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번 기고에서 나는 왜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반대하는가를 밝혔다. 나는 지난 17년 동안의 우리가 경험해 온 특별자치체제는 재정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었으나 행정시장의 임명방식으로 인해 주권을 가진 주민으로서의 정치적 효능감의 상실과 행정시 간의 정책경쟁의 실종으로 주민의 행정수요 대응성에 현행 체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당적을 두지 않은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행정시가 독립적인 정책형성권을 가질 수 있도록 조례 개정을 통해 일부 지방세목의 세입을 행정시의 재원으로 보장하고, 예산안 편성, 조례 제정이나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 등을 행정시에 부여하자고 했다. 

나의 생각과 달리 현재 행정체제개편 연구의 용역진은 제1순위 안으로 ‘시․군에 의회를 구성하고 시장․군수를 직선하는 안’과 제2순위 안으로 ‘시․읍․면에 의회를 구성하고 시장․읍장․면장을 직선하는 안’을 가장 최적의 안이라고 제주도에 제안하였다. 내가 주장하는 ‘행정시장 직선과 행정시 기능강화안’과 행정체제개편 연구 용역진이 제안하고 있는 제1순위 안과 제2순위 안의 가장 큰 차이는 법인격의 유무에 있다. 법인격이 있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특별자치도의 행정시 체제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치권이 약화되고 산남과 산북(서귀포시와 제주시)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인격을 가진 기초자치단체와 행정시 체제의 차이점이 무엇이며, 법인격이 있는 기초자치단체는 자치권의 강화와 지역간 불균형을 개선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법인격을 가진 기초자치단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과거 시․군체제와 같이 새로 도입되는 시와 군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권능을 국가로부터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그동안 단일광역체제의 유일한 법인격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에 주었던 권한과 사무, 책임을 지방자치법 등 일반법에 의해서 다시 분할해 주어야 한다. 특별자치도 체제에서는 ‘○○○부 장관의 권한을 제주자치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을,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17년 전과 마찬가지로 권한과 사무를 시․군과 도에 구분하여 나누어 주어야 한다. 또, 앞에서 장관이 도지사에게 이양한 권한의 세부내용을 정한 법규명령(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을 도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현행 제주특별법의 규정을 이제는 일부 권한은 도조례로, 또 다른 일부 권한은 시․군 조례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야말로 통합된 특별자치의 법령체계를 분할된 일반자치로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특별법의 통합된 현재의 법령 체계로 제주특별자치도는 다른 시․도가 행사할 수 없는 통합된 행정의 효율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분할로 인한 제주특별법의 특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질문을, 어떤 주민이 지난 24일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주관하는 도민경청회에서 용역발표자에게 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이 "제주의 많은 특례들은 지난 91년과 2002 제주개발특별법에서 승계된 국제자유도시 관련이다. 행정체제가 변경되더라도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제주신문, 제주형 행정체제개편 도민경청회...“기초단체, 왜 부활시켜야 하나”, 2023.7.24.). 이 연구원은 제주특별법뿐만 아니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거나, 읽어 보았다 할지라도 전혀 이해를 못한 사람이다. 

위에서 예시한 권한이양방식은 오직 제주특별법에만 있고,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독특한 형식이다. 심지어 기초자치단체를 유지하고 출발한 강원특별법에서도 12건 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제주특별법에는 무려 4,678건이 나타나고 있는 특별한 권한이양방식이다. 어떻게 사실이 아닌 법의 특성을 저토록 공개석상에서 태연하게 말하면서, 연구자가 도민을 기망(欺罔)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동업자로서 나는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만약, 기초자치단체가 부활해도 제주도개발특별법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서 부여된 권한이 있기 때문에 특별자치체제의 권한이양의 특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나는 공개사과하고 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하여 더 이상 나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을 것이다. 

행정시는 가질 수 없는 권한이지만 법인격을 가진 기초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사무(제14조), 조례와 규칙의 제정, 의회구성, 집행기관(시청 또는 군청) 구성, 재정권(세입권, 예산권 등), 소송 당사자 능력 등이다. 행정시에 이러한 권한이 없다면 우리 제주도민의 권한은 박탈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분할하여 기초자치단체에 법인격을 주는 대신 통합된 특별자치도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자치체제 내에서 모든 것을 제주특별법이나 조례에 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시․군의 사무와 도의 사무를 통합해서 제주특별자치도에 주고, 통합된 사무를 도민들이 자기결정권을 갖고 조례를 통해서 다시 나누라는 것이 특별자치도의 핵심이다. 이러한 법적 특성은 강원특별법이나 전북특별법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하여 주민참여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법인격의 유무와 관계없이 지금도 특별자치체제에서 주민자치회 도입과 각종 권한을 조례에 부여할 수 있다. 그러면 반대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지난 17년 동안 우리가 특별자치체제에서 주민참여가 약화된 반면, 전국 226개의 다른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주민참여가 활성화되고 자치권이 더 강화되어서 주민의 삶이 우리 제주인의 삶 보다 나아졌는가? 아니다! 주민참여의 강화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각 지방의 정치적 역량, 선출직 공무원의 리더십, 공직사회와 주민의 역량과 관계된 문제이다. 충남 어느 군(郡)의 인구 4천명도 되지 않은 작은 면(面)이지만 이 면의 주민들은 주민자치를 가장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무늬만 주민자치를 하고 있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읍장이나 면장을 민간인이나 공무원 중에서 지역 주민이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운영 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은 제주에서 지금이라도 조례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은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주장하는 가장 큰 논거 중 하나인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불균형 문제를 살펴보자. 기초자치단체의 도입 여부를 떠나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불균형 심화는 지난 2~30년 동안 있었던 주지의 사실이다. 산북의 제주시는 인구도 많고 대학병원 등 의료서비스, 교육, 문화 등 각종 생활 인프라가 산남의 서귀포시보다 월등이 낫다. 이러한 격차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산남과 산북의 격차가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더 악화되었는지 살펴보자. 산남북간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인구와 지역내총생산액(GRDP)을 중심으로 논의해보자. 

제주의 인구는 1986년 50만명이었다. 이로부터 27년이 지난 2013년 8월 드디어 60만명(외국인포함)이 되었다. 인구 10만명이 증가하는데 27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해 8월 말, 제주의 인구는 70만명을 넘어섰다. 60만명에서 70만명이 되는 데에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이렇게 증가한 인구는 과연 산남과 산북 중 어디로 갔을까? 인구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면 당연히 제주시의 인구증가율이 높았을 것이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2002년, 2005년과 인구 70만명을 기록한 2022년 8월말 기준으로 제주도 전체 인구 중 4개 시․군이 차지하는 인구비중, 2000년 대비 2005년의 증감률,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2005년 대비 2022년 증감률을 비교해 보자. 2001년 대비 2005년, 제주시의 인구는 9.1% 증가했는데 △남제주군 -5.1% △서귀포시 -2.8% △북제주군 -2.6% 감소했다. 제주시로 인구가 몰리는 반면 3개 시․군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2005년 대비 2022년 8월 말의 인구를 비교해 보면, 제주시 27.9%, 서귀포시 27.4%, 북제주군 21.3%, 남제주군 15.9% 증가하였다. 눈에 띄는 것은 인구가 감소하던 서귀포시를 비롯한 3개 시․군 인구의 증가와 증가율이다. 2001년 대비 2005년 최소 2.6%에서 최고 5.1% 감소하던 3개 시․군의 인구가 모두 크게 증가하였다. 3개 시․군의 인구가 제주시로 빠져 나갔던 추세가 멈추고 3개 시․군의 인구 모두가 증가한 것이다. 인구 감소했던 과거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실질적으로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서귀포시이다. 만약 특별자치도가 출범하지 않고 과거의 체제로 그대로 있었다면 3개 시․군 인구의 감소가 이렇게 증가 추세로 반전할 수 있었을까? 지난 17년 동안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하지 않아서 특별자치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제주도 발간 자료 재정리
 #제주도 발간 자료 재정리

이제 지역내총생산액(GRDP)을 들여다보자. GRDP는 일정기간동안 특정 경제구역 내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격의 합이다. 지역에 큰 기업이 들어오면 자연히 GRDP는 증가한다. 내 주머니 들어오는 수입과 관계없이 GRDP는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대체할 만한 공식적인 지표가 없으니 이 지표를 가지고 비교해 보자. 특별자치도 출범 전 2005년의 제주 GRDP 총액(8.5조원)은 전국(959조원)의 0.88%였으나 2015년 1.02%, 2019년 1.05%로 그 비중이 증가하였다. 제주의 경제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비중 1.3%보다는 약 2.5%포인트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GRDP 성장률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 최고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제주 GRDP 성장률 속에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GRDP 변화율을 살펴보자. 자료는 모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발간한 통계를 이용하였다. 2006년의 제주시 GRDP는 5.6조원, 서귀포시 GRDP는 2.3조원으로 71.9%:28.1%였다. 이후 그 격차가 2011년 69.5%:30.5%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2016년 71.9%:28.1%로 소폭 확대되었다. 이후 2019년과 2020년의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GRDP 비중은 각각 73.2%:26.8%와 73.0%:27:0%로 그 격차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인구의 비중이 2019년 72.6%:27.4%, 2020년 72.7%:27.3%인 점을 고려하면 그 격차의 확대는 2019년과 2020년 각각 0.6%포인트와 0.3%포인트에 불과하다. 

여기서 잠시 불균형의 정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보자. 불균형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는데, ① 양 행정시 모두 전국 평균이상의 경제성장을 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의 불균형이 축소되는 경우 ② 양 행정시 모두 전국 평균이상의 경제성장을 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의 불균형이 확대되는 경우 ③ 양 행정시 모두 전국 평균 보다 낮은 경제성장을 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의 불균형이 확대되는 경우 ④ 양 행정시 모두 전국 평균 보다 낮은 경제성장을 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의 불균형이 축소되는 경우이다. 소득불평등의 대표적인 측정지표인 지니계수(Gini Index)는 ①과 ④의 경우 불균형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②와 ③은 불균형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과연 불균형이 축소한 ④의 경우를 누가 바람직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①과 같은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②의 경우이다. 제주처럼 2011년 이후 2017년까지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면서 불균형이 약간 확대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수용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불균형이 존재하지만 제주 지역의 경제적 파이가 커지면서 서귀포시의 몫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②와 같은 불균형도 개선하여 ①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제주도는 지금이라도 제주특별법의 투자진흥지구제도(제주특별법 제162조) 관련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제주에 미화 2천만달러 이상의 관광시설에 투자하면 국세 최장 5년, 제주자치도세 최장 10년을 감면 또는 면제해준다. 그런데 세금을 감면해주지 않아도 투자자가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 입지 좋은 지역(예, 신제주 지역 등)까지, 그렇지 않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조건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를 제주도는 운영하고 있다. 투자자가 몰리는 지역은 세제 혜택을 주지 말고, 산남이나 산북 중 투자자가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곳이나 제주시 동지역 중 원도심 지역에는 세제 인센티브를 투자자에게 더 많이 부여해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래야 불균형이 완화될 것이다. 이것은 당장 조례만 개정해도 가능한 일이다. 만약 시․군이 도입되면 서로 자기지역에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투자자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경쟁에 시장이나 군수는 빠지게 될 것이다. 

민기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민기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내가 주장하는 행정시장 직선제보다 자치권이 강화되어 주민참여가 활성화되고 산남과 산북의 불균형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그런 방안이 있다면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처럼 의견을 개진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지난 글에서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상․하수도 요금, 시내버스 요금, 교육청 지원금 감소 등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변화를 언급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도 지난 17년간의 특별자치체제는 도민사회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불균형의 문제는 실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오히려 완화되었거나 수용 가능한 불균형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특별자치체제 유지와 이를 변형하는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제주의 백년대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행정체제개편 관련 도민공론화 과정에서 왜 특별자치체제 내에서 행정체제가 개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싶다. 앞으로 특별자치체제의 특수성, 강원이나 전북의 특별자치도가 갖지 못한 제주특별자치체제의 우월성, 특별자치도의 효과와 부작용, 그 대안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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