제주도교육감 공약세부실천계획' 문서에는 공약 세부내용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명시하고 있다.

주민발의 등으로 진행된 서울 등은 차치하더라도 전북, 광주, 경남의 경우 해당 시도교육감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고 주도하는 등 오히려 제주와는 큰 온도차를 보였다.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던 이 교육감은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17일 코로나 관련 '학사 운영방안'을 발표하던 중 취재진으로부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거듭된 질문이 나오고나서야 "학생인권조례는 가능하면 제정되는게 바람직하다"는 정도의 수세적 입장을 겨우 내놓았다.

이 교육감은 표류중인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의회에서 집행부가 갖고 있는 역할과 기능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혔을 때 의회에서의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이 있다"며 "교육청에서 입장을 내기보다는 의회에서의 과정을 보고, 조례가 제정되면 학교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것이 교육청의 역할"이라고 즉답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입장도 없는 것으로 봐야겠느냐는 거듭된 질문에는 "가능하면 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권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학생의 인권, 교직원의 인권, 학부모의 인권도 있다. 학생들을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그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고 피력했다.

교육감으로서 개인적인 입장을 피력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도교육청의 정책 방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은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지난 2012년 당시 교육의원이었던 이석문 현 제주도교육감의 주재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 방안 모색 토론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2년 당시 교육의원이었던 이석문 현 제주도교육감 주도로 열린 학생인권조례 제정 방안 모색 토론회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생인권 높아지면 교권 추락? 반대로 교권 높아지면 학생인권 추락하나?

학생인권조례의 발판을 마련하고 제정 10년째를 맞은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조례상의 내용이 이미 교육현장에 녹아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주학생인권조례 역시 경기도교육청에서 다져놓은 조례 내용을 준용한 사항이 많다.

경기도교육청 학생생활인권과 이창휘 학생인권옹호관은 "조례와 함께 초중등교육법이 바뀌며 체벌에 대한 내용을 허용하지 않도록 했고, 지역 내의 체별 사례가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7.9%로 한자릿수까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강제적인 자율학습도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오전 9시 등교가 활성화되는 등 변화에 있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를 바라보는 일각의 오해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는 "교권이 추락할 것이다, 교권침해가 늘어날거다라는 지적은 10년간 끊임없이 나왔다.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장을 어필하는 것을 교권 추락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학생인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교권이 추락한다면, 반대로 교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학생인권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강하게 반문했다.

특히 조례 사항에는 '타인의 인권에 대해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문항의 경우 학생인권 뿐만이 아니라 학교공동체에 대한 존중이 포함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권리의 충돌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기존에 없는 것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다보니 하나의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조례에 포함된 내용들은 모두 국제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나 헌법을 통해 기존에 준수하고 있는 내용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 '뜨거운 감자' 학생인권조례, 도의회 교육위 상정될까

결국 제주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어떻게 다룰지에 최종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교육위원회는 오는 22일 제주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청원의 건을 심의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앞서 상정 보류됐던 학생인권조례의 처리 여부도 다뤄질 전망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대표발의한 고은실 의원은 이 조례를 제정해달라는 청원을 받아들였던 교육위원회가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공동발의한 22명의 의원들이 있음에도 상임위원회에서 이를 묶어두는 것은 의원 입법발의의 영역을 침해하는 점이라고 분명하게 꼬집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올해 제주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러나 의회 차원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반대 여론을 의식한 행보다. 

다만 제21대 제주도의회가 후반기를 맞아 상임위원장이 교체된 것이 기회로 작용할지 눈 여겨 볼 대목이다. 현재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부공남 교육의원은 학생인권조례 공동발의 22명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부 위원장은 "의회를 혼자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위원회 9명의 의원이 같이 지혜를 모아서 처리해야 할 사안으로, 직권으로 상정하느냐, 마느냐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난 7월에 이미 상정을 한번 보류를 했었고, 이번에도 상정을 보류하려고 하면 마땅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사유가 어떤 사유가 될지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결국 의원들을 만나보고 의견을 들어봐야 판단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도민사회에선 진영 논리에 휘둘린 학생인권조례 제정 논란을 두고 입법과정에 많은 진통을 겪은 타시도의 선행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 의회의 전향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뒷짐 모양새인 제주도교육청에 대한 비판 시각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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