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기(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그동안 특별자치도를 통해 일반자치단체보다 강했던 제주도민의 입법형성권과 정책집행권을 다시 중앙정부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제 많은 것들을 중앙정부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 종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동안 특별자치도를 통해 일반자치단체보다 강했던 제주도민의 입법형성권과 정책집행권을 다시 중앙정부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제 많은 것들을 중앙정부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 종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나는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지난 17년 동안 시행해온 2개(제주시, 서귀포시) 구역의 행정시장 임명제는 반드시 변경되어야 한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하지만 현행 체제의 주요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해서 반대하며, 특별자치도 체제 내에서의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우선 주민의 입장에서 제주의 현행 행정시장 체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허쉬만(Albert O. Hirschman)이라는 학자의 책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의 내용을 빌려 설명해 본다. 

내가 애용하는 ‘A마트’가 있다. 그런데 A마트의 상품의 질이나 서비스가 매년 나빠지고 있다. A마트의 이러한 서비스에 대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①서비스 개선을 요구하거나 ②A마트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 B, C, D, E 마트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할 마트의 수가 많을수록 나는 ‘A마트’에 불만(Voice)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그냥 떠나면(Exit)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음에 안들면 내 마음에 드는 곳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A마트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B, C, D, E 마트는 품질과 서비스 경쟁을 통해 소비자를 유인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는 행정서비스 마트가 하나 밖에 없다. 주민과 가까운 곳에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는 서귀포시와 제주시로 행정적 경계를 구분하고 도에서 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시장 또한 나와 내 이웃으로부터 권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주권자인 우리의 의사와 전혀 관련 없이 임명된 시장은 도지사로부터 권력을 받은 것이다. 마트가 하나 밖에 없으니 나와 내 이웃들은 이탈(Exit)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A마트를 찾아가서 서비스를 개선하고 가격을 내리라고 항의(Voice)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유난히 시민들의 행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Voice)가 높은 것이다. 게다가 나와 내 이웃은 현재 살고 있는 제주에 애향심(Loyalty)이 강해서 떠나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는 이 섬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요구는 선택할 수 있는 시나 군을 3개 이상 설치하여 다양한 선호를 충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가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고,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맡고 있는 시장을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때로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시장이 되지 않더라도 선거 때라도 시장이 누구인지 내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사라진 공화제(Republic)를 복원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후보의 당선 여부를 떠나서 권력을 시민들로부터 받아 당선된 시장이 최우선하는 것은 시민들의 공적욕구에 가장 빨리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의 2개보다 많은 시를 만들고 시장을 내 손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하여 지난 17년간 사라진 하부행정기관간의 정책경쟁을 해 달라는 것이 이번 행정체제 개편의 핵심이다.

나와 내 이웃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에 있었던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치단체는 아니지만 특별자치도 체제 내에서 현행 행정시의 구역을 더 설치하고 시장을 직선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나는 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반대하는가?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사실상 특별자치체제 출범 전인 17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가 부활한다는 것은 중앙정부와의 권한관계를 17년 전으로 복원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특별자치도를 통해 일반자치단체보다 강했던 제주도민의 입법형성권과 정책집행권을 다시 중앙정부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제 많은 것들을 중앙정부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 종속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최적 대안이라고 선정한 연구용역진은 ‘제주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반 시나 군의 기초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사무를 제주에 맞게 변형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일반 기초자치단체와 다른 기능과 사무를 수행하는 기초자치단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제주형’은 이미 특별자치도체제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인데 또 다른 변형의 ‘제주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20년 전 지역부합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거를 바탕으로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고 2006년 7월 1일부터 단일광역체제인 특별자치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폐지를 연구했던 당시 용역보고서의 연구진 중 한 명이 지금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가장 최적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용역보고서의 책임연구원이다. 1시간이면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동일생활권에서 2계층의 1도 4개 시․군의 지방행정체제로 인한 비효율성이 문제라고 주장했던 20년 전의 연구에서 제기한 문제가 이제는 해결되어 다시 20년 전의 체제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4개 시군으로 나누어져 각 시군이 처리하던 업무를 단일화하면서 행정 효율성과 공공서비스의 혜택이 발생하였다. 수많은 사례 중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상수도나 하수도 업무는 기초자치단체 사무이다. 그래서 특별자치도 출범 전(2005년)에 상수도 톤당 평균가격이 제주시 608원, 서귀포시 710원, 북제주군 775원, 남제주군 791원이었다. 인구가 적은 남제주군 주민은 인구가 가장 많은 제주시 주민보다 거의 톤당 200원 높은 상수도 요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하지만 단일광역체제가 된 이후 제주도 주민 모두에게 당시 제주시의 가격인 톤당 608원이 부과되었다. 17년이 지난 해 말 상수도 톤당 평균요금은 905원으로 17년 동안 300원 오른 것이다. 기초자치단체가 부활하면 이제 각 시군마다 상수도 시설을 설치하여 수돗물을 공급해야 한다. 남제주군 주민은 톤당 2000원 이상의 수도요금을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서비스 또한 시군과 광역(도)이 분리된 사무이기 때문에 이제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구분되어 교통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현재 제주에서는 모든 대중교통이 시내버스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이를 위해 2022년 결산기준 약 1,290억원을 도에서 대중교통 서비스를 위해 지원했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도와 시군으로 구분되었던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을 통합하여 특별자치도 출범 전 22개월이었던  인‧허가를 8개월로 단축하였다. 그 결과 제주의 외국인 투자가 2006년 대비 2,620% 증가하였다. 이 모든 행정효율성이 기초자치단체 도입으로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일반행정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생들도 특별자치체제의 수혜자이다.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도세와 시․군세로 나누어진 지방세가 통합되면서 제주자치도세는 11개 세목이 되었다. 특별자치도 출범 전에 도세 4개(취득세 등) 세목 수입의 3.6%를 도 교육청에 주었던 법정전입금을 11개 세목 중 목적세 등을 제외한 9개 세목 수입 총액의 5.0%를 도 교육청에 전출하게 되었다. 만약 기초자치단체가 부활되면 ‘지방세기본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해 제주자치도세는 도세(광역)와 시세(기초)로 구분되어 제주도가 제주도교육청에 전출하는 제주자치도세에서 시세목(주민세, 재산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 지방소득세)의 5%가 제외될 것이다. 2022년 지방세 수입(결산기준)으로 시세목의 5%는 314억3700만원이다. 기초자치단체가 부활되면 교육청은 2022년 기준 최소 연 300억원 이상의 세입을 잃게 된다. 제주도교육청은 2011년 이후 8년간 세종시를 제외하고 전국 교육청 중에서 예산 증가율 1위를 기록하였다. 

4개 시군이 부활되면 4개 시군 집행부와 의회, 시군의 출연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행정비용이 추가로 소요될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대세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 중 하나는 강원특별자치도가 기초자치단체를 유지한 채 특별자치도가 되었으니 제주도도 강원처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정부정책과 부합한다는 논리를 행정체제개편 용역 보고서에 담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용역진은 각종 대안을 평가하는데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한 번이라도 제주특별자치도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공식으로 지지한 적 있었다면 나는 오늘 이 주장을 철회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이다. 강원과 전북 특별자치도는 정부의 계획과 무관하게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러면 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나는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의 공식 의견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지난 5월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제주도에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려는 경우, 도지사가 도의회 동의를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개정안이 논의될 때 제주도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의견이 ‘제주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담겨있다. 검토보고서에는  “행정안전부는 과거 주민투표 실시사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건의하면서 실제 절차가 시작되므로 별도 법적 절차 신설 실익이 크지 않고, 단층제 체제를 고려하여 특례·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법의 취지와의 충돌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임”이다. “신중한 검토”가 정부의 입장이고 정책인 것이다. 

나는 특별자치도 체제 내에서 우리 도민 스스로가 새로운 행정체제와 자치모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행정시장을 직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례를 통해 행정시에 조직권, 재정권, 조례안 제출권 등을 주는 제도를 부여할 수 있다. 주민투표를 통해서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한 제도가 특별자치체제 내에서의 행정시장 직선제이다. 당적(黨籍)을 두지 않은 행정시장의 모형이 바로 ‘제주형’이다. 의회를 구성할 필요도 없다. 현행 도의회 하나로 충분하다. 행정시장 직선제와 관련해서 과거의 논의를 보면, 인사권도 재정권도 없는 행정시장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면서 행정시장 직선제 무용론이 제기된 적이 있다. 

민기 교수
민기 교수

기초자치단체도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현 제주도지사가 표명하였는데, 조례 제정을 통해서 재정권, 인사권, 조직권 등을 행정시에 넘기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서두에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Loyalty)이 행정체제 개편의 핵심이유이고 이론이라고 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수의 행정시를 설치하여 A시장의 행정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B, C, D, E 등으로 이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동시에 A, B, C, D, E 시장의 정책 경쟁을 통해 주민이 동일한 세금을 부담하더라도 다른 지역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행정체제 개편의 또 다른 핵심은 대한민국 어떤 지방자치단체에도 없는 국가(중앙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 간의 각종 권한 이양방식과 특례 규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특별자치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자치단체처럼 국가(중앙정부)가 도(광역)와 시․군(기초)에 권한을 배분하면서 중앙행정기관의 통제가 제주에서 강화되는 시스템으로 돌아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어 특별자치도 체제의 변형으로 발생될 수 있는 도민의 불이익에 대한 의견을 계속 개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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