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서울-제주 고속철도 사업 군불...지역선 '진땀', 송재호 "물밑에서 구상하던 사안"

유력 대선주자로부터 느닷없이 터져나온 '해저터널 건설' 제안에 제주가 술렁이고 있다. 그간 해당 사업이 제주지역 여론을 무시한 일방적 논의구조로 전개됐던 사업인만큼,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제주가 패싱당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선거 후보는 지난 23일 오전 수도권 부동산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서울과 제주를 연결하는 KTX 고속철도를 놓는 계획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저터널을 뚫어 수도권과 서해안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놓겠다는 내용으로, 이 후보는 "이미 유럽에선 철도 효율성과 탈탄소 때문에 국내 단거리 항공노선을 폐지하고, 육상노선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단거리 국내 노선을 폐지하고 항공 수요를 KTX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으로, 해저터널이 연결되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2시간 30분이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항공기 이용시 공항까지 가는데 1시간, 대기 30분, 비행시간 1시간이 소요됨을 고려할 시 고속철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이 후보는 "해저터널을 연결하면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훨씬 효율적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보다 빠르게 갈 수 있다"며 "다만 섬은 섬으로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른 생각에 내부 논쟁이 치열하다. 이 문제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주에선 일찌감치 해저터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섬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제주는 해저터널이 연결될 시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했고, 여론도 곱지 않았다. 특히 제주가 제2공항 건설로 방향을 설정한 이후에는 지역사회 이슈에서 더욱 멀어졌다. 

간간이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언급해 온 것은 유동 관광객으로 인해 간접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호남권이나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린 개발세력 정도였다. 지난 18대·19대 대선 당시에도 군불을 지폈지만, 제주의 반발로 흐지부지된 사업이다. 그럼에도 전남은 이번 대선 정국에서 각 선대위에 사업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이 후보의 발언이 경기권 지역에 특화된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다는 점도 문제시된다. 결국, 표의 논리에 매몰된 채 사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입게 될 제주도민을 '패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제주 제2공항 사업의 결정권도 차기 정부로 넘어가는 분위기에서 추가로 해저고속철이 논의된다면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도민사회가 다시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제기된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제주에서도 수습에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24일 오전 열린 제주도의원 중심의 대선 조직 '더불어제주위원회' 출범식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석 의원은 "해저터널이나 제주 제2공항 등의 가치 충돌 문제는 대통령이 결정할 게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결정돼야 하는 게 민주사회의 기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해저터널에 대해선 도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이 전달됐다는 말은 못 들었다"면서도 "일부 후보들 사이에서 나온건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섬은 섬으로 남아야 한다는 (이 후보의)개인적 소신을 밝혔다는 점"이라고 두둔했다. 

이어 "제주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공약이 될 수 있다"며 "제주도민의 권리와 의견이 정치 참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차기 도지사와 각 거버넌스들이 협의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이재명 후보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오영훈 의원도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해저터널)구상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린거고 아직은 검토 단계"라고 짧게 답했다. 

오 의원은 "이번 발표에서 김포공항 관련 내용이 빠지지 않았나.그렇기 때문에 해저터널 내용도 빠진 것이다. 구상과 논쟁이 있지만, 급하게 의논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즉, 해저터널의 필요성과 맞물린 김포공항 존치 여부를 장기적 과제로 분류한만큼 해저터널 사업 역시 당장의 공약 과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송재호 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당내에선 오래전부터 공유돼 온 내용"이라며 '제주패싱' 의혹을 부인했다. 송 위원장은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내 교감은 꾸준히 있었다. 후보가 뜬금없이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전 정부에서부터 이번 정부에서도 물밑에선 검토된 안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다시 공론화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지역정책이 영남, 소위 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을 축으로 가다보니,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를 다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지역정책 차원에서 검토된 것"이라며 "이동 시간은 기술 발전으로 더 단축될 수도 있고, 코레일이 아니라 (지방공기업)제주레일이 맡는다거나, 최종역이 제주역이 아닌 서귀포역으로 연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차원에서의 검토를 의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위원장은 "해저터널이라는 단어보다는 '제주-서울 고속철'로 명명해줬으면 한다"며 "도민들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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