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에서 희망을 보다] (2) 제주 굿과 신화 세계에 알린 마로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를 위해 공동체를 꾸린 사회적경제의 힘이 제주 곳곳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영리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내면서 시장과 정부의 실패를 보완하는 제3의 영역으로 기능한다. 제주의소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이 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다섯차례에 나눠 싣는다. / 편집자

잔치형 예술과 융합형 창작극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로의 공연 모습. 왼쪽은 사운드 인터랙티브 디지털 아트 '섬이 전하는 노래', 오른쪽은 전통예술과 멀티미디어의 복합 퍼포먼스 '이어도'. ⓒ제주의소리
잔치형 예술과 융합형 창작극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로의 공연 모습. 왼쪽은 사운드 인터랙티브 디지털 아트 '섬이 전하는 노래', 오른쪽은 전통예술과 멀티미디어의 복합 퍼포먼스 '이어도'. ⓒ제주의소리

2005년 사물놀이패로 시작한 제주의 전통예술단체 마로는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런던대학교 초청 공연, 캐나다 수류무용제 초청 공연, 과달루프 세계민속축전 한국 대표 공연, 멕시코 프라이머 코리아 페스티벌 초청 공연 등 온 지역을 넘나들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로에게 감명받은 이들이 미국 시애틀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하며 초청 공연을 열기도 했다.

넘치는 에너지, 미디어아트와 현대 무용, 국악이 어우러진 창작극까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면서 관객들에게 공감과 치유의 경험을 줬다는 평을 받는다. 마로의 공연이 ‘잔치형 예술’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모든 작품이 제주의 굿과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마로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송주연씨는 자신을 ‘꿈을 이룬 마로의 팬’라고 말한다. 그는 2014년과 2015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마로의 공연을 접한 외국인들이 언어를 뛰어넘어 열광하고 소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로에 매료됐고 마침내 같은 구성원이 됐다.

송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고 외국인들까지 감동하는 이유는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하는 것에 있다. 그 본질은 자기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며 “그것이 사람들이 적건 많건, 실내든 실외건 마로가 관객들이 경계없이 놀 수 있는 큰 힘”이라고 말했다.

24일 표선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공연에 나선 마로. ⓒ제주의소리
24일 표선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공연에 나선 마로. ⓒ제주의소리

마로의 슬로건은 ‘전통을 미래로 잇는 예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예술’이다. 예술로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지향이다.

문화향유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고, 지역 아동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이유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치유를 위한 재능 기부도 펼치고, 다른 사회적기업들과 협력해 지역의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지역간 문화예술 격차 해소를 위한 프로젝트에도 동참하고 있다.

마로는 공간이 필요한 지역예술인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다.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지역예술인들과의 거점 역할을 한 것이다.

마로의 공간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인스피어의 송해인 대표는 “빛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기계 설치가 용이하고 규모가 충분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마로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며 “제주시 도심에 공간들이 집중돼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실험하고 발표할 수 있는 이런 공간들이 더 생긴다면 제주 곳곳의 예술가들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마로가 표선면 표선리에 새롭게 자리잡은 곳 역시 예술인들 간의 다양한 협업이 이뤄지는 소중한 공간이 될 전망이다. 지난 29일과 30일에는 이 곳에서 천지향 본풀이를 테마로 만든 AR(증강현실) 활용 전시가 이어졌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마로의 공간은 때로는 연습실이, 때로는 전시장이, 때로는 공연장이 된다. 29일과 30일에는 인스피어의 AR전시 '태초의 노래'가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마로의 공간은 때로는 연습실이, 때로는 전시장이, 때로는 공연장이 된다. 29일과 30일에는 인스피어의 AR전시 '태초의 노래'가 진행됐다. ⓒ제주의소리

새로운 시도도 계속된다. 메타버스 공연 ‘미여지뱅뒤’가 대표적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시공간을 뜻하는 제주어 미여지뱅뒤는 온라인을 통해 접속하는 공연으로, 이달 말 디지털 기술과 실제 샤먼 간의 만남을 통해 영혼을 어루만지는 춤과 소리를 전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공연으로 충분한 이익을 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그들의 행보는 고군분투에 가깝다. 더군다나 정부의 예산삭감 기조로 사회적경제와 예술지원 분야의 지원이 대거 끊긴 지금에는 상황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예술을 지키고 사람들의 아픔을 예술로 치유해간다’ 소명은 포기할 수 없다. 독창적인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 지식재산권 활용, 후원회원 제도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가는 그들의 행보가 지역사회에도 소중한 이유다.

양호성 마로 대표는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지금 가진 공간도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예술단체이자 사회적기업인 마로의 구성원들. ⓒ제주의소리
전통예술단체이자 사회적기업인 마로의 구성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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