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해군기지 갈등 상생화합 선언식, 반대주민들 거센 저항 부딪혀

31일 오전 열린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직후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는 모습. 충돌 현장 뒤로는 상반된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어 이질감을 줬다. ⓒ제주의소리
31일 오전 열린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직후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는 모습. 충돌 현장 뒤로는 상반된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어 이질감을 줬다. ⓒ제주의소리

한편에서는 상생을 외쳤지만, 한편에서는 기만을 외쳤다. 14년만에 화합의 장이 마련됐지만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의 골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후였고, 마을공동체는 또 한번 갈라섰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는 31일 오전 10시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다시 부는 상생 화합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반목과 갈등을 종식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의장의 사과가 선행됐다. 원 지사는 해군기지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던 국가 공권력의 과오를 사과하고 향후 상생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원 지사는 "제주 민군복합형관광미항(해군기지)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마을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제주도정이 불공정하게 개입했고, 주민의견 수렴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한 일로 제주도정의 지난 과오를 이해한다"며 "강정마을 중심의 서귀포시 지역발전계획 사업이 차질 없이 마무리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좌 의장도 2009년 12월 본회의에서  '민군복합형관광미항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과 '절대보전지역변경 동의안' 등을 날치기 처리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도의회 의장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가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가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도와 강정마을회는 이날 상생화합 선언식을 바탕으로 추후 강정마을에 대한 지원을 구체화하는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연간 50억원씩 총 25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주민들에 대한 지원근거도 마련했다.

이와 관련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뿌리 깊게 내린 갈등과 반목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의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려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고 화답했다.

이 과정에서 "원 지사와 좌 의장이 용기있는 결단과 강정주민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며 추켜세웠고, 말미에는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방문은 물론, 해군참모총장, 경찰청장의 사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때에도 보여진 적이 없던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마지못해 사과를 전해듣는 분위기였다면, 이날 행사에서는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각 주체의 메시지 발표 직후에는 상생화합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의장, 강희봉 회장은 단상에서 포즈를 달리하며 손을 마주잡았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가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서로 다른 모습도 이해하자'는 어린이합창단의 노래 가사와 마이크를 쥐고 합창단 사이로 파고든 원 지사의 모습,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 정착민들 사이의 갈등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줄거리 식전영상 등은 다소 이질감을 줬다.

무엇보다 일련의 과정에서는 해군기지 반대주민회의 거센 저항이 빗발쳤다. 피켓을 든 반대 주민들은 연신 반발을 쏟아냈고, 행사 직후에는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이들은 정작 해군기지 반대의 최전선에서 싸워왔던 반대 주민들이 배제된 것에 반발했다. 특히 "상생화합으로 둔갑한 정부의 보상과 회유는 사과가 아닌 해군기지 반대운동과 이를 지지하고 함께 아파한 강정주민, 제주도민과 국민들을 향한 기만"이라고 목놓아 외쳤다.

이들을 막아선 것은 강정마을 내 또 다른 주민들이었다. 충돌 과정에서는 서로간의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고 쏟아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강정마을회·노인회·청년회·부녀회 등이 '외부세력은 강정민심을 존중하라', '강정마을 문제는 주민들이 알아서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쪼개진 마을 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 주최로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열린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서 해군기지 반대주민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 주최로 3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열린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서 해군기지 반대주민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31일 오전 열린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직후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31일 오전 열린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직후 물리적 충돌을 빚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마을 주민들도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행사를) 마냥 반가워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냐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 후손들에게는 더이상 반목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사에 참석한 주민 대다수도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앞장서 반대운동을 벌였던 주민들이다. 이제와서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우리가 마치 해군기지를 찬성했던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적어도 잘못을 시인하고 화합하자는 것에 딴지를 걸지는 않겠다는 정도"라고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반면, 반대주민회 관계자는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왔던 진상규명이 아니라, 갑자기 허울 좋은 지역개발사업을 사과라고 들이밀면 진정성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돈으로 마을에 대한 문제를 다 매듭지으려는 것 아니냐"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제주도도 제주도지만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가장 가열차게 싸울 당시 뒷짐지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자신들이 '무슨 사업을 유치했네'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감정이 든다"며 "왜 한 번씩 사과할 때마다 마을에선 다시 싸움이 붙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그간 민관 간의 대립이 주된 갈등이었다면, 마을 내 주민과 주민 간의 갈등으로 옮겨붙은 듯한 행사장은 씁쓸한 뒤끝을 남겼다. 모두가 염원해 온 '강정의 봄'을 논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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